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column

[엄상익 칼럼] 어느 사형수에게서 온 편지...

Joyfule 2018. 3. 22. 02:41

 

 

 

[엄상익 칼럼] 어느 사형수에게서 온 편지...



탈주범 신창원의 흉악한 사진이 지금도 거리 곳곳에 붙어 있다.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잡으려고 비상망을 풀지 않고 있다. 나는 신창원의 흉악한 몽타쥬를 볼 때마다 우리 집에 동거인으로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대도 조세형 씨가 연상된다. 탈주범으로 수많은 경찰과 기자들을 괴롭힌 것은 아마 조씨가 원조격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도 조세형에 대한 항소심의 판결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나는 원철희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었다.
‘저는 달포 정도 조세형의 옆 방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있는 세상을 향해서 혼자 울고 있는 그는 그의 젊음을 가지고 뭘 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판장은 감옥 안에서 기술도 배우지 않고 뭘 했느냐고 했다지만 그는 외로운 독거방에서 값진 기술을 터득했죠.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그 기술을 이용해서 대단한 일을 할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훔쳐서 하늘나라의 커다란 금고에 쌓아 놓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특별한 기술을 그는 터득한 것입니다. 엄변호사님,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세요. 그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을 면접하러 나가는 그의 얼굴이 너무도 순수하고 밝았거든요.’

대도 조세형 씨가 석방되던 날 ,그 편지를 보낸 주인공인 원철희 씨는 아주 작은 노란 십자가 하나를 가지고 구치소 정문에서 기다리다가 조세형 씨에게 전해 주었다.
그가 석방되고 며칠 후 내게 다른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서울구치소에서 7년째 접어드는 최고참 사형수에게서였다. 내가 간접적으로 전해 듣기로 그는 아내가 자신과 아이들에게 밥도 해 주지 않고 교회에 나가는 것에 분격해서, 그걸 참지 못하고 교회에 불을 질러 여러 사람을 죽게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목에 밧줄이 걸릴지 모르는 그의 편지 내용은 이랬다.

‘저는 최고참 사형수로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만을 기다리며 수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고 크신 사랑과 주의 사자들이 돌보아 주셔서 밝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점심시간 뉴스에 조세형 씨가 출소한다는 보도가 나와 정말 기뻤습니다. 그 동안 조세형 씨는 제가 있는 옆 사동에 있었는데 이렇게 기쁜 날 축하 인사도 못 하고 헤어져 저의 이런 처지가 안타깝고 무척 서운했습니다. 그분에게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시며 남은 생을 전도자로 사시라고 전해 주세요. 잠시 감옥 앞 복도를 스칠 때 푸근한 눈웃음 한 자락에도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롭고 마음 아픈 저희들에게 크나 큰 사랑의 선물을 주신 것을 모두 대신하여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지는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그의 사랑은 순백의 짙은 농도였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내가 변호를 맡았던 대도 조세형 씨가 지난 해 석방되고 어느덧 한 해가 넘었다. 그가 집에서 함께 국수를 먹으며 내게 얘기했다.

“정말 이 세상에는 너무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알지 못하는 분들이 저같은 죄인에게 듬뿍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걸 볼 때마다 목이 메어 옵니다.”
사회에 적응해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 더러 알아보는 주부들이나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그들이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앞으로 정말 잘 되기를 빈다는 내용의 격려를 해 주곤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 오후 나의 사무실로 조세형 씨가 계약서를 한 장 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타났다. 한 믿음 깊은 독지가가 월세를 얻어 준 계약서였다. 비로소 그가 처음으로 떳떳하게 자기의 한 몸을 뉘일 자신의 방이 생긴 것이었다. 그는 요즈음 성경의 말씀대로 범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항상 기도하고 기뻐한다.

그의 어느 모습에서도 왕년의 큰 도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이젠 누가 그의 앞에 수많은 보석을 가져다 놓아도 훔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 얼굴만큼처럼 각각 시각이 다른 것 같다. 검사는 조세형 씨가 항소심에서 석방이 되자 상고를 제기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조세형은 석방된 후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을 마치 투사인양 가장했습니다. 최근에는 ‘모래시계’나 ‘장군의 아들’ 등의 영화의 영향으로 조직폭력배가 미화되어 청소년들이 멋진 깡패가 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기도 하고, 탈주범 신창원을 미화한 만화가 등장하여 역시 강도나 깡패를 영웅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세형을 석방한 판결은 또 다른 영웅적 범죄인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안겨 주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검찰측으로서는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의견일 것이다.
나는 지난 해 듀마가 쓴 ‘레 미제라블’ 다섯 권을 다 읽었다. 자베르 경감은 끝까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법의 화신이었다. 범죄인의 단죄는 그의 신앙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장발장에 의해 목숨을 건진 후 그를 체포해야만 하는 사명감과 인간적인 고뇌 사이에 끼어서 갈등하다가 그만 어두운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법에 대한 사랑의 승리랄까.

아무튼 인간 스스로는 다시 태어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그 누구라도 부활시킨다. 나는 다시 태어난 조세형 씨가 세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그에 대한 선입견들을 불사르기를 기도하고 있다.

필자는 변호사이며. 도서출판 낮은울타리에서 하나님, 엄변호삽니다를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