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침체를 진단하라.
운전중에 혹은 예배시간에 혹은 수업시간에 종종 깜빡 졸았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졸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은 졸다가 깨어 났을 때입니다.
내가 잠이 들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도 잠에서 깨어 났을 때입니다.
우리는 잠이 드는 순간과 조는 순간은 인지하지 못합니다.
깨어 났을 때에라야 아! 내가 졸았구나 혹은 잠이 들었었구나를 알수있습니다.
영적 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제부터 영적 침체를 겪을 것이다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현듯 어느순간 내 영이 침체되어 깊은 나락에 빠져 있음을 느낄 때에라야
자신의 영적 침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날에 너희 주가 임할 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마태복음 24장 42절~44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 마태복음 25장 5절~6절)
주님이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요구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구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지난 세월의 평가를 총점으로 평균치를 내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목사였든, 장로였든, 권사였든, 죽은 사람을 살렸든,
지금현재 그가 구원에 합당한 사람인가가 구원의 조건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린도전서9장 27절)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자신을 구원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역과 공로에 대한 인정을 받는다 해도
육이 영을 지배하게 되면 구원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하였고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졸거나 잠을 잘까봐 몸부림쳐 깨어있기를 소망하는 바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의 요구대로 늘 깨어 있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 침체를 경계하여야 한다
그것은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구원에 직접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영적 침체를 진단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주님을 향한 갈망이 없습니까?
주일날 예배시간에 맞추어 교회에 가서 식순에 따라 의례적 예배를 드리고
축도와 함께 교회를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주님을 사모하여 턱및까지 설움에 복받치는 갈망도 없이
예배가운데 운행하시며 우리를 만지시고 회복시키시는 임재의 경험도 없이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며 설레임으로 기다리는 기대함도 없이
그렇게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둘째. 외롭고 고독한가?
심리적인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도 무언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가치로서
나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옛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영적 친밀함이 잘 이루어져 있다면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너무나 큰 안식을 얻으며 평안이 있고 늘 주님의 위로와 긍휼을 맛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상황에서의 영적 침체는 갈바를 모르고 헤매이는
정신적 상태를 만들어 냄으로서늘 무엇인가 추구하고 채우려하고 찾아다니게 합니다.
외롭고 고독한 사람 , 늘 허전하고 공허한 사람은 틀림없이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세째. 불평 불만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솟아나는가?
불평 불만 시기 질투의 출발은 교만입니다.
육신의 '나' 라는 존재가 우선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잠재되어 있어서
만족과 감사가 없고 솟아나는 불평과 불만 시기 질투를 감추기 위해 가식과 위선이 추가 되어집니다.
이것은 결국 원초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입니다.
왜 나를, 왜 나만, 어떻게 나한테, 왜 나보다 .........
마음에 불평 불만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네째. 업적을 이루고자 열심을 내는가?
보이는 평가와 업적을 세우기 위하여 의도된 일들을 진행하며 조직의 감투를 쓰기 좋아하고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는 경우 이것은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지속적으로 큰 건물을 지향하고 초대형 교회의 건축을 추구한다면
이것도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건물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분이며
사람의 업적과 드러난 공로와 유명세로 평가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마다 큰 건물을 추구하고, 목회자 마다 유명해 지기를 원하고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은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며
이것은 틀림없이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 침체에서 어떻게 깨어날 것인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34절~36절)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로새서4장 2절)
지금 당장 기도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그 분과 인격적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극적인 깨어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도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아버지를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드리는 마음에는 아버지의 은혜가 부어지며
아버지 또한 우리를 신뢰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극적인 깨어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 깨어남을 경험합시다.
그리고 다시는 졸지 말며 잠자지 맙시다.
이것은 주님의 간절한 요구이며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이 우리 코 앞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에베소서5장14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 전서 5장 8절)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
주님 오시옵소서
주님 오시옵소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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