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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이야기

Joyfule 2019. 11. 30. 10:52


 

         유월절이야기

 


유월절은 이스라엘 최고의 절기로 하나님께서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신 자유와 구원의 축제일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전야(니산월 14일)에 '이집트 땅을 치실 때'

사람이든 가축이든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것들을 그냥 '넘어간 것'(pass over) 또는 살려두신 것을 기억하며

그 모든 일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로부 터 구해내셔서 자유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대로 집집마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표시했습니다.

이스라엘과 개혁파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7일 동안 기념하며, 다른 곳에서는 8일 동안 기념합니다.

물론 니산월 15~22일의 7일간 누룩을 넣지 않은 빵( 무교병)인 '마짜'를 먹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센 지방에서 머물게 되며,

요셉이 죽은 후 요셉을 모르는 바로에 의해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기록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미없이 이 부분을 읽어나가지만 사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생활을 통해 이스라엘이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발전된 문명을 접하게 하셨습니다.

전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하시고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능가하는 구별된 제사장 나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들어있습니다.

유월절은 가족끼리 특별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포쉘'이라는 구별된 음식을 먹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바 대로 그것은 삶은 양고기와 무교병 그리고 쓴나물 등입니다.

음식마다 부여된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먹습니다.

그 식사에는 기도와 전승의 내용을 암송하는 의식도 포함됩다.

회당에서는 안식일에 예배의 한 순서로 〈아가서〉(솔로몬의 노래)를 낭독합니다.

유월절은 유대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회상하며 큰 즐거움을 누리는 절기이지만,

엄격하게 식사법을 지켜야 하고, 절기의 시작과 끝에는 특별한 규정에 따라서 노동을 제한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최고의 절기인 동시에 어린아이들의 절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중심이 됩니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집안 대청소가 실시됩니다.

어머니가 청소를 말끔히 마치면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책상밑이나 집안 후미진 곳을 검사합니다.

누룩이 들어 있는 유교병 가루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가루라도 말끔하게 청소하는 것이 유월절을 준비하는 첫 시작인 셈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런 태도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추호라도 소홀한 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그러한 태도는 유월절 음식과 그릇 등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특별히 유월절 첫 이틀간 먹는 무교병은 ''마짜슈므라'라고 하는데

이 무교병은 특별히 추수할 때부터 구별하여 거두어 들여 따로 잘 보관해 둔 밀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탈무드에 기록된 방식 그대로 물의 비율을 맞추어서 반죽하고 정확하게 구어냅니다.

그것을 유월절을 위해 특별히 보관해 둔 그릇에 담아 먹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제기가 따로 있는 것처럼 그들도 유월절에 사용하는 그릇을 따로 보관해 둡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그들이 절기를 준비하며 지키는 가를 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짜'를 만드는 법은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밀가루 비율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죽한 후에 빗같이 생긴 것으로 구멍을 내었습니다.

빵이 부풀어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오늘날은 새모양이나 왕관 모양의 구멍이 생기는 기구를 사용합니다.)

무교병이라도 구울 때 빵이 부풀어 오르게 되는 그것을 방지 하기 위해서 구멍을 뚫어놓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부풀어 오르지 않은 모습, 눌러도 찌그러들지 않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순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한 그들의 열망을 담은 행동이라 하겠습니다.(정직과 겸손)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의 알곡이 되기 위해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가장 무거운 우라늄을 농축한 플루토늄을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서 잠깐 탈무드에 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탈무드란 토라의 원리를 실생활과 문화에 적용하는 일종의 해석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무교병을 먹으라는 말씀은 있지만 무교병의 제조 방법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무교병의 제조방법은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의 경우도 동일한 방식이 적용됩니다.

성경 말씀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출 20:8)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9가지의 구체적인 항목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도 행여 잘못될까 하는 마음에 울타리 율법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거울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는 것은 39가지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다가 새치를 발견해서 그 새치를 뽑으면 그것은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에 해당합니다.(우리가 보기에는 엉뚱한, 새치를 뽑으면 안 된다는 항목이 들어있다는 사실에서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자신들의 모든 삶을 돌아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거울을 보다 무심코 새치를 뽑게 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안식일에 거울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울타리 율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가를 이와 같은 예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탈무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다른 문화 속에서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재해석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탈무드는 '미쉬나'와 '게마라'라는 것을 합쳐 놓은 것입니다.

'미쉬나'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토라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리고 '게마라'는 그 '미쉬나'가 과연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토론한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미쉬나'만 탈무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쳐서 탈무드가 되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마오트 힛딤'이라고 하는 기금 모으기 운동을 행합니다.

유월절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모으는 기금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강제나 압박도 없습니다.

유월절 해방과 구원의 기쁨으로 그들은 기꺼이 자발적으로 이 기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합니다.

이 기금 모으기는 지금까지 계속 행해지고 있는 유월절의 전통입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절기가 되기 위한 공동체적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이 공동체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악은 '개교회주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를 떠나서는 도무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개교회주의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기복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인용하여 거들먹거리며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어불성설입니다.

그런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성령의 역사는 항상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마오트 힛딤'과 같은 운동이 한국 교회에도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유월절 기간동안 그들은 '하가다'라고 하는 책자를 식구마다 가지고 그것을 읽습니다.

'하가다'는 유월절과 관계된 성경의 모든 내용을 따로 모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것을 읽으며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노예시절 먹었던 고난의 빵을 생각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감사합니다.

또한 아직도 자신들이 매여 있는 것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가다'는 자신들의 2000년 전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어 더욱 실감나게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유월절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작됩니다.

왜 이날밤은 다른 날 밤과 다른지에 관한 4가지 질문입니다.

첫번째로, 다른 날 밤에는 누룩을 넣은 빵을 먹어도 되는데 왜 오늘 밤은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어야 되나요?

두 번째로, 왜 다른 날 밤에는 모든 나물을 다 먹을 수 있는데 오늘 밤에는 오직 쓴 나물만을 먹어야 하나요?

세 번째로, 다른날 밤에는 야채를 아무것에도 찍어먹지 않는데 왜 오늘 밤에는 야채를 두 번씩이나 찍어 먹어야 하나요?(유월절에는 야채를 소금물에 두 번 찍어 먹습니다.)

네 번째로, 다른 날 밤에는 다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왜 오늘 밤은 기대어 있어야 하나요?(기대는 것은 자유를 즐기는 자세임)

이런 아이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고 출애굽의 전 여정에 관하여 아버지가 차근차근 자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대개 저녁 6시에 시작하여 새벽 세 시 정도에 끝나게 됩니다.(무려 9시간에 걸친 설교? 가정 예배?)

그리고 그것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유월절 만찬을 시작하게 됩니다.(그 인내 그리고 반복을 통해 깊어지는 감사)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월절은 아이들의 절기라고 부를 만큼

아이들에게 자신의 조상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일에 촛점이 맞춰집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철저히 교육하고 아이들은 다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철저히 교육할 수 있도록

반복하고 반복해서 유월절의 모든것을 가르치고 전달합니다.

그래서 유대인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과거에 조상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고 또 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신앙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발전되어 철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cf. 유대인들은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유대교인이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가족이 유대인 회당에 다니지 않으면 유대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닉 주이시'의 경우도 대부분 혼자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유월절과 관련하여 꼭 기억해야 할 성경의 내용이 있습니다.

모세의 소명 장면입니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보고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발을 벗으라."(출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신발을 벗으라는 것의 의미는 이제까지 모세가 배우고 익힌 인생의 모든 경험을 벗어버리라는 의미였습니다.

참고로 '이력서'라는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직장에 입사할 때 쓰게 되는 이력서란 신발 '이(履)', 지낼 '력(歷)', 글 '서(書)'입니다.

한마디로 이력서란 신발이 다녔던 기록이라는 말입니다.

신발이 다녔던 기록이란 삶의 모든 여정을 말합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배운 온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왕자로서의 교육,

그리고 광야생활을 통해 배운 시련과 고독의 교육까지 자기 인생의 모든 경험을 벗어야 했습니다.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 사실이 보다 더 확실하게 밝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뱀으로 변한 지팡이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뱀이란 머리를 잡아야지 꼬리를 잡으면 물리게 되어 있습니다.

광야생활을 통해 수도 없이 뱀을 만나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시더라도 그대로 순종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버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신발을 벗을 때에라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40년의 유랑생활 역시 그들의 신발을 벗어버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유월절이란 그렇게 신발을 벗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를 이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신고 있는 신을 벗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신을 벗었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렇게 40년 광야생활을 지나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부터 닛산월 15일 전날 밤에 시작하는 유월절을 오늘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린 양의 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는 그림자였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사명을

그리스도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명을 완수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복음을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의 유월절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도하면서 새롭게 결단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참 자유를 지닌 자유인으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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