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감을 느낄 때 - 영적치유.(下)
10. 슬픔을 당했을 때
슬픔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충격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슬픔은 인간으로서 겪는 경험의 일부분이며 피할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숙명적인 것이다. 누구든지 차갑게 가슴을 짓누르는 슬픔을 일생 중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을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외에는 달리 분명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야 한다.
물론, 당신이 슬픔을 만나서 찾아볼 수 있는 철학서는 성경밖에 없다. 성경책은 고뇌와 고통을 덜어주는데 필요한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그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있을 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30 : 5)
당신의 고뇌는 영원한 것이 아니며, 차갑고 엄격한 하나님의 얼굴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그 분의 애정, 친절, 사랑은 당신과 일생을 같이 할 것이다. 당신이 비록 슬픔에 잠겨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어두움의 밤의 장막이 당신에게 내릴지라도, 이 모두가 지나갈 것이다. 곧 광명의 새 아침이 올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므로 그 슬픔이, 애통이, 고뇌가 아무리 길더라도, 당신의 슬픔의 장막은 지나갈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로운 날 기쁨을 줄 것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라." (계21 : 4)
이 글은 지금까지 씌어진 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 중의 하나이다. 이 그림은 위대하시고 친절하신 우리의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의 찢어진 가슴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의 양친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 팔에 안고서 눈물을 닦아 주신 것처럼 인류의 위대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살 때 우리는 고통과 비탄과 눈물이 지나가는 하늘 나라를 깨닫게 되고 가슴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극치의 순간은 슬픔이 아니라, 영원한 선이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과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이다." (시103 : 13)
이 말씀은 자식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분으로 묘사했다. 그 분의 애정과 연민은 항상 우리의 것이며, 그 분은 우리의 슬픔으로 우리와 함께 우신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우신다>는 구절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슬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 : 18)
우리는 이 말씀으로 다시금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 계심을 재확인한다. 당신이 삶의 슬픔과 비극으로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아름다운 이 말씀을 큰 소리로 읽고, 친절한 그분의 현존하심이 당신의 상한 심령을 위로하심을 느껴라.
11. 시험을 당할 때
페터 마르셀씨는 이런 말을 했다.
<시험을 당하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또 시험 당하는 원인은 부끄러움을 당하기 위함이 아니고 시험에 대한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기 위함이다. 시험은 어떤 문제를 정복하기 위한 기회를 의미한다.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모든 목표에 도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증서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를 보시고 어여삐 여기신다.>
시험은 여러 형태로 우리를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는 운명적으로 시험을 이길 정신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이 그 중의 하나다.
여러분이 당한 시련은 보통 누구나 당하는 시련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 시련에 견딜힘과 그 시련에서 벗어날 길까지 마련해 주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 : 13)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시련을 이길 수 있으면 당신도 이길 수 있다. 더욱이 하나님은 당신이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이 건설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해야 될 문제다. 시련이 아무리 고되어도 당신의 힘의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 시련을 극복할 내적인 힘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시련을 이해하시고 당신에게 벗어날 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견딜 수 있는 시련을 주시고, 또 시련을 통해서 당신에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주신다. 그리고 또 당신도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힘찬 용기를 주신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너희는 하나님에게로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55 : 7)
시련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잘못되어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사고방식을 바르게 할 것이며 사고와 사상을 건전하게 하고 정의로운 인간이 되어 옳은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악한 일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이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이 말을 행동으로 표시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사함을 얻게 된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다시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 . . . .(눅4 : 18)
나약함으로 인해서 시련에 다시 되돌아가 희생의 제물이 되는 사람은 참으로 <포로>들이다. <나는 인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한 찰스 디켄즈의 마음을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최악의 감옥은 철창의 감옥이 아니라 사상의 감옥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자신을 감옥에 넣었다. 그러나 우리는 회개하고 그리스도 앞에 자신을 굴복시킬 때, 우리의 죄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다.
12. 피곤할 때
우리는 삶의 의무와 책임이 너무 무거워 때때로 우리의 힘으로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삶의 책임과 의무의 짐이 때때로 우리를 무겁게 짓눌러 우리의 힘이 이를 버틸만큼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 생의 여러 가지 일들로 우리는 피곤하고 지칠 때가 많다. 피로할 때에 즉시 피로를 풀지 못하면 몸에 균형을 잃어 건강에 해를 입는다.
여기에 열거한 성경 말씀은 우리가 피곤할 때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 . . . ."(겔34 : 16)
이 성경 말씀은 당신이 나약할 때,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강하게 하신다는 뜻이 담긴 장엄한 메시지다.
당신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당신은 정력이 쇠퇴하고, 피로를 느끼고 피로할 때 하나님께 되돌아가라. 당신의 정력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만드신다. 하나님께 돌아가 넘치는 힘을 요청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라. 이 말씀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은 말이다. 당신이 그에게 생명을 구하고 그의 뜻대로 산다면 그는 생명을 주실 것이다. 당신이 생명을 얻게 되고, 활력을 얻게 되면 나약함과 정상적으로 찾아오는 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으며, 권태와 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의 길을 견디며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 또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히 :12 : 1-2)
피로를 이기는 길은 당신의 힘을 낭비케 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 짐은 공포, 증오, 분노 그리고 모든 형태의 죄가 해당된다. 사실 후자인 모든 죄가 가장 무거운 짐이므로 성경 말씀에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조금 놀라운 것은 죄는 사람의 마음에 비정상적인 짐을 올려 놓는데, 이 짐이 점차적으로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짐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므로 우리가 생의 경주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면 이 짐을 풀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인내를 가지고 전진하며 마음 깊은 곳에 예수를 모셔라. 그 분은 당신을 항상 돌보실 것이다.
믿음을 실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정상적인 피로의 희생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가벼운 휴식을 취해도 매일 새로운 힘을 얻어 소생될 수 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출33 : 14)
우리는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다. 인생의 과중한 압력과 책임에 짓눌려서 긴장하면서 분주히 돌아다녀 자신의 정력을 탕진하고 있다. 우리는 흡사 우리에게 이익이 되도록 급히 재촉지 않아도 흐르는 힘이 없는 것처럼 생활한다.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진실한 휴식이 뭔지도 모르며, 에너지를 소생시키는 법도 모르는 것 같다. 진실한 휴식의 방법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책임을 다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력을 저축하면서 일하는 법과, 휴식을 취하면서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당신 자신이 이 같은 방법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메시지를 종종 읽고 명상하기 바란다.
우리는 삶의 의무와 책임이 너무 무거워 때때로 우리의 힘으로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삶의 책임과 의무의 짐이 때때로 우리를 무겁게 짓눌러 우리의 힘이 이를 버틸만큼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 생의 여러 가지 일들로 우리는 피곤하고 지칠 때가 많다. 피로할 때에 즉시 피로를 풀지 못하면 몸에 균형을 잃어 건강에 해를 입는다.
여기에 열거한 성경 말씀은 우리가 피곤할 때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 . . . ."(겔34 : 16)
이 성경 말씀은 당신이 나약할 때,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강하게 하신다는 뜻이 담긴 장엄한 메시지다.
당신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당신은 정력이 쇠퇴하고, 피로를 느끼고 피로할 때 하나님께 되돌아가라. 당신의 정력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만드신다. 하나님께 돌아가 넘치는 힘을 요청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라. 이 말씀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은 말이다. 당신이 그에게 생명을 구하고 그의 뜻대로 산다면 그는 생명을 주실 것이다. 당신이 생명을 얻게 되고, 활력을 얻게 되면 나약함과 정상적으로 찾아오는 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으며, 권태와 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의 길을 견디며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 또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히 :12 : 1-2)
피로를 이기는 길은 당신의 힘을 낭비케 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 짐은 공포, 증오, 분노 그리고 모든 형태의 죄가 해당된다. 사실 후자인 모든 죄가 가장 무거운 짐이므로 성경 말씀에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조금 놀라운 것은 죄는 사람의 마음에 비정상적인 짐을 올려 놓는데, 이 짐이 점차적으로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짐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므로 우리가 생의 경주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면 이 짐을 풀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인내를 가지고 전진하며 마음 깊은 곳에 예수를 모셔라. 그 분은 당신을 항상 돌보실 것이다.
믿음을 실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정상적인 피로의 희생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가벼운 휴식을 취해도 매일 새로운 힘을 얻어 소생될 수 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출33 : 14)
우리는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다. 인생의 과중한 압력과 책임에 짓눌려서 긴장하면서 분주히 돌아다녀 자신의 정력을 탕진하고 있다. 우리는 흡사 우리에게 이익이 되도록 급히 재촉지 않아도 흐르는 힘이 없는 것처럼 생활한다.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진실한 휴식이 뭔지도 모르며, 에너지를 소생시키는 법도 모르는 것 같다. 진실한 휴식의 방법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책임을 다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력을 저축하면서 일하는 법과, 휴식을 취하면서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당신 자신이 이 같은 방법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메시지를 종종 읽고 명상하기 바란다.
13. 불행을 느낄 때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불행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가슴 깊은 감동과 감격으로 그 날의 하루에 벅찬 기대를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무엇을 잃은 것 같은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간다.
다음 세 개의 메시지는 불행을 던져 버리게 하고 기쁨으로 삶을 살게 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118 : 24)
이 메시지는 하루를 기운차게 시작하기 위한 강장제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다이나믹한 말씀을 큰소리로 읽어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된 생활과 기회로 가득찬 새 날을 주실 것이며 아울러 지혜도 주시어 사회와 세계를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도록 하신다.
일터로 나가면서 이 메시지를 되풀이하여 읽고, 또 하루일과 중 정신이 몽롱해질 때, 또는 기력이 약해질 때 다시 한번 읽어라. 이 메시지는 당신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시기 위해 착상한 것이다. 불행을 추방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 메시지로 마음과 영혼을 적시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 : 4)
우리는 습관적으로 불길한 생각을 해서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 이런 불행을 치료하자면 즐거운 생각으로 하루를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기뻐하라. 막연히 기뻐하지 말고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께서 당신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라. 이것이 기쁨의 근본이다. 주께서 당신과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할 때, 기쁨과 즐거움이 용솟음칠 것이다. 이는 주가 당신과 함께 할 때, 당신은 삶의 현장에서 결단코 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 지오니 . . . . ."(시89 : 15-16)
진실하고 헌신적인 기독교인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으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관심을 자기 관심으로 이해할 줄 안다. 교인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교인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기쁨이 충만하다. 그것은 모든 불행을 이긴 그리스도께서 주신 승리의 경험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 .온종일 기뻐하며. . . > 얼마나 멋진 표현이냐. 행복하라, 믿음과 헌신, 그리고 구원의 경험을 맛본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라.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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