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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긴 자와 진 자

Joyfule 2024. 10. 26. 18:19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긴 자와 진 자      

 

한 신흥재벌의 회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의 변호인단과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당신을 파멸시킬거야. 당신이 이룬 모든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겠어.”

엄청난 증오였다. 나는 공포감이 들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법정에서 승부를 다투는 변호사인데도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법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와 싸우다가 패배한 적이 있다. 승리감에 도취한 그가 내게 자랑같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법으로 누구든지 죽일 수 있어. 내가 먼저 죽일 사람의 비리를 시나리오로 만들어. 그리고 그걸 외워서 검사나 판사 앞에서 앵무새 같이 말할 일곱명 정도의 증인을 캐스팅해서 연기하는 연습을 시키지. 물론 충분한 댓가를 줘야겠지. 그중 한 명을 시켜 고소하게 하고 다른 여섯명을 입을 맞춰 증언하게 하는 거지. 검사가 억울하다고 하는 고소당한 한 사람의 말을 믿을까? 아니면 여섯명의 일치된 시나리오쪽 진술을 믿을까? 검사나 판사는 진실보다 증인 숫자가 많은 쪽으로 가게 되어있어. 그게 새가슴을 가진 그들의 한계야. 책임을 회피할 수 있잖아? 나는 오래전부터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걸 들여다봤지. 평소 낚시 밑밥을 뿌려둔 검사에게 사건이 가게 되면 완전히 내편인 거지. 내가 가서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어. 내 비서로 검찰총장의 동생 정도를 두고 그걸 파이프로 삼아 평소에 돈을 먹여두면 오히려 저쪽에서 알아서 기는 거야. 국가 권력은 실제로 내가 가진 셈이지. 나는 그런 방법으로 대법원 판례도 만들었어.”

사실이었다. 세상은 대법원 판례가 된 그의 허위를 진실로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었다.

“난 절대로 뇌물죄에 안걸려. 난 법쟁이들보다 더 법을 잘 알거든. 뇌물죄의 핵심은 ‘댓가성’이야. 판사들은 그걸 논리로 구성하지 못하면 유죄판결을 못해. 난 법에 안걸리고 뇌물을 주는 방법을 얼마든지 고안해 낼 수 있어. 평소에 타켓이 된 인물이나 그 주변 친척의 땅을 티가 나지 않게 미리 적당히 비싸게 사줬지. 그때 가서 뇌물을 주는 놈들은 바보야. 난 어떤 검사에게도 진 적이 없어. 오히려 무릎을 꿇렸지. 그때그때 필요하면 돈 먹은 검사 하나만 정보를 흘리면 목이 잘리더라구.”

업계에서는 그를 주가조작이나 기업의 불법적인 인수 부동산사업에 천재라고 했다. 그의 손에서 정권도 농락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가 조작한 대법원판례에 대한 비판을 글로써서 시사 월간지에 기고했었다. 과정에서 그의 조작과 연출에 대한 부분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부분을 보고 그는 나의 파멸을 선언한 것이다. 사법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기도 했다. 나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일심 재판장은 하급법원의 법관인 자신이 어떻게 대법원의 결론을 뒤집을 수 있겠느냐고 솔직한 심정을 말해주기도 했다. 예상대로 패소판결이 났다. 나는 다시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항소했다. 그는 “해봐야 별 볼 일 없을 거다”라면서 나를 비웃었다. 나는 자신을 위로했다. 내 마음에는 정의와 꿈이 들어있고 그의 속에는 욕심과 모략이 가득하다고. 주위에서는 미끄러운 눈길을 미련하게 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지는 사람은 눈이 녹기를 기다리지만 이기려면 눈을 밟아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항소심 법정에서 시사잡지의 편집장이 증인으로 소환됐다. 그는 존경받는 언론인이었다. 증언이 끝날 무렵 마지막에 재판장이 그에게 물었다.

“피고 엄상익을 어떻게 봅니까?”

“순진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예와 아니오’를 적당하게 하지 않고 분명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편집장으로서 기고받은 원고의 진실을 확인했습니까?”

“저는 엄상익이란 사람이 기고한 원고는 모두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확인하지 않고 그냥 믿습니다.”

“그렇다면 소송을 제기한 원고인 회장은 어떻게 봅니까?”

나를 고소한 회장이 고문변호사와 비서들을 대동하고 나와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증인으로 나온 편집장이 그 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재판장에게 말했다.

“저분을 나쁜 놈으로 봅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그런 증언에도 항소심에서도 역시 나는 졌다. 담당 재판장은 대법관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었다. 대법원의 결정에 반기를 든 내 편을 들 수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덤벼 대법원으로 갔다. 거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담당 대법관이 원고지로 백장 가까운 분량의 대법원판결이 내게 왔다. 판결이유의 핵심은 이랬다.

‘대법원은 대법원의 견해가 있고 변호사는 변호사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변호사가 자기의 의견을 잡지에 쓰는 것은 언론의 자유영역에 속한다. 그 과정에서 재벌회장에 대한 비판도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긴 자가 되고 그는 졌다. 나는 이기고 지는 것은 술책이나 돈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그분의 힘이 마귀의 술수를 이긴다고 확신한다. 내가 죽으려고 각오할 때 그분은 나를 살려준다. 상대방을 때릴 생각보다 맞아죽을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이긴 나의 마음에는 꿈이 있었고 진 그의 마음에는 교만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계산했지만 나는 계산하지 않았다. 나는 강자에게 강하고 싶었다. 그는 약자에게 강했다. 나는 행동으로 증명했고 그는 말로 변명했다. 나는 다윗이고 그는 골리앗이다. 마지막 승부는 하나님이 정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