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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중년을 말하다

Joyfule 2015. 10. 1. 09:54

 

 

 

융, 중년을 말하다

 

감당하기 힘든 중년의 위기… 가면 벗고 콤플렉스에 맞서라
융, 중년을 말하다(대릴 샤프 지음, 류가미 옮김/북북서/ 비소설)

우울증이나 불안 등 ‘중년의 위기’는 우리뿐 아니라 서구 등 대개의 문화권이 대동소이하다. 그것은 ‘중년’의 나이에 걸쳐 있는 사람들의 내부에 어떤 공통적인, 카를 구스타프 융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원형(archetype)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년의 위기’를 다루는 책이나 드라마를 보면 거의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불륜의 문제 등 외부 요인으로 원인을 돌리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상투적 결론을 맺고 만다. 그게 아니면 중년의 갈등을 개별적인 병적 증상으로 외면해버린다.


이 책은 결혼생활에서 위기에 처한 서양의 한 중년남성이 정신분석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분석작업을 진행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직면하고 분석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그렸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카를 융 연구소를 졸업한 캐나다 국적의 저명한 정신분석가다. 따라서 융 학파의 분석 방식으로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쉽게 융의 이론과 친숙하게 인도해줘, 순수하게 융의 심리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보기 드문 입문서다.


융은 중년의 위기를 병적인 증상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자기 치유과정으로 보았다. 즉 중년의 위기는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따라서 중년의 신경증 때문에 그 전의 인격이 무너지는 경험을 새로운 차원의 의식을 가져다주는 의미 있는 과정으로 본다.


융 사상의 핵심은 자기(Self)와 자아(Ego)의 개념이다. ‘자기’는 의식의 빛이 닿지 않는 무의식의 바닥이자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 포괄하는 곳이다. ‘자아’는 훨씬 작은 세계, 의식과 분별의 세계다. 자아는 자기를 발견하기 어렵다. 융에게 ‘자기실현’이란 바로 자아가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서 나오는 자기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그것을 향해 가고 있다.

중년의 위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불거진다. 그 키워드가 융이 집단 심리의 한 측면으로 설명하는 ‘페르소나’(가면)다. 페르소나는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로, 우리는 그 가면을 쓰고 배우처럼 연기한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닌 게,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쩔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멋진 페르소나-친절한, 유능한, 명랑한, 가정적인-를 가진 사람들을 특별히 우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가면을 벗어야 할 상황에서조차 페르소나를 벗을 줄 모른다. 하지만 중년에 이르면 우리는 그 ‘가짜’에 한계를 느끼고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참된 자신의 모습,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중년의 균열을 비집고 파괴성을 띤 채 떠오르는 게, 페르소나에 가려져 있던 ‘그림자’다. 그림자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돌보지 않았던, 부정했던 내 안의 ‘미지의 타자’다. 그 한 양상이 각종 콤플렉스다. 특히 부부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책에선, 중년의 부부관계를 금가게 하는 그림자로 마더콤플렉스와 파더콤플렉스에 기인하는 아니마(남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여성적 요소)와 아니무스(여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남성적 요소)의 ‘투사’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융은 그림자를 ‘직면’할 수 있다면 그 파괴성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그림자를 인생의 후반부에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실마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직면’을 통한 개인의 심리적 발달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개성화 과정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축을 세우는 작업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솔직하게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홀로서기의 과정이다. “진정한 치유는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다”라는 융의 말이 그것을 압축적으로 들려준다.

(엄주엽 기자/ 문화일보 2008-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