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선량한 사람과 사악한 존재
광우병 사태 때였다. 시청앞 광장으로 나가 보았다. 여기저기 옛날 전쟁에 나오는 군막같은 대형 텐트가 쳐 있고 그 앞에 미친 소의 조각상이 상징같이 서 있었다. 텐트안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붉은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선동방송과 괴담에 세뇌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의 물줄기가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군중들의 파도가 뒤엉키면서 위험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정권의 거대한 둑까지 사람들의 물결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밤이면 촛불을 든 사람들의 거대한 붉은 물결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겁을 먹고 청와대 뒷산으로 도망을 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소고기 협상 대표가 역적이 되어 광장에서 그 인형이 화형을 당했다. 소고기 수입을 담당한 장관이 얻어맞고 쓰고 있던 안경이 날아가기도 했다. 광장은 해방구였다. 가로수를 뽑아 불을 때고 길바닥에서 사람들이 소주를 마셨다.
그런 속에서 색다른 광경도 있었다. 광장 한 구석에서 진실을 외치는 한 명의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군중들에게 “미국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아요. 그건 거짓말입니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그 청년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선동된 다수보다 그 청년의 말이 진실인 것 같아 보였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시사프로그램이 이상하다고 생각됐다. 그 말대로라면 미국이 그 병으로 초토화 됐어야 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맥도날드점들이 문을 닫아야 맞았다. 그런데도 거짓 방송과 괴담이 세상을 이기는 것 같았다.
광장에 모인 군중을 보면서 나는 라즈니쉬 책에서 읽은 ‘판단결핍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극장 안에서 어떤 사람이 거짓말로 “불이야”하고 외쳤다. 혼란이 일어나고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당황한 사람들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조건 앞에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깔려 죽기도 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판단결핍증세를 보이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길로 끌어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다고 했다. 그런 거짓말이 사회에 주는 해독이 엄청났다. 그러나 그런 거짓으로 발생하는 상처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았다.
광우병 사태가 그 비슷한 것 같았다. 거짓방송에 선동이 되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판단결핍증인 것 같아 보였다. 그들은 그냥 혁명에 동원된 군중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냥 명박산성의 둑과 벽을 허물 격류역할인 것 같았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든 작가의 이메일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 배경의 일부가 드러난 것 같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광장을 지도하는 조직은 모여든 군중이 백만을 넘으면 정권은 무너진다는 문건을 자기들 사이에서 돌린다고 했다. 소고기 협상대표가 나의 오랜친구라 변호사로서 그 대리인 역할을 맡게 됐다. 수사와 재판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검찰은 밀리고 있었다. 방송국에 압수를 하러 갔다가 노조의 위세에 눌려 튕겨져 나왔다. 그들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조서 한 장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법원의 재판에서 본질은 실종되고 그냥 과학 세미나 같은 광경만 펼쳐졌다. 광우병이 무엇인지 그 원인은 소에게 어떤 사료를 먹여서인지 소의 어느 부위의 단백질이 변이되는 것인지 끝이 없었다. 재판인지 논문심사장인지 혼돈상태였다. 논점을 엉뚱하게 변경시켜 재판의 본질을 흐리는 것도 전략 중의 하나일 수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부처님이 말한 ‘독화살’의 비유가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기 시작했다. 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독의 성분은 식물성인지 동물성인지로 의견이 분분했다. 부처님은 그런 헛된 논의보다 우선 독화살을 뽑고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고 했다. 핵심 본질을 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법정에서였다. 증인석에 앉아 있는 소고기 협상대표가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라던 가난한 시절 일 년에 한 번 소고기국을 먹기도 힘들었습니다. 입시 준비를 하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소고기국 한 그릇이라도 먹이고 싶었던 게 한국을 대표하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소주 한잔에 하루의 피로를 푸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값싼 소고기가 수입되어야 합니다. 소수의 목축업자를 위한 국산품애용이라는 정치적 위선에 현혹되지 말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통상국가입니다. 자동차와 반도체 핸드폰을 팔면 그 나라의 물건들을 사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게 소고기 수입의 이유입니다.”
그가 말하는 소고기국에서 김일성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김일성의 국가 목표는 모든 인민이 소고기국에 흰밥을 말아먹을 수 있는 나라였다. 우리가 어렸던 시절 가난한 나라의 꿈이었다.
증인석에 앉았던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허위 방송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그들을 똑바로 보면서 소리쳤다.
“당신들이 미워하는 건 바로 대한민국이야.”
본질을 꿰뚫은 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사건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봤다. 발가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정직한 어린아이처럼 진실을 외치는 청년이 있었다. 판단 결핍증에 걸린 군중이 있었다. 거짓말로 군중들을 선동하고 정권을 뒤엎으려는 존재들도 있었다. 밀과 가라지는 세상 마지막 때까지 섞여 있다. 인간도 선량한 사람들과 사악한 사람들이 공존한다. 정치는 엘리트와 카운터 엘리트의 치열한 싸움판이다. 더러 이념이라는 옷을 입기도 하지만 본질은 권력투쟁이라고 배웠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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