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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 - 3. 마음속의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그 나라

Joyfule 2007. 8. 11. 02:10

제 6 장. 천국복음

1.마음속의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그 나라

 

예수님이 천국을 선포하여 복음의 초석을 놓았을 때, 그가 뜻하는 바를 세가지 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첫째, 하늘나라는 민족주의적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며, 둘째,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세째,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1) 도덕적인 성격.
천국사상은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친구들에게 어느 것이 사람의 원수인가를 모른다고 지적하신다. 그들은 자기의 땅에서 마음대로 활보하는 외국 군대 로마가 원수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참 원수는 로마나 그 군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을 활보하는 악마와 그의 군대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듭 이 말씀을 강조했다. [어떻게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 강한 자를 절박한 후에라야 그집을 늑탈하리라]고 (마12:19).

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강한 자는 누구인가? 로마의 가이사가 아니라 사탄이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를 [유대 온 땅을 다니면서 상한 심령을 치료하고 악마들을 축출하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가 이땅에 임하여 세상의 강자 사탄을 결박하는 것이며 사탄왕국 파괴는 하나님 나라의 왕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는 중에서 이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신 곳은 빌라도 앞에서였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지 아니하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 속한 것이 아니다](요18:36)고 하셨다.

 

인류사상 가장 큰 모순은 이 땅위에 건설된 나라에 대하여 정치적인 야욕이 조금도 없는 예수님을 로마 정부의 대행자 빌라도가 그 로마와 싸우는 선동자라고 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다. 그리고 또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이 지상국가가 로마의 기반으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로 세워지기를 열망하였는데 예수님의 언행 중에는 자기들의 욕망을 이루어주고자 하는 뜻은 전혀 비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이 그런 일을 의식적으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아니했다]이것이 바로 유대 민족주의 입장에서 볼 때 사형에 해당하는 발언이다.

[우리를 장차 다스리지 아니할 저런 자를 물리쳐라]고 군중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통치세계는 이 땅위의 어느 영토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이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즉 우리의 도덕세게를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성격을 가진다.

 

(2) 영적인 성격 천국사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마음속에 바라던 나라는 오직 지상에 세워진 국가 뿐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핍과 곤고를 물리치고 저들에게 윤택한 환경, 생활의 평안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생각할때 언급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일로서 자신들을 물질생활에서 여유있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생각은 사탄이 바라는 방법이다.[먼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 여유가 생긴 다음에 영적인 높은 문제를 생각하라]는 것이라든지, [먼저 평안을 누린 다음에 복음을 들으라]는 방법 등은 사탄의 방법이지 예수님이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의 예수님께서는 이 방법에 대하여 단연코 [노우]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14;17)고 가르치셨다.

 

오늘날에 와서 천국 사상은 지상천국의 연장과 같이 생각하여 먼저 이 땅위의 생활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가져야 한다는 사회주의 사상적 경향으로 복음을 합리화 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사회주의 사상이 중요시하는 물질적인 요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회가 등장하고 생활 환경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이룬다해도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새롭게 지음을 받고 그들의 인격이 썩어져가는 죄에서 심령을 돌이켜 구원 받지 않으면 아름다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회개하고 새로 지음 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축복이다. 심령이 새로워지지 않은 사회의 유토피아는 가장 불행한 고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문제를 무시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참종교는 언제나 사회 문제에 대하여 강한 발언권을 가지며 따라서 지도 이념을 가진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불공평을 시정하여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며,또 그것을 자기들의 신성한 의무로 생각한다. 진실로 영적 문제에서 새로워진 사람은 사회를 개혁하는 십자군 편에 언제나 가담한다. 먼저 할 일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다. 영적인 문제가 바로 이루어진 그곳에는 언제나 물질적인 문제도 바로 잡혀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는 물질세계에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다.

 

(3) 제적인 성격 천국사상은 또한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공상적으로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그 천국이 미래의 어느 시기에나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옛날 선조들이 바라던 그 천국이 지금와서 이 땅위에 실현되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그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 모인 무리 앞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복스러운 내림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큰 음성으로 읽으셨다. 그 내용은 [마음이 상한 자는 위로를 얻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그리고 그는 책을 덮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나니라](눅4:17).

또 다른날 그는 제자들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보는 눈이 복이 있나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지나간 세대의 모든 왕들과 선지자들이 그들이 듣는 바를 듣고저해도 듣지 못했고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찬란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볼 수 있게된 그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하다(눅 10;23).예수님은 거듭 거듭 저희 선조들과 그들이 이미 꿈꾸고 있던 하늘나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눈이 열리고 그들의 영적 환상이 깨끗해지기를 강조하여 권고하셨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의 이상이다. 꿈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온 것이라고 한다.

 

스콧틀랜드 신도들이 박해를 받아 사방으로 이산 당하여 황무지와 토굴 속으로 숨어다닐 때 용감한 스칼취 맹약자 한사람은 [스콧틀랜드의 모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당신에게 그 소재를 밝혀주리라. 스콧틀랜드의 어느 깊은 산골에서 기도하는 남녀 젊은이들이 모인 곳, 그곳이 바로 스콧틀랜드의 교회다]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복음도 이렇게 대답한다.[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모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들이는 남녀 신도가 있는 곳, 그곳이 하늘나라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 돌연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바른 설명이다. 그 나라는 이 나라와 다른 나라로서 영원한 세계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인간의 표면적인 모든 생활을 초월하여 그 중심에 임하는 나라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