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치유의 9가지 지침.
토마스 하트
사랑
여덟째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사랑. 즉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자기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 삶의 수단이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 행복을 이루고 성취감을 맛본다.
다른 사람을 잘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것을 믿으며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젖는 것 만큼 어렵다고 하겠다. 더구나 우리들 중 다수는 진심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게 느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평생 지속될 끝없는 성장 계획이다. 그 계획은 우리의 인간화에 있어 핵심적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핵심적인 영적 문제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치료상의 문제는 결국 사랑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은 아주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하다고 느낀다.
종종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을 주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의 삶은 공허하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만족은 상당 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매우 관대한 사람들도 있다. 흔히 여자들이 그러한데. 그들은 항상 자신을 맨 마지막에 두며.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데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들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필요로 하고 삶에서 얻기 원하는 것을 추구하도록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다. 임상 치료의 궁극적 과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완전하고도 균형있는 기준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거기에 그들의 성취와 행복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 과업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통상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잘 사랑하는 법을 알아내려고 머리를 짜내야만 한다. 결혼생활의 갈등의 대부분은 단지 이 한명의 신비스런 사람을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달려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은 그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줌으로써 언제나 가장 잘 표현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에게 참으로 최선의 것이 무엇인가를 고려할 때. 안된다고 말함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작별을 고해야 할 때도 있다.
이는 특별히 그 결정에 우리 자신에 대한 적절한 사랑까지도 포함시키려 노력할 때 더욱 그러하다. 사랑은 임상치료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문제이다.
치료자
아홉째로 치료자는 내담자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의 현현이다.
앞의 원칙들은 내담자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원칙은 그 안에 치료자를 포함시켜 그 치료자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현 또는 구체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료자는 그대로 놔두면 추상적이고 모호한 어떤 것을 구체화하여 현실적이고 명료하게 만든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만 종종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구체화시킴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들이 있다.
첫째. 우리가 상담하는 어떤 사람에게든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긍정적인 자세로 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을 살펴보고.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편한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아마도 그곳은 그들의 모든 것이 받아들여졌다고 그들이 처음으로 느끼는 장소가 될 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들에 대해 수용적이고 사려깊은 사람이 됨으로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의 현현과 표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분의 상징이며 나타나보이는 표현인 것이다.
둘째. 치료의 환경은 단순히 사람들을 위한 장소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길을 찾는 장소이다. 그들이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고려하고 선택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와 도전 모두를 구체화시켜 나타내보여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선함과 은사를 확증시켜줄 때와 그들이 바른 선택을 하고 있음을 확신시켜줄 때 위로를 베풀어야 한다. 우리의 격려는 권능이 있다. 그것은 해방. 치료. 그리고 성장의 방향으로 자아를 빚어 가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또한 어떤 도전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사랑에 또한 하나님께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내담자에게 유익한 것을 원해야 하며. 행동의 예상 경로와 예상 결과를 지적하여 때로는 그들이 하기 꺼리는 것들도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전하는 균형이룬 활동들에서 우리는 그들을 위한 하나님 그분의 사랑을 최대한 구체화하고 표현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모든 실체의 가장 깊은 차원이신―은 또한 상담과 임상치료. 영적 지도에 있어 우리의 임재와 활동의 가장 깊은 차원이며 근원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상징 또는 화신(化身)을 의미한다.
위의 내용들은 영적 차원이 우리의 삶.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돕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현실적이 될 수 있는가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이 고찰이 목회자들인 우리가 치료와 신학 사이의 영역을 더욱 능란하게 오갈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영역 모두의 특성을 우리에게서 원하며 필요로 한다. 다행히도 훌륭한 치료와 훌륭한 신학은 인간의 치유. 해방. 성장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지니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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