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천국복음
2. 유대교의 천국관
무엇보다 이 하늘나라에 대한 사상은 예수님의 창작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의 귀에는 천국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한 말이며 그들의 고대문서에는 천국을 많이 언급하였다. 다니엘서의 한 곳에는 이 말이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나라는 폐하지 아니하리라](단7:14)
이런 구약의 사상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알기 위하여는 먼저 예수님 나시기 전의 유대교의 천국 사상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유대교의 천국 사상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즉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천국관과 세속적인 천국관이다. 정치적인 천국관은 외세의 통치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예컨대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의 목을 누르고 있는 것이 이 정치적 속박과 부자유로부터 해방 되는 길은 하루 빨리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희망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사상은 천국이 예기치 않은 때에 어느 나라도 항거할 수 없는 세력으로 갑자기 임하리라는 사상이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 천국사상이 종교적인 의미나 성격은 상실되고 다만 물질적인 호화로움과 정치세력의 팽창,그리고 세속적인 유익을 소신껏 누릴 수 있는 세계로 알려졌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이 시대에 유행하는 세속적인 천국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그 사상을 시정한 일이 있다. 즉 야고보, 요한 형제가 예수님에게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다른 사람보다 일찌기 운동을 했고(마20:20),또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이 사상을 버리지 못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오니까](행1:16)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지상적이고 정치적이고 비영적인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던가를 엿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천국]이라는 말은 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민족사상을 대표하는 한 슬로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역사에서 보는 바,민족주의 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강열하고 끌 수 없는 부로가 같은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태리의 마지니,중국의 손일선, 인도의 간디 등을 모두 그들의 민족주의 사상을 위하여 열렬하게 투쟁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상은 분명히 자기들의 민족을 새로이 발전시키는 혁명적인 요소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볼때,민족주의 사상이 절대적인 최선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현세적이고 감상적인 민족주의 사상을 초월하여 그의 선민을 발전시켜 민족을 초월하여 전우주적 포용주의 사상으로 모든 백성과 민족이 다같이 사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다.
인류사상 우리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던 유대교의 민족사상보다 더 강렬한 것을 본 일이 없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질문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복음서 기자들이 이 대목에는 특별히 주석을 달았다.[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라](요4:9).이것은 유대교 민족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일례로 손색이 없다. 그런 색체가 일체 금지되어야 할 성전에서 조차 이 사상은 강조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유대인들과 이방인의 바깥 마당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서 경계선을 만들었다. [이방인은 이 안으로 들어 오지 말라.누구든지 이 규칙을 위반하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은 중간시대 유대독립의 영웅 유다스마카비우스가 헬라 정권으로부터 이탈하여 유대인 자주국가를 세우던 그런 인물의 기다림이었다. 유대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그들 역사에 지대한 세력으로 전해지는 중요한 말이기도 했으나 그들의 강조하는 바는 지상의 정치적인 강한 국가에 관심을 모았고 하나님의 뜻을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빈약하였다. 이 천국사상의 정상적인 깨달음은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의 도를 깨닫고, 세례를 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의 배경에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오셔서 그 이름에 해당한 나라를 선포하시고 세우셨다. 그는 재래의 메시야 사상을 대폭 시정하여 그의 설교 중심을 선교에 두셨다. 예수님은 이 점을 넘칠 정도로 강조하시고 여러가지로 다양성 있게 가르치셔서 그 가르침을 간단하게 정의한다거나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 분명하고 중요한 선이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통치력과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력이다. 이제 이 두가지 점에서 천국사상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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