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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Part 3. 분석심리학의 주요 개념

Joyfule 2015. 9. 30. 09:54

 

 

 

칼 융 Part 3. 분석심리학의 주요 개념

 

 9. 초자연적 현상

 

예순 다섯살이 되던 1944년 초, 융은 넘어져서 발을 다쳤다. 이어서 심장발작이 일어났다. 약물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에 간 융은 무의식적인 착란상태에 빠져 체외유리out-of-body 경험을 하게 되었다.
코스섬Kos Island
터키 남서부 해안근교에 있는 그리스령 섬. 그리스시대에는 문예활동의 중심지였으며 히포크라테스의 출생지라고 한다.
“나는 어떤 운석 같은 우주 행성으로 날아가서 거대하고 시커먼 바위를 보았습니다. 그 바위는 어떤 사원 주위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 사원입구로 들어가니 작은 대기실이 있었고, 더 안으로 들어가니까 어떤 힌두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하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바위에서 나는 내게 무슨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건지, 내가 왜 태어나게 되었던 건지, 그리고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땅에서 어떤 얼굴이 솟아올랐어요. 그리스왕, 혹은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가 머무는 신전이 있는 코스Kos섬에서 온 바실레우스basileus였죠. 아하, 이 사람이 내 의사로구나, 하고 난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코스섬의 바실레우스라는 원초적인 형태를 하고 내게로 온 것이지요. 그는 ‘자네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는 정신을 차렸고 그 영상은 사라져 버렸지요.”
바실레우스basileus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왕, 또는 왕과 같은 유력자를 부를 때 쓰인 말.
융은 그러나 착란상태에서 깨어난 것에 저으기 실망하면서 삶으로 되돌아온 것을 원망스럽게 여겼다. 한편 그는 환각 속의 의사가 바실레우스라는 ‘원초적인 형태’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다. 그것은 뭔가 치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환각의 의미는 내 진짜 의사양반이 내 대신 죽게된다는 뜻일거야. 이런, 그의 목숨이 위험할 지경인데, 이런 이야기를 해주어도 그는 아마 내 말을 믿지 않겠지!”

융이 중얼거리자, 간호하던 여인이 융에게 물었다.

“왜 의사선생님을 자꾸 ‘코스의 바실레우스’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자 융이 정신을 차린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의사가 옆에서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융선생은 지금 환각상태에 빠져있는 거니까.”

의사는 며칠 뒤 융에게 이제 일어나 앉아 있어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그 때 융의 머릿속에 갑자기 1944년 4월 4일이라는 날짜가 떠올랐다. 그 날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1944년 4월 4일, 융을 치료하던 의사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패혈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융은 점점 건강을 회복함에 따라 더 많은 영상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로써 밤마다 천상의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객관적인 진실과 똑같은 성질을 지닌, 진짜 실재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가 되는 非일시적인 상태의 엑스터시를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병을 앓으면서 거의 죽음에 이를 뻔한 경험을 한 이후, 융은 주요한 연구결과를 집필하였다. 자신의 영혼을 부르는 이상한 ‘무언가’가 전례없이 강해진 것을 느끼며 70대를 보내면서 이제 융은 그 존재에 목소리를 부여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우리는 융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익숙했다는 사실을 이미 공부하였다. 융은 집에서 유령을 본 적도 있었고, 한번은 그를 위협하는 여자유령에 쫓겨서 잉글랜드의 어떤 저택에서 차를 몰고 도망쳐나온 적도 있었다. 하루는 융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영상이 갑자기 마음에 떠올랐다. 집에 도착한 융은 호수에서 배를 타고 놀던 어린 손자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거의 익사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또 한번은 어느 결혼피로연장에서 어떤 낯선 남자와 범죄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융은 자신의 생각을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어떤 사람의 사례를 지어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좌중에 당황스러운 침묵이 흐르고, 모두 융을 따돌리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알고봤더니 융이 지어내서 말한 그 예가, 자신과 이야기하던 낯선 남자의 일생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분석가이자 의사로서, 융은 늘 자기 환자들 주위를 맴도는 어떤 ‘조짐’ 같은 것을 감지하였다. 한 환자의 아내가 융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청나게 많은 새들이 어디선가 날아와서 조부모님의 방 창문밖에 수없이 몰려들었답니다.”
융은 이 이야기를 들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 환자에게 이렇게 권했다.

“아! 당신의 치료는 거의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좀 걱정되는 게 있군요. 심장전문의에게 한번 가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환자는 융의 말대로 심장전문의에게 갔지만, 의사는 아무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돌아오던 길에 융의 환자는 거리에서 쓰러져서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곧 사망했다. 그가 집으로 옮겨질 당시 그의 아내는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남편이 의사에게 간다고 집을 나서자마자 한 무리의 새들이 집으로 날아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융은 이렇게 답한다.

“전이transference가 환자의 어떤 부분, 즉 의사와 환자간에 어느 정도 무의식적인 연결고리가 생겨난 환자의 어떤 일부에서 일어날 때, 종종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생겨납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이따금 했지요.”

융의 타고난 직관력과 인격의 순수한 힘으로 인해 그는 점차 구루, 즉 자신이 말한 ‘늙은 현자’와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그는 어떤 징조가 가지는 정신적 실재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성성의 측면을 탐험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중국의 신탁문서 ‘주역’에 빠져들었다. 융이 ‘주역’에 매료된 것은 1920년이었다. 볼링겐에서 보낸 그 해 여름, 그는 '주역'에 몰두하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백년묵은 배나무 밑에서 ‘주역’에 나오는 기법을 연습하며 몇 시간 동안 앉아있었다.”
그렇다면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융은 ‘주역’을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했었다. 예를 들어 한 청년은 강한 어머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한 소녀와 결혼을 해야할지 확신을 할 수 없다고 융에게 말했다.

“저는 제 콤플렉스 때문에 또다른 ‘압도적인 어머니’를 가지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주역’에는 이렇게 나와있다네. ‘처녀는 강력하다. 그런 처녀와 결혼해서는 안된다’.”

융은 신성성에 대하여 적대적인 서양인들이 일종의 ‘악의적인 오해’를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주역연구소를 설립하지 말라는 익명의 편지를 받고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서구 정신의 끔찍한 편견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은 과학의 미명 하에 묻혀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융의 신비로운 신성성이라는 제 2인격과 과학자이자 이성주의자라는 제 1인격이 모호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은 융의 일생에 걸쳐, 그리고 그의 연구 전반에 걸쳐 꾸준히 나타난다. 모든 서양문물 기저에는 이러한 대극들opposites의 길항작용-마음과 물질, 영혼과 신체, 질서와 혼돈, 영원과 죽음 등- 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