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란 무엇인가?
영의 정의
❋ 사전적 의미 ;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기독교적 의미 ;
사람의 존재가 가장 심층 깊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하나님의 형질의 일부분으로 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존재이다.
마음과 영은 다르다.
마음은 혼에 속한 기능이고
영은 분명한 독립적 존재이다.
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인격이 있고 직관력이 있고 양심이 있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힘이 있다.
은 하나님을 외부 세계로 흘러나가게 해 드리는 생명의 탯줄이다.
은 항상 본질로 만족하고 육체는 환경을 통하여 만족한다.
본질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그 분이 섭리해 나가시는 우주의 질서이고 생명의 길이고 바탕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으로 만족하며 살도록 인간의 육체 속에 영을 지으시고
그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하고 밖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귀한 생명의 존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영이 살아나면 혼과 육을 깨끗케 하고 정결케 하는 엄청난 힘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시작은 영으로부터 되어져야 한다.
영에서만이 하나님의 선한 감정이다 흘러나온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의 존재는 무엇이냐?
바로 영의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서 행하는 2차적인 힘의 존재이지
자기 자신이 인생의 힘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들은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출발이 영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아니면 혼에서 시작되었느냐 그것이 최대의 관점인 것이다.
영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요동치 않고 내면에 생명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영은 바로 자신의 완성이요 자신을 생명의 단계에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자아를 깨뜨리시고 자아 속에 갇혀 있는 영을 해방시키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1. 영이 살아야 하나님과 회복한다.
믿음 생활에서 보면 육신 중심, 현실적인 축복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영의 성장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세상에 교회가 빛을 비추지 못하고 오히려 발에 밟히게 된 근본적인 요인인 것이다.
즉 사명자, 성도, 교회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사실이 커다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영에 대하여 추호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라고
고백은 너무나 많이 하는데도 에는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육은 많이 움직이는데 영은 조금도 살아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의식이 바뀌지 않고 그저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안일한 생각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 충만!’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사역자나 일반 성도나 마찬가지로 영은 성장시키지 못하고 무조건 성령 충만이라는 말만 하면서
자신들이 최고의 차원으로 올라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실제의 삶에는 세상과 사탄에게 엄청나게 조롱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성령 충만으로 모든 것을 무마시키려고 하는 어리석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단순히 ‘성령 충만!’을 외친다고 생명의 성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법대로 십자가의 법대로 행하고 살아야 성령께서 우리의 온 삶을 지배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심령 속에는 성령께서 와 계신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께서 와 계신다고 해서 내 영과 하나 되어 삶을 사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아무리 내 속에 와 계셔도 내 자신이 영으로 성장해서 진리대로
십자가 중심의 삶을 살지 않으면 결단코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수십 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 했는데도 환난과 위기 때에
조금도 그 분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아 내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까 하는 의심이 될 정도로
회의에 빠지게 되어버린 이 시대의 사명자와 성도와 교회의 현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영이 살아있지 않고 육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영이 살아야 하나님과 회복한다.
영이 성장하고 장성하고 거룩해져야 하나님과 바른 생명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다. 육에는 생명이 없다. 육신으로는 하나님과 교제가 되지 않는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사실을 앞서 간 지도자들과 교회가 영혼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서
모든 영혼들이 자기 속에 영이 있는데도 있는 줄을 모르고 그냥 육신적으로 육식의 축복만 바라보고
무조건 맹목적으로 믿음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없다.
오직 그 영이 살아나야 된다. 신
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만이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이다.
2. 인간을 영로 만드시지 않고 육으로 만드신 이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온전한 영적 존재였는데 그러나 영적 존재는 단순히 그냥 만들어서
아무런 인격적 관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피조물에게 하나의 삶을 허락하셔서 그 삶의 고통을 통하여
다시 영적 존재로 재창조시키셔서 온전하게 만드시는 것이 그 분의 깊은 계획이셨다.
다시 말하면 영적 존재를 곧 바로 만들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영적 존재를 육적 존재 안에 넣어서 그 육체를 통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여 다시 온전한 인격을 덧입는 영적 존재로 다시 탈바꿈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것을 2차 창조 즉 재창조라고 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영은 순수한 영의 성품을 유지했지만 그러나 그 영 자체로는 아무런 고통과 슬픔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미숙하기 짝이 없는 영이었다.
이 아담과 하와의 영으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죄와 사탄의 개입을 허락하셔서 고통을 당하게 하는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절대로 살 수 없다는 인간 자체의 절대 무능력의 한계를 깨닫도록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야 살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여시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실제로 도울 수 있는 성령을 보내주셨다.
사람은 육체의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경을 통하여 육신의 절망적인 고통이 다가오면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의지하던
손길을 놓아버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육체가 아니면 하나님의 우주적인 작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육체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육체가 있으므로 죄가 다가오고 죄가 있으므로 고통이 다가오고 고통이 있으므로
십자가가 필요하고 십자가를 통하여 은혜가 부어지고 은혜를 통하여 다시 영이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주님께서도 육체를 입고 오시지 않았더라면 십자가에 높이 못 박히지 못하시고
또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3. 영으로 살지 않는 이유
1) 영을 모른다.
사람은 이미 자신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원죄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영이 죽어 있다는 개념을 아예 가지지 못하고
꿈에도 생각 못하고 다만 태어나자마자 육의 힘으로 자신의 힘으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새롭게 영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생소하고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영역에는 조금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영으로 가는 길이 막연한 것이다.
2) 자연 상태의 굳어진 마음.
육신으로 태어나서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적인 성품이다.
쉽게 말해서 부모로부터 받아 살아가는 힘이 바로 자연적인 성품이다.
자연적 성품의 특징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다.
하나님의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고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독립왕국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데 철저히 맛이 젖은 존재들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결정하고 모든 것이 자기를 통하여 성취되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이 자연적 성품에 습관이 된 자는 결단코 거기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못하고
오직 그 안에만 영원토록 머물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이렇게 자기 중심적인 자아의식을 강하게 고집하게 되었나?
바로 사탄이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통제해야 될 인간의 마음속에 사탄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그 이후로부터는
오직 모든 의식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속성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방향으로만 치닫게 된 것이다.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한 쪽으로만 유도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을 시간마다 갉아먹고 파괴시키는 이러한 사탄의 정체를 모르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가지 사람은 마귀의 심부름만 하다가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신의 연약한 육신의 성품에다가 사탄의 악한 성품까지 곁들여져 있기 때문에
결단코 그 세계에서 일평생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는 자체가 악이요, 삶 자체가 죄악이요,
죄와 악을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자연적인 삶이요 육신의 삶인 것이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8:5-6 5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전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이 갈수록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죽어가기 시작하고 굳어가기 시작하고 부패되어 간다.
그래서 갓 태어난 순간이 제일 순전할 때이고 일단 세상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육체와 정신 위에 사탄의 선악과의 독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흰 백지 위에 먹물이 스며들어가는 것처럼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직 더러워져 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태어나자마자 사탄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 근본 중심에 자신의 고집과 편견과
곡해된 판단 능력이 들어가서 그때부터 평생 동안 오류 된 삶을 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다가
조금만 의식이 체계화되는 성숙된 나이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강력한 고집과 자기주장과
자신의 선호의 감정을 사슴의 뿔처럼 세워 그것을 진리인 것처럼 수호하며 내세우며
자기 유익만 사수하다가 마침내 허무한 삶으로 종말을 고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학교 교육과 사회 규범을 통하여 강력한 자신의 윤리 도덕 의식까지 자리 잡게 되면
그것을 기준으로 마치 자신의 생각이 진리인 것처럼 자신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면서
남은 급속하게 변화되기를 바라며 일평생 어리석은 기준을 내세워 사람을 공격하는 삶으로 끝내고 마는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 신체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태도가 변화되어 궁극적으로 그 사람의 행동과 의사결정이 바뀌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마 3:8).
마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3) 자신만을 고집하는 삶.
모든 것을 오직 “나” 중심으로 강력하게 삶을 구축하다보니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세계에
침범할 수 없는 강력한 자신의 왕국이 건설되고 “나”라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자신을 중심으로 삶을 구축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나의 비위를 건드리지 못한다.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모두다 나의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나의 권위에 도전하면 절단 내어 버린다.
자신 앞에 상대방들이 발 밑에 꿇어 복종할 때까지 싸우며 양보라든지 이해라든지
용서라는 것을 있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기도하는 모든 내용들도 오로지 상대방을 타파하는 내용밖에 없다.
‘주여 그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냥 놔두시면 안됩니다. 버릇을 고쳐주시옵소서. 아니면 데려가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모두가 외골수된 듯한 자세를 가지고 자신만이 구축한 세계를 지키려고 하는 삶의 연속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늘을 품게 되는 것이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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