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대중은 어떻게 조작되는가 ㅡ
영화 디 벨레(Die Welle, 파도)
이 영상은 조국 문제로 시끄럽기 시작한 2019. 10. 31.올려졌습니다.
선견지명이 탁월합니다.
지금 제작 되었다면 어떤 영상 일까요?
독재는 엄층 빠르게 진전하고 있읍니다.
파국도 빨리 올까요?
글 / 루트임팩트
디 벨레(DIE WELLE)
‘수많은 군중을 지배하는 것은 권력을 쥐고 있는 독재자 한 사람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견디고 복종할까?’ 그 이유를 프랑스의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Étienne de La Boétie)는 자발적인 복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독재자는 교육과 습관, 유희를 통해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킨다고. 그렇다면 독재자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발적 복종을 자각하고 인간의 본성인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지켜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도자와 지배자를 제대로 구분해 선택하지 않으면, 지배자, 즉 독재자가 우리 영혼과 삶을 파괴한다. 그러나 독재자는 우리 내면에 깃든 히틀러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영화 ‘디 벨레’(Die Welle)의 경고다.
영화의 중심 무대는 독일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장점을 인식하게 해 주려는데 목적을 둔 프로젝트 수업 주간의 일이다. 교사들은 특정 주제를 선택해 일주일 동안 강의하게 되는데 교사 ‘라이너 벵어’(위르겐 포겔)는 『독재정치』과목을 맡는다. 그는 가죽점퍼 차림에 로큰롤을 좋아하고 청년 시절 좌파 운동권에서 활동한 경험도 있는 진보적인 교사.
월요일 선생은 칠판에 ‘Auto Kratie’라 적은 후 독재란 무엇인가 묻는다.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왜냐하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 국민으로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쟁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독재 따위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휴, 지겨워. 차라리 미국 부시를 다루지요”
교사 ‘벵어’는 수업방식을 바꿔 독재권력의 형성 과정을 직접 체험시켜 주기로 한다.
가장 먼저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책상 배치를 통제하기 쉽게 전면을 향하도록 바꾼다. 이어서 독재에는 중심적인 대표인물이 있어야 한다며 대표를 정하기로 한다. 다수결에 의해 ‘벵어’가 대표가 된다. 독재자는 늘 가장 민주적 방법이라는 다수결의 원칙, 선거를 통해 당선된다.
대표가 된 ‘벵어’는 자신을 부를 때 존중의 의미로 ‘헤어(Herr:선생,님,씨 등 영어의 Mr와 비슷한 경칭)벵어’로 불러달라고 한다. ‘히틀러 만세’라는 뜻의 ‘하일 히틀러’(Heil Hitler)가 연상된다.
질문과 답변 때는 자신이 호명한 사람만 대답할 수 있고, 발표자는 일어서서 대답하기로 한다. 통제와 규율 속에서 자유분방한 교실은 차츰 획일화로 향해 달려간다.
화요일 수업시간에 모두 일어서서 마치 행진을 하듯 발을 맞춘다. 학생들에게 흥미뿐 아니라 공동체에 절도와 위력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
유니폼 착용을 제안한다. 군복만 유니폼이 아니고 사회 여러 곳에서 입고 있으며 양복도 유니폼의 일종이라고 호도한다. 나치의 군복을 상징하는 검은색 제복과 갈색 셔츠, 장화처럼 이들도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기로 한다.
수요일 학생들은 변화를 경험한다. 소심했던 학생들은 이 분위기에 만족한다. 절대자가 교실을 장악한 후 평등한 교실을 만들었다는 점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벵어’를 축으로 강한 결속력이 형성되고 이런 모습에 이끌린 다른 반 학생들까지 합류하면서 독재 이벤트의 위세는 확장된다.
대다수가 유니폼을 입은 교실에서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은 학생은 이방인이 된다. 즉, 잘난 척이거나 이기주의자로 매도하고 배척한다.
팀의 이름을 정한다. 비전, 부활, 하얀 거인 등 다양한 이름이 가운데 다수결에 의해 파도라는 의미의 ‘디 벨레’(Die Welle)가 결정됐다. 그들을 상징하는 표식도 만든다.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위력을 떨친 고대 게르만 민족의 행운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처럼. 학생들은 벨레 문양을 과시하기 위해 도심을 휘젓는다. 급기야는 시청 공사현장 외벽에 자신들의 표식인 '벨레'를 그려 넣는 등 위험천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디 벨레’ 일원 중 하나가 동네 불량배 ‘아나코’ 집단에 시달림을 당하자 집단으로 달려가 일원을 구하면서 힘의 과시와 함께 조직의 친밀도는 한껏 고양된다.
목요일 그들만의 인사법을 만든다. 로마의 군대식 인사법을 사용한 나치군처럼.
여학생 ’카로’(제니퍼 울리히)는 ‘벵어’에게 더는 선생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며 이 수업을 멈추라고 주문한다. ‘벵어’가 제안을 무시하자 ‘카로’는 교내에 ‘벨레’의 움직임을 고발하고 반대하는 전단을 뿌린다. 독재자에 대한 고발이자 저항이다.
동네 불량배인 ‘아나코’ 집단조차 이들의 행동에 ‘벨레 파쇼’라고 조롱하지만 ‘벨레’의 단결된 힘으로 적극 맞선다. ‘팀’(프레데릭 로)은 한술 더 뜬다. 독재자를 보호하는 친위대처럼 ‘벵어’의 보디가드를 하겠다고 집을 찾아온 것.
금요일 ‘벵어’는 아내 ‘안케’(크리스티아네 파울)와 ‘디 벨레’ 문제로 인신공격에까지 이르는 논쟁 끝에 둘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여학생 ‘카로’도 ‘디 벨레’ 문제로 그의 남자친구 ‘마르코’(막스 리멜트)와 다투는데 화가 난 ‘마르코’가 ‘카로’에게 손찌검을 한다. 충격을 받은 건 폭행을 당한 ‘카로’보다 ‘마르코’. 그는 폭력을 사용한 자신의 행동이 파쇼놀이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에 ‘마르코’는 잘못된 조직 문제를 제기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오히려 그를 배신자라 규정할 뿐이다.
‘벵어’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수업을 종결 짓고자 한다. ‘벵어’는 학생들에게 프로젝트 수업에서 느낀 것들을 정리하여 제출하라고 지시한다.
토요일 프로젝트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강당에 모였다. ‘벵어’와 학생들의 집회 장면에서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선생은 학생들의 감상문을 읽어 준 후 연설한다.
‘벵어’는 부조리한 독일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디 벨레’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며 이제부터 ‘디 벨레’가 독일을 정복한다고 선언한다. 학생들은 그의 연설에 열렬히 환영한다. 마치 히틀러가 실의에 빠진 독일인에게 ‘독일민족공동체 건설과 행복한 미래라는 목표를 앞세워 열광적 지지를 받는 장면의 축소판이다.
이 연설에 ‘마르코’가 격렬히 저항한다. 오히려 ‘벨레’가 문제라고. 그러나 ‘마르코’는 마치 반역자처럼 ‘벨레’ 구성원들에 의해 앞으로 끌려 나온다. ‘벵어’는 한 학생에게 ‘마르코’를 왜 데리고 나왔느냐고 묻자 그 학생은 선생님이 시켜서라고 말한다. 독재자에게 책임 전가. “그럼 내가 이놈을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도 있겠네?” 이어서 영화는 급격한 반전을 꾀한다.
“독재정치란 바로 이런 거다.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나?”
‘벵어’는 학생들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한테 독재정치가 가능할 것인가 물었던 것. 이게 바로 그거다 파시즘.” 벵어는 ‘디 벨레’의 해체를 선언한다. 학생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때 그 집단적 광기에 빠져 열광했던 ‘팀’이 권총을 빼 들고 강단에 올라선다. 외친다. “디 벨레는 계속된다. 절대 안 죽어.” ‘팀’은 ‘벵어’에게 “디 벨레는 계속된다.”고 어서 말하라며 강요한다. 총성이 울렸다. 가스총이 아니었다. 그는 권총으로 친구를 쏘고 자신의 입에 총을 넣고 자살한다. 경찰이 달려오고 체포된 뱅어 선생은 학생들의 비탄을 뒤로하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
1967년 미국의 한 학교에서 실제 행해진 실험을 근거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전체주의는 어느 특정한 시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게다가 암흑의 역사를 기억한다고 암흑이 등장하지 못하는 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협동과 배제, 경쟁과 배려를 교직 하며 살아간다. 분자화된 현대 사회구조 속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 등장해서 공동체를 강화하고 평등한 구조를 만들어주기를 소망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독재 권력은 이에 상응하는 목표를 내세워 통제하고 장악한다. 지난 시기, 박정희와 전두환 등 군사독재정권은 쿠데타에 성공한 뒤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앞세워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상징조작을 통해 병영국가를 유지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대중은 여전히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결국, 독재는 한 국가의 미봉책일 뿐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이는 공동체에서 배척되고 이들의 상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파시즘의 맹아(萌芽)이다. 우리 모두 역사의 선순환과 긍정을 잊지 않되, 각성과 연대, 그리고 행동을 통해 자유의 가치를 향유해야 한다. 우리 하나하나가 희망의 태산(泰山)이요, 대하(大河)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 파시즘을 경험하지 못한 민주화 이후 세대들이 주의 깊게 봐야 할 영화로 2008년 독일에서 제작. 영화 시간 107분.
감독 데니스 간젤 (Dennis Gansel) 출연 위르겐 포겔(Jurgen Vogel), 프레데릭 로(Frederick Lau), 막스 리멜트(Max Riemelt), 제니퍼 울리히(Jennifer Ulrich) 외.
남돈우(南敦祐)/영화제작자
(현) 씨드윈 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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