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죄의 결과
이제 죄의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먼저 죄는 표면으로 나타나는 징계를 받게 된다. 죄와 고통의 문제는 종교 생활에 있어서 가장 영구적인 문제이며 예수는 또한 이 문제에 대한 학설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든지 사람의 말에 주의하시고, 사람의 죄는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고 경고하셨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 세계는 도덕적인 세계요 그 중심에는 정의가 좌정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죄의 결과로 벌을 받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영국의 소설가 찰스.킹슬레는[기계의 바퀴가 그 고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멈추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고치신 병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기 위해](요5:1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오는 이런 외부적인 형벌은 그들의 내적인 결정으로 말미암아 감소될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우선 양심의 결정에 대하여 말해보자.[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21). 이는 그 약한 아들의 양심이 이 고백을 하게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요8:9) 할때에 그 악한 군중에게도 양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 더 가해하지 아니하고 모두 흩어졌다. 베드로로 하여금 대성통곡케한 것도 이 양심이었다(마26:75).가롯 유다는 자살로서 그 범죄의 형벌을 덜어 보고저 했으니 이는 양심의 가책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또 죄의 결과는 우리를 노예화시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의 선교의 중심 목적은 [사로 잡힌 자에게 해방을 준다](눅4:18)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되느니라](요8:34).사람이 한번 범죄하게 되면 그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그 죄의 걸음을 그냥 계속하려 하여 [노우]하기 보다는 의지적으로 그의 종이 되기가 쉽다. 마카스 아우헤리우스는 인간 의지의 노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은 무엇이든지 당신 마음에 간직한 색깔로 그려진다. 마음은 그 기름으로 물들여진다.]
죄인은 비록 그가 노력하기는 할지라도 그 노력으로서 그 죄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죄는 그를 그 죄의 길로 돌아가는 채찍이 되어버린다. 즉 그의 의지는 필경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또 죄의 결과는 그 마음을 굳어지게 한다 .예수님이 헤롯 앞에서 서 계실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눅23:9,빌라도 앞에 섰을 때와 비교하라 요19:33). 그의 침묵을 하나님 아들의 면전에 앉은 헤롯의 정신적 기능위축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굳어짐이라고 한다. 어떤 영혼의 멸망은 하나님의 예정된 사실이 아니다. 인간을 어떤 암흑 속으로 몰아 넣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 없으리 만큼 죄의 길로 달려간다.
죄는 판단력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며, 계시의 빛을 막아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주 무시하리만치 그 마음이 굳어져 버리는 것이 바로 죄의 보응이다. 미국의 시인 휫티어의 시 한귀를 들어보자.
영원히 자비의 자리에 사랑의 밝은 빛이 비치지만 습관에 매인 너의 발은 이 좋은 자리에 오려해도 올 수 없으리라.
너의 눈이 보기를 거절하고 너의 귀가 하늘의 환영을 못듣나니 너는 하나의 매인 사람 너 자신 어두운 감방에서 신음하누나
죄의 결과는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어지게 한다. 모든 축복 중 가장 귀한 축복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죄는 이 교제를 언제나 방해한다. 그 아버지 집에서 탕자가 받을 흡족한 사랑이 있고, 또 풍성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멀리 있는 동안에는 그 아버지 집의 풍성한 축복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아버지와의 연락이 끊어졌기때문이다(눅 15;13).
하나님을 보는 자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다(마5:8).그러나 죄는 이 청결을 짓밟고 그 환상을 끊어 버린다. 죄 지은 사람의 가장 서글픈 운명은 그의 고독이다(눅 15:4). 그 고독이 가장 불행하다는 것은 그의 형제나 집을 떠난 사실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이 더 무서운 결과를 그에게 가져왔다는데서 알 수 있다.
또 죄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심는대로 거두리라](갈6:7)한 말씀은 심는 사람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은 좋은 일에만 관여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슬픔과 고통과 눈물도 함께 나누게 된다. 한사람의 탐욕으로 가난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게 되고(눅 20:47),아들의 타락은 반드시 그 아버지에게 고통을 준다(눅 15:11). 때로는 남의 실수 때문에 애매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마18:6),이것을 우리는 인간 생활의 연대성이라고 말한다.
[우리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다른 사람 마음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고 테니슨은 노래했다. 타락한 아들은 자기의 비참한 구걸의 생활이 자기 혼자만의 문제이고 다른 사람과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먼 지방에 가서 허랑방탕한 그 생활의 악영향은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게 되었다고 하겠다. 자기도 그 실수의 값을 받고 또 다른 사람도 받게 된다. 누구보다도 그의 아버지는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세익스피어는 리차드로 하여금 이렇게 부르짖게 했다. [오! 하나님,나의 간곡한 기도가 당신의 진노를 진정시킬 수 없사오면 당신은 그 진노를 내게만 베푸소서,다만 내 한몸에만 당신의 노여움을 나타내소서.]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 죄의 비극은 항상 다른 사람을 울린다. 그리스도가 시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 자신은 누구 보다도 비통을 겪었음을 우리는 안다. 죄악의 최종적인 결과는 심판을 받는 것이다. 예수의 교훈에서 죄인의 영벌을 선고하는 최후 심판에 대한 것을 될 수 있는대로 빼어 버리려는 노력을 하는 이도 있으나 이런 노력은 그리스도의 생각에 반대되는 것이다.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중에 강하게 주장되어 있다(마25:,눅 12:). 예수의 종교에서 이런 사상을 빼어 버리는 것은 복음서에 대하여 몰지각한 행동이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항상 회하적으로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그가 이 제목을 말씀하실 때는 언제든지 현세의 심판은 받지 않게 되는 수가 있을지라도 내세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받게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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