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여린 쑥이 나올 때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오월까지 줄 곳 쑥을 캐는 즐거움 속에 살았다. 투병 중에 계신 서울 고모부를 위해 가져다 드린 일이며, 프랑스에서 잠시 다니러온 며느리에게 국거리와 쑥 개떡 재료를 보내어 고국의 쑥 향기와 맛을 전해줬던 일, 떡을 해서 이웃들과 나누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내손으로 이렇듯 많은 쑥을 캐서 이웃과 함께하며 행복감을 맛보기는 처음일이다. 자연에서 얻은 이 흔한 쑥으로 이웃에게 베풀며 기쁨을 주고받는 일이 삶의 활력이 되고 보람을 안겨주었다.
그러던 늦은 봄 오월, 어느 날 쑥 서리를 하게 되었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도립 종자연구소 숲속에는 조성된 지 십 여 년이 넘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잣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이 자라고 있었다. 그 중에 화백나무 백여 그루가 조성된 숲속에 여린 쑥 무더기가 그늘진 곳에서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그 쑥을 캐 오리라고 단단히 벼르고 날을 잡아서 집을 나섰다. 이웃 아주머니와 함께 가서 쑥을 캐려는데 저만치서 작업을 하고 있던 직원들이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나가라는 것이었다. 여러 날 동안 눈독을 들여놓은 곳이라 아쉬워서 조바심이 났다. 아침마다 그곳을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이 캐가지나 않을까, 작업 중에 모두 베어내지나 않을까 몹시 안달이 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직원들이 근무하는 시간을 피해 새벽에 와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었다.
작업에 방해된다고 했지 쑥 캐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었건만 몰래 캐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기 전에 칼을 쓱쓱 갈아두고 자루 두개와 장갑을 준비해 두었다가 이튿날 새벽 네 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아직 어두워서 쑥과 풀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잡초도 없이 쑥만 무더기로 있는 곳이라 보이지 않아도 한웅큼씩 베어 자루에 넣었다. 이 새벽에 누가 볼 리도 없고, 본다고 해서 쑥을 캐는데 말릴 일도 없는데 어릴 때 김치서리 할 때만큼이나 혼자 가슴이 콩닥거렸다.
열 서너 살 쯤 되었을까, 한겨울에 동네아이들과 연극놀이도 하고 어른들 흉내를 내며 화투놀이도 즐기다가 자정쯤 되어 밥을 지어먹는다. 누구네 김치가 맛있으니 꺼내오자고 살금살금 도둑괭이마냥 장독대로 가서 꺼내온다. 항상 먹는 김치인데도 왜 그리도 맛이 있었는지 그 김치 맛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에는 어떤 녀석들이 그랬으리라 짐작은 해도 도둑으로 여기지 않고 장난스런 서리쯤으로 귀엽게 봐 주던 때이다. 그런데도 왜 그리 가슴이 콩닥거리던지,
두 자루에 쑥을 가득 채워 넣고 양쪽 어깨에 둘러매고 오는데 날은 이미 밝아졌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면 새벽에 자루를 매고 오는 것을 보고 영락 도둑으로 몰리지 않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한사람이 내 곁을 비켜 갔지만 서로 모르는 처지인지라 마음속으로 어떻게 상상한 들 어찌하랴 싶었다. 집에 도착하여 풀어놓고 보니 어마어마한 쑥 더미가 베란다에 그득하다. 깨끗한 쑥인데도 다듬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쑥 한 이파리라도 버리지 않고 주워 담았다. 자연에서 수고도 하지 않고 얻은 이 쑥도 그렇거늘 하물며 손수 갈고 씨를 뿌리며 물을 주어 기른 농작물에 대한 농부들의 심정은 오죽하랴!
마침 지인들의 모임을 이틀 앞둔 터라 쑥 절편을 해서 가져가려고 씻어 삶아내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미리 방앗간에 예약을 해두고 새벽에 떡을 해주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다른 사람들의 쑥 삶아온 것을 보니 줄기까지 삶고 잘 삶아지도록 소다를 넣는다고 했다. 새파랗게 색이 나고 잘 무르도록 소다를 넣는 것이었지만 내 딴에는 쑥 향기가 감해질까봐 소다를 넣지 않고 삶아왔다.
예정대로 이튿날 떡 상자를 찾아가지고 서울행 기차를 타고 모임에 참석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 떡을 나누면서 여차저차 한 쑥 서리 절편이라고 설명했더니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고 했던 가 그래서인지 맛과 향기가 좋다고들 했다. ㅊ화백님께서 참외서리 수박서리라는 말을 들었어도 쑥 서리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고 하시며 맛있게 드셨다.
헤어지게 됨이 예정된 일이라서 그리도 조급하게 쑥을 캐어 대접해 드릴 마음이 우러났는지 모를 일이다. 유난히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투병중이시던 두 분이 앞 다투어 세상을 떠나셨다. 맛있는 쑥 서리 떡을 먹어서인지 변이 검다고 하시던 ㅊ화백님이 위출혈이 계속되는 줄도 모르셨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좌석이 없어 경춘선 기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쑥을 다듬어 왔노라하니 환희 웃으시며 반겨하시던 고모부님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은 오고 4월을 맞이하리라. 나는 여전히 설레며 쑥을 뜯어 나누는 즐거움을 갖게 될 것이고, 또한 내 가슴 콩닥 거리며 서리했던 그 자리에 쑥은 다시 어린 움을 틔울 것이다. 그러나 서리 떡이 맛있다 하시던 ㅊ화백님, 정성을 고마워하시던 고모부님의 모습은 다시 뵈올 수 없다. 봄이 오면 또다시 쑥을 캐겠지만 이제는 쑥이 아니라 아련한 추억을 캐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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