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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40.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Joyfule 2021. 8. 12. 05:28
    
     
     
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40.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KBS 주최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가 한동안 유행했고 
우리들은 누굴 만나면 넌 이산가족 없냐? 라는 말로 말문을 열곤 했다.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TV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을 다시 만나는 감격이 컸던 만큼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흥분해서 대충 입을 맞춰보니 맞는 것 같아 
아이고, 네가 살아 있었구나! 해가며 펄펄 뛰었는데 
시간이 흘러 피자 냉정을 찾고 보니 우리는 싸릿골에서 살었었는데 
이 사람은 까막골에서 살았다고 하고 엉덩이에 있어야 할 점도 확인해 보니 허벅지에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산의 한을 품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래고 있다.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 떨어져 사는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가족 즉 혈육에  대해 우리처럼 각별하게 의미를 두는 민족도 없는 것 같다. 
하기야 역사적으로 수많은 국내외적 환난 속에서 언제나 
식구들의 생계와 안전을 위해 전전긍긍해 왔으니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 역시 바뀌고 있다. 
무너지기 시작하는 가족관계 앞에서 
우리는 가족에 대해 다시 진지한 논의를 해봐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 많아야 서넛인 식구들, 언제나 바쁜 부모,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다한 교육열, 이 틈바구니에서 인위적으로 소외되는 아이들.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는 가족은 어떤 양상으로 변할까. 
물론 당신들의 세대까지는 아직 심각하지 않다. 
대부분이 1년에 몇 번씩은 찾아갈 고향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부모들도 과거에 묻혀서 사는 사람들이라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가족관계는 이들에 의해 지탱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고 난 다음(지금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당신이 결혼해 자식을 낳는 시대에 당신의 가족은 극심한 갈등 속에 서있게 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보편화될 우리의 가족상을 그려 보자. 
당신은 아마 맞벌이를 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또는 남편의 희망에 따라 직장에 나갈 것이다. 
아이들를 낳는 것에 대해 당신은 남편과 아마 말다툼을 할 것이다. 
언제 낳을 것인지, 몇이나 낳을 것인지 때문에. 
어쩌면 피임에 실패해 도리 없이 낳게 될지도 모른다. 
부득이 함께 살아야 할 부모가 있다면 그들을 누가 모시느냐도 형제간에 큰 쟁점이 될 것이다.  
장남은 자기 위치를 포기하면서(상속에서 지금도 장남은 더 이상 어떤 기득권도 가질 수 없다) 
이를 모두에게 분배시킬 것이다. 
대신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하는 책임에서도 해방되고자 할 것이다. 
별 수 없이 형제들이 들아가면서 부모를 모셔야 한다. 
딸이라고 예외가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일년에 상당 기간 동안 당신은 친정 부모를 모셔야 할지도 모른다. 
남편의 부모까지 포함한다면 아마 수개월은 되지 않을까? 
아마 하나인 당신의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증오할지도 모른다. 
서로 양보할 줄 몰라 툭하면 싸우는 부모, 유치원이나 학교가 끝나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늦게 들어온 당신은 가사분담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또는 힘든 직장생활 때문에 아이에게 마음에도 없는 짜증을 낼 것이다. 
아이는 자페증에 걸리거나 아니면 부모와 마주치기가 싫어 방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당신과 아빠가 가르친 버릇으로 늘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아이는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당신의 태도에 지친 나머지 밖에서 바람을 필지도 모른다. 
집에 가야 아내도 없고 어쩌면 귀찮은 아이를 봐야 하니 일을 핑계로 늦게 들어가면서 
여직원과 또는 과거의 여자를 만나 신세 타령을 늘어놓을 것이다. 
상황은 계속 악화된다.  
직장을 그만두자니 당장 수입이 준다. 
더구나 자신이 해온 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이와 자꾸 겉도는 남편이 마음에 걸린다. 
이때 친정 부모가, 시부모가 이번엔 당신 차례라며 가방을 들고 쳐들어와서 한 달 이상 머물다 간다. 
당신은 마치 벼랑에 선 것 같다. 
최악의 시나리오 같지만 내가 보기에 현재 이러한 현상은 
일부 나타나고 있으며 곧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가 생각해온 가족관계는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가 귀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남편은 동반자에서 어느 순간 적대자가 되며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혼자 남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살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독신주의자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공동체로서 구성원 모두에게 연대감을 통한 육체적, 정신적 안정을 준다. 
양보와 질서가 있고 사랑과 보살핌이 상존한다. 
미래가 아무리 개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나보다 우리(가족)를 위해 산다면 가족은 온전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누가 십자가를 질 것인가. 십자가를 진다한들 어느 날 갑자기 대가족제도가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후기 농경사회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