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법조계의 ‘기부왕’
오랫만에 서울로 올라와 팔십대의 선배 변호사와 만나 점심을 했다. 그는 자기가 돈을 내어 ‘사랑샘 재단’이라는 법인을 만들고 삼십년이 넘게 사용해 오던 자기의 법률사무실을 재단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재단의 직원은 나이 든 아내였다. 젊어서는 변호사로 돈을 벌고 늙어서는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특이한 삶의 모습이다.
십여년 전이다. 한번은 ‘대한변협신문’에 내가 암으로 죽어가는 가난한 시인의 얘기를 짧은 컬럼으로 쓴 적이 있었다. 내 글을 보고 그는 당장 몇백만원을 내게 보냈다. 그 시인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독하게 입원실에 있는 시인을 찾아갔다. 내가 돈을 전달하자 시인은 감사하면서 자기가 죽기 때문에 갚을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천국에서 돈을 준 그분에게 이자를 쳐서 갚으라고 말했다. 시인과 나는 그런 내용의 각서를 쓰고 둘이서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며칠후 그 시인이 죽었다. 시인은 죽기 전 날까지 침대옆에 공책과 연필을 놓고 시를 쓰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보고하면서 법조 선배인 그에게 왜 그렇게 기부를 하느냐고 물었다.
“안해 본 사람은 봉사나 기부의 기쁨을 몰라요.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형언할 수 없는 차원높은 은은한 쾌감 때문이죠. 저는 기부의 전도사가 되려고 노력해요. 서울법대를 졸업한 동창 모임에 가면 나는 무조건 내가 쓴 모자를 벗어서 돌립니다. 거기다 작은 돈이라도 기부하라구요. 그 돈으로 내가 좋은 데 쓰겠다고 말이죠.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부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서죠. 요즈음은 예전같이 학교나 단체에 돈만 툭 던지고 끝내지 않아요. 직접 기부할 사람을 찾아가서 따뜻한 체온을 전달해 줘야 해요. 사회단체나 종교단체가 너무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 정이 없이 처리하는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생색을 내지 않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게 하면서 몰래 주는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
그는 법조계의 ‘기부왕’으로 불리는 분이다. 수십억을 학교와 종교계에 기부했다. 그가 빵과 봉지커피를 사들고 노숙자 촌이나 탑골공원 뒤의 무료 급식소를 찾아갈 때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특히 좌절하는 고시생들을 많이 도왔다. 신림동 고시촌에 작은 공간을 얻어 거기서 고시 낭인들을 위해 법조인들을 불러 강연을 하게 하기도 하고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판사 생활을 하던 그는 변호사를 개업해 번 돈을 소리 없이 기부했다. 의사인 장인이 평생을 개인의원을 하면서 번 돈으로 산 땅들을 임종시 전부 기부하게 했다. 자신의 부부에게 들어올 거액의 상속을 사양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무서운 일면도 있었다. 카톨릭에 기부한 그의 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살피고 그 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는 추기경을 찾아가 집요하게 따졌다. 그를 피하는 추기경의 옷소매를 잡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작은 소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법조계에서 명문가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 출신이었다. 그리고 한 유명한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했다. 그 자신이 고위직 법관까지 무난히 지냈다. 어느 날 왜 그런 선행을 하게 되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젊은 날 내가 고시 공부를 하다가 폐병에 걸렸었어요. 수시로 피를 많이 토했죠. 고시를 포기하고 병원에 있었죠. 대학 동기들은 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고 영광을 누리는 것 같은데 나는 몸이 바짝 마르고 죽어가고 있었어요.
하늘이 도왔는지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자 은행에 취직을 했죠. 은행원으로 있으면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법서를 잡고 고시에 도전했죠. 그렇게 뒤늦게 합격하고 법관의 길로 들어섰던 겁니다. 우연히 신림동 고시촌 상황을 알게 됐는데 고시를 포기할 때 내가 느꼈던 좌절감을 겪는 젊은이들이 많더라구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한다고 칭차받고 집안의 희망이고 기둥이었던 청년들이 좌절하고 깊은 절망의 구덩이로 떨어져 폐인이 되는 곳이 고시촌이예요. 보통은 가난하고 늙고 약한 사람들만 도움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죠. 내 생각은 달라요. 잠재능력 있는 그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나고 큰 인재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내가 그 절망을 맛보았으니까 알죠. 나는 도와줄 사람을 돕고 싶은 겁니다.”
나이 팔십이 넘은 그는 아직도 꿋꿋하게 부인과 함께 사무실에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이런 자신의 속말을 했다.
“중년에 돈을 기부할 때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내가 정계로 가려는 야망을 품고 쑈를 한다고 색안경을 쓰고 보면서 의심하고 비난을 했죠. 노인이 되서 일을 계속하니까 그런 게 없어져서 편해요.”
나는 그 부부와 함께 빌딩 지하에 있는 소박한 작은 간이식당으로 갔다. 머리가 하얀 나이든 여성이 샐러리맨을 상대로 값싼 백반을 파는 집이었다. 수십억을 기부했어도 그 부부는 자신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소했다. 나는 주위에 말이 아니라 행위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분이다. 그런 분과 인연을 맺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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