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와 묵화 - 청호
유화의 깊은 색을 보면, 화가의 희로애락 감정을 삭이고 묵혔을 시간이 느껴진다. 묵화를 보며 실제 꽃송이나 나뭇가지보다 더 힘찬 필력이 보이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무렵 어느 은행의 새해 달력에서 연못에 핀 수련 그림을 보았다. 이발소나 길가의 액자가게에 걸려 있던 그림과는 다르게 보였다. 나중에야 모네의 「수련」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눈여겨보았던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유화를 배우러 다녔다. 유화물감에 섞어 쓰는 테레핀 유의 송진 향과 이젤의 캔버스가 여기저기 있는 화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젊은 나를 사로잡았다. 모두 제 그림에 열중한 모습이 좋아서 내가 해야 할 전공을 잊고 빠진 적이 있었다. 의욕과는 달리 데생을 통하여 사물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는 눈을 익히지 않았으므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전공을 버리고 미대생처럼 전념할 수도 없어서 결국 그만두었다.
유화를 그리며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유화의 물감은 수채화의 물감과 달라서 색이 무겁고 두껍다. 물감의 성질 때문에 잘못 그리게 되었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먼저의 잘못된 그림은 새 작품의 바탕이 되는 것이 유화만의 특징이자 매력이었다. 인생도 유화와 같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수나 아픔은 다시 시작하는 일 속에 다 묻히고, 경험 위에 항상 더 나아질 수 있다면 희망적인 삶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하게 될 생각을 그때 이미 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고 때 친구가 묵화를 배운다고 했다. 초등학교 습자(習字) 시간에 내가 쓴 글씨가 게시판에 항상 붙었던 일로 힘을 얻어 나도 배우러 다녔다. 방에 배는 먹 향이 좋아서 묵화를 치며 일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마음은 그랬지만 만나야 할 친구가 더 많았고 다른 사정도 생겨 그만두게 되었다.
묵화를 배우며 유화와는 완전히 다른 점이 있는 것을 알았다. 묵화는 붓이 한 번 지나가는 것으로 선이 이미 완성되는 것이어서 덧칠을 해도 되는 유화와는 달리 고칠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이나 말은 지울 수 없는 묵화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인생이란 묵화의 붓 자국과 같이 한 발자국마다 이미 삶으로 만들어진 과거였다. 지나온 발자국은 없애거나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십 대 초반에 그림을 통하여 세상을 사는 법은 알았지만 아는 것처럼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추사 선생이 즐겨 쓴 난초의 화제(畵題)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난을 그릴 때 단 몇 획으로 그려도 그림에서 모자람이 없어야 하고 백 획으로 그려도 빼어야 할 획이 없어야 한다.”
나는 이 화제를 쓰면서 난초를 그리는 법뿐만 아니라 인생을 생각해보곤 했다. 서너 잎, 아니 한 잎으로도 난초로서 완벽하려면 선에서 뿜어 나오는 그린 사람의 필력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역시, 한 가지에 혼신을 다하면 몇 잎으로 그린 난과 같을 것이다.
수많은 잎이 부산스럽지 않고 어우러지려면, 선 하나하나에 힘뿐 아니라 사이의 간격이나 각도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바깥으로 일어나는 온갖 일에 관여해야 할 때가 있다. 온갖 사람과 상황의 부대낌에도 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과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난을 이렇게 치는 것은 대가만이 할 수 있고, 인생 또한 이와 같이 사는 것은 원숙한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마흔이 되어 호암 갤러리에서 박수근 화백의 전시회를 본 적이 있었다. 전시장에서 ‘마티에르 기법’이라는 화가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설명해놓은 게시문을 읽었다.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칠을 한 후에 물감이 마르면 나이프로 긁어내어서 다시 칠을 하는 반복으로 깊이와 무게를 주는 기법이라고 했다. 박수근 화백은 “우리나라의 옛 석탑과 석불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껴서 조형화에 도입했다”는 인터뷰 기사도 있었다.
관심이 있던 그림을 시작은 해보았지만 온 힘을 다하지 않았듯, 일찍이 그림을 통한 깨우침은 있었지만 행동에 사려가 깊었던 것은 아니었다. 좌충우돌의 삶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살아내야 하며 캔버스 위에 다시 다른 그림을 시작한 것과 같았다. 난초를 배울 때 서투른 획과 농담이 어우러지지 않은 꽃으로 수많은 파지를 내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가기만 하는 시간 속에 잘못된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언제라도 다시 노력하는 일밖에 없다.
난초보다 힘 있게 벋은 추사선생의 한 획 역시 수없이 많은 파지 끝에 그려졌을 것을 생각한다. 묵화가 붓 자국이 다 드러난다고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기다릴 수는 없고, 추사의 화제(畵題)와 같은 자유자재를 이상으로 삼아 그려야 할 따름이다. 박수근 화백이 사용한 마티에르 기법과 같이, 지난 것으로 바탕을 삼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 깊은 빛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산다는 일이었다.
이십 대 젊은 시절에 유화와 묵화의 곁을 슬쩍 지나치며 알았던 것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긁어내는 반성을 한 후, 또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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