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혼이 강철같이 되는 법
변호사를 시작하고 의문이 있었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사람 바로 옆에 있지만 그의 아픔과 불안, 공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송 도중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내면적 고통을 알아야 제대로 된 변호사가 될 것 같았다. 법정에서 정의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 재판은 법조문과 증거라는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었다. 법정에 나타나는 진실은 극히 일부였다. 나는 공간과 시간의 벽을 넘어 진실을 전달하는 글쟁이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각자 자기가 가고싶은 길을 가는 것이다.
법의 제단 뒤에 있는 검은 이면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감옥에 가거나 전 재산을 날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종종 오물을 뒤집어 쓰는 경우도 있었다. 소송을 제기하거나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당하는 경우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돈을 주고 합의를 해서 처리한다. 거기에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달랐다. 두 팔을 벌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보기로 했다. 잘못이 없다면 조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이 내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 불가마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흙으로 만든 도자기는 불을 거쳐야 단단해진다. 흙만이 아니라 쇠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쇠로 치면 원가가 극히 낮은 모두가 똑같은 덩어리 하나씩일 뿐이다. 값이 올라가는 것은 연마의 고통, 눈물의 담금질과 비례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시비를 거는 상대방에게 꼭 소송을 걸어보라고 도발한 적이 많다. 그들도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준재벌급 부자의 살인 청부를 글로 폭로했었다. 이 사회는 살인이나 폭력의 청부가 흔했다. 법은 돈에 약했다. 돈은 진실을 왜곡시키고 증거를 뭉개는 힘이 있었다. 그런 사실을 폭로하고 고소당한 것이다.
그 순간 부터는 나는 변호사가 아니었다. 바로 유죄로 추정되는 죄인이었다. 법 교과서와 현실은 반대였다.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었다.
피의자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니까 형사들이 즐거워했다. 변호사이고 신문에 더러 이름이 오르던 내가 진창에서 뒹구니까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담당 형사가 물었다.
“좌파죠?”
“왜요?”
“부자를 공격하는 글을 썼으니까”
“아닌데요”
“그러면 정치하려나 봐. 그렇죠?”
그게 그들의 시각이었다. 그들은 나를 믿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담당 검사도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상자 같은 대기실에 일부러 몇 시간을 나를 가두어 놓았다. 독오른 상대방을 검사실로 불러 하이에나 같이 나를 물어뜯게 했다. 그걸 보면서 즐기는 것 같았다. 물론 명분은 대질 신문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검사는 잔뜩 물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컬럼을 통해서 우리 검찰을 자주 공격한 걸 압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먼지 한 점까지 뒤를 캐는 직업적 소명에 충실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내면이 어떤 것인지 나는 대략 알 것 같았다.
판사들은 잘난척 하는 사람들을 범죄인보다 싫어했다. 자신들이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폭로행위는 그들에게 위선으로 보인 것 같았다. 법대 위에서 날아오는 그들의 냉냉한 눈길에 나는 얼어붙기도 했다.
사십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 고소를 당하고 민사소송의 피고가 되기도 했다. 한 메이저 일간지는 사회면의 큰 박스기사로 내가 동시에 다섯 건의 소송을 제기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내가 무릎을 한 번 꿇거나 입을 다물면 그렇게 되지 않을 사건이었다. 오히려 돈이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당해보아야 법의 제물이 된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쇠는 모루 위에 올려져 망치를 많이 맞을수록 불꽃을 튀기면서 강하게 된다. 법의 불가마를 거치면서 나도 강해졌다.
수많은 오해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걸 몸으로 배운 감사한 기회였다. 나는 모루 위에서 망치에게 담금질을 당하는 걸 성경에서 배웠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세상에 내려왔다. 모략을 받고 법의 불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무참하게 얻어맞고 침뱉음을 당했다. 교만한 재판관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려 죽었다. 그는 지금도 내게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라와 보라고 한다. 그러면 강철같은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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