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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Joyfule 2014. 12. 19. 01:11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⑴ 샘터의 물소리

 

  우리는 므깃도를 떠나 이스르엘 평원을 흐르는 기손강 상류를 가로질러 동북쪽 20여㎞에 있는 나사렛으로 갔다. 나사렛은 盆地의 산마을이고 옛 도로를 따라 주택들이 자유로이 지어진 고풍의 도시다.
  북쪽 산 중턱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의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마리아의 집터 위에 수태고지 기념교회 있고 그 곳에서 수백 M 떨어진 아래엔 마리아가 예수와 함께 물을 푸러 다녔다는 마리아의 우물이 있다. 샘터 위에도 희랍정교회가 세웠다는 기념교회가 있다. 우리는 교회에 들어가서 묵도를 드리고 안쪽 샘터로 갔다. 큰 샘 줄기가 물소리를 울리며 흐르고 있었다. 마치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는 말씀을 외치는 것 같았다.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이 세상에 계셨던 인간 예수의 초상화를 그린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후 예수는 헤롯의 핍박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가 헤롯왕이 죽자 나사렛 동네에 와서 사셨다. 그리하여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어졌다. 예수는 나사렛 동네에서 양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효성스러운 아들로서 이 샘물을 마시며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웠다. 이 순간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자랐던 고향의 추억을 나와 함께 하리라. 고향의 그리움은 인지상정이다.


 

 [마리아의 집터(현재의 수태고지교회의 자리)의 주변]


 

                


[마리아의 우물]    
[마리아의 우물뒤에 있는 성 가브리엘교회(그리스정교회소속)]
 

⑵ 역사의 山河들

 

  예수의 고향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92㎞, 갈릴리 바다에서 서남 19㎞, 가나에서 남쪽 13㎞에 있다. 사방에 산이 둘러있는 둥근 골짜기이며 토질은 모래땅으로 척박하다고 한다.
   주봉 '네비이스마엘'에 올라가면 북으로 멀리 흰 눈으로 덮인 헬몬산(2850m)이 보이고 약 5.4㎞ 떨어진 곳에는 요나의 고향인 '가드헤벨'이 있다. 남에는 비옥한 이스르엘평야가 다볼산(588m)에서 지중해까지 펼쳐졌다. 서남 18㎞ 지점엔 갈멜산이 전모를 보이고, 남쪽 14.4㎞엔 엘리사가 수넴인의 아들을 살린 수넴이 있고 근방엔 기드온의 샘이 있다. 기드온이 정병 300명을 거느리고 미디안인을 멸한 곳이다. 또 가증한 이세벨이 예후에게 처참하게 죽은 에스렐이 있고 사울왕이 불레셋인에게 죽은 길보아산(520m)과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와 야빈을 물리친 기손강과 그들이 패망하여 거름이 되고 또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 의하여 사무엘의 영을 불러들인 엔돌이 있다. 나사렛은 많은 '역사의 山河들'에 싸인 메시야 예수의 30년간의 보금자리였다.

[나사렛주위의 산하들]

 

 

 
 
   [나인성]                                                  [나인교회에 있는 유화]
(가버나움에서 32km,나사렛에서 동남 9.6km)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성화) 
  
 
 

 [다볼산(Mount. Tabor 570m)]-다볼산은 이스라엘의 聖山중의 하나다.

또 예수께서 제자들과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하셨다고 하여 변화산 이라고도 불리운다.


  
 
 
[다볼산(변화산;560m)의 근경]

 

 


[다볼산에 있는 예수변화 기념성당]
  
  


 ⑶ 예수의 이름표 나사렛

 

   예수는 나사렛에서 사시다가 30세쯤 되어서 요단강에 내려가 세례를 받으시고, 또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갈릴리에 돌아오신 후 성령의 권능으로 여러 회당에서 진리를 가르셨다. 특히 고향 나사렛에서 가르치시니 나사렛 사람들이 놀라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는가. 이는 그 목수(양부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모친은 마리아,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는가.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한가. 그런 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는가."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권능을 보고, 놀라고 당황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선입견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

예수께서 이들 이웃사람에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눅4:24)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과 배척으로 인하여 고향에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셨다.(마13:53-58)

어느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고향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들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를 읽으신 후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온 성경이 예언했고 온 이스라엘이 고대하든 메시야 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메시야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분노하여 동네 밖 산 낭떠러지(13.5m 높이)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했다. 이 곳은 그 후 추락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할 정도로 나사렛 사람들은 무식하고 괴악하고, 풍속이 추잡하여 다른 곳 사람들이 천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멸시도 담긴 이름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밝히셨다. 예수님은 "나사렛" 고향의 이름으로 골고다에서 우리 죄인들을 구속하셨고,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그 이름으로 불리 우시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나사렛은 구주의 영원한 이름표이시다.

⑷ 수태고지 교회

   나사렛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없다. 지금도 신선한 물이 솟구치는 마리아의 우물이 있어서 일찍부터 마을을 이룬 것 같다. 이 마을의 사건은 BC 4-5년경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수태고지를 한 사건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 후 천사가 전한대로 잉태하였다. 해산할 무렵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에 의하여 마리아는 조상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가다가 베들레헴 객사에서 예수를 낳았다. 그러나 헤롯의 핍박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 헤롯이 죽은 후에야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약 30년 후 예수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고향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유대인들의 분노와 증오에 찬 반발로 추락산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할 뻔했고, 그 후 에는 별로 극적인 사건이 없다. AD 66년에 베스파시안(로마황제, AD 69-79)에 의하여 파괴된 적이 있고, 유대 지도자 바르크흐바(AD 131-135)가 로마에 항거하다 실패한 후 대거 갈릴리 지방으로 피난하여 나사렛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후 AD 4세기초까지 나사렛은 그리스도인들이 들어 갈 수 없었다 한다. AD 326년경에 기독교를 공인한(AD 313)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 성 헤레나가 가브리엘 천사가 수태고지를 했을 것이라는 마리아의 집터에 수태고지 기념교회를 세웠다. AD 614년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페르샤(1935년 이후 Iran)와 전쟁을 할 때 헤레나의 성당은 파괴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때 정착하던 유대인들이 페르샤를 도왔다는 이유로 추방되었다.(AD 629년) 그 후 10자군시대(AD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나사렛은 번영되었다. 이 무렵 갈릴리 지방장관인 탄크데드가 로마 건축양식으로 교회와 수도원을 재건했으나 AD 1187년 살라딘(시리아와 이집트의 회교국 군주, AD 1174-93)에게 나사렛이 점령당한 후 AD1263년 칼리프 바이바르스에 의하여 교회가 또 파괴되고, 그 후 400년 동안 모슬렘의 지배를 받았다. AD 1620년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여 1730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또 다시 작은 교회를 세웠고 1877년에 더 크게 확장했다. 이 수도회는 1955년에서 1969년에 걸쳐 다시 부지발굴부터 시작하여 중동지방에서 가장 웅장한 현재의 교회당을 완공하였다.
   이 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한 부지발굴 작업 중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교회당은 우리가 방문한 마리아의 우물교회에서 쳐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웅장한 외양(外樣)은 보았지만 직접 들어가지 못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 교회당은 이태리 무지오가 설계한 20세기 최고의 걸작품이라 한다. 그는 한 교회 위에 또 하나의 교회를 얹어 안에서 서로 통하게 설계함으로서 옛 교회의 유적을 고스란히 보존하였다고 한다. 아래 교회당의 외벽들은 십자군시대에 지은 성전터가 혼잡한 거리에 있어서 서쪽으로 몇야드 옮겨지었다 한다.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폭이 30m, 길이 70m, 우아한 돔(dome) 높이가 60m에 달한다. 재질은 돌로 강화된 콘크리트로 만들어지고 지붕은 구리로 덮고 작은 뽀족탑에는 燈을 얹어 놓았다. 교회당 전면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소식을 전해주는 장면과 예수의 傳記를 기록한 4복음서가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교회당 안에 들어가서 첨탑을 올려다보면 백합꽃을 거꾸로 달아 놓은 것 같아 하늘에서 백합꽃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웅장한 수태고지 기념교회] 
  
 
 
                             
[수태고지교회의 내부]

 

 


 
                        
[수태고지내부에 있는 마리아방]

(이곳에서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 잉태소식을 들었다 한다)


                       
                    

  [성 요셉 기념교회]                                [마리아 방문교회]

(수태고지 기념교회에서100m옆)               (마리아가 산중 엘리사벳 집을
                                                              방문했을 때 마중나온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