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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욕망에 무너지는 사회

Joyfule 2018. 3. 19. 02:47

 

 

원초적 욕망에 무너지는 사회

필자 : 엄상익님 변호사 

 

 

[일요신문] 

도지사의 여성수행비서가 성추행을 당한 일을 세상에 폭로했다. 자기 말고도 다른 피해자가 있다고 한다. 그늘속의 그런 일들을 이미 많이 봤다. 삼십대 중반 공직에 있을 때였다. 황태자로 불리던 권력가가 조직의 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를 가까이 모시는 여직원 대표가 내게 호소했다. 그의 방에 들어가면 몸을 더듬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안가로 사용하는 호텔로 심부름을 갔던 여직원이 말했다. 방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사례들을 원고지에 하나하나 정리한 후 그에게 보냈다. 며칠 후 직속상관이 나를 불렀다. 나의 목을 자르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모략을 들었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하는 게 부하의 도리지 어떻게 그런 글을 써 올리느냐고 대로하셨다는 것이다. 내게 말을 전해 준 상관은 “글을 써도 알아들을 만한 사람한테 써야지? 안 그래?”라고 하면서 씩 웃었다. 그도 이미 모든 걸 안다는 표정이었다. 권력은 진실도 허위로 바꿀 수 있었다. 
 
또 다른 경우가 있었다. 공천을 받기 위해 연줄을 대서 권력자의 시간을 요정에서나마 잠시 얻어낸 사람이 있었다. 그가 높은 분 앞에서 자기의 신상자료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설명하던 순간이었다. 팔베개를 하고 옆으로 길게 누워있던 높은 분의 손이 뒤에 있던 여인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있는 걸 봤다는 것이다. 모멸감으로 그는 정치인의 꿈을 접었다. 배꼽아래의 얘기는 하지 않는 법이라는 말을 뚜껑삼아 시궁창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덮던 시절이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스타에게 성추행을 당한 한 여성의 호소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여성은 내게 차 안에서 스타에게 따귀를 맞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당시 그 스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를 광신도같이 따르는 일부 팬들과 그에게 거액을 받은 변호사들에 의해 피해여성이 꽃뱀으로 바뀌었다. 돈 앞에 피해자도 영혼을 팔았다. 스타는 피해여성을 해외로 보내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허위가 진실이 되고 진실이 허위가 됐다. 훗날 그 스타의 비웃는 말이 전해져 왔다. 몇 십억이면 대법원판례도 바꿀 수 있다고.  

죄의식이 없기는 정치권력이던 문화 권력이던 성직자건 파렴치범이건 같은 수준이다. 밤마다 돌아다니며 여러 명을 강간한 흉악범을 구치소에서 만난 적이 있다. 도대체 잘못했다는 인식이 없어 물었다.  

“당한 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 생각이 없는데요.” 

피해자의 입장을 한번쯤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님에 틀림없었다. 내가 말을 바꾸어 다시 물었다.  

“딸이나 부인이 당신이 한 짓같이 똑같이 당했다면 그 범인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야 당장 죽여 버리죠.” 

그가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그는 진짜 살인의 전과도 있었다. 

“그게 바로 당신이 받아야 할 형량이 아닐까요?” 

“어?”


그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쾌락만 알고 남의 상처는 개의치 않았던 세상이다. 그래서 성경은 주위의 여인을 가족같이 보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자의 저항인 미투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일부 부작용
도 있겠지만 오염된 세상을 씻어내는 새 물결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