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리더십
15년 전, 성웅 이순신으로 신격화된 역사 교과서뿐인 그 당시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소책자 이순신을 읽고 감탄 또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감탄을 한 것은 그의 기막힌 리더십 스타일 입니다.
그리고 비범한 발상력, 즉 생각의 유연성도 그렇습니다.
노일전쟁때의 명장으로 알려진 일본 해군의 도고 헤이하찌로 제독은,
세계 제일의 수군 제독으로 이순신 장군을 꼽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칭송했을까요?
충무공의 무사봉공(無私奉公)의 마음, 애국심, 강직성, 청렴결백 등은
우리를 매료시키는 그 어른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배워야할 것은 그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그 당시 수군의 상식을 바꿔버린 충무공의 테크놀로지 능력인 것입니다.
도고 제독이 충무공을 존경하는 것도 공(公)의 애국충정과 더불어
그의 유연한 천재적 발상력,
그리고 확고부동한 직업군인으로서의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거북선은 그의 창안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시도되었던 것인데,
1591년 2월 47세 때 전라 좌수사가 되면서 그해 4월에 벌써
실전용 거북선을 서둘러 개발 제작케 하고, 실전에 동원할 수 있도록
작전운용과 전투 기술을 훈련시킨 점이 그의 선견성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완전한 창조라는 점입니다.
그 이전에는 벤치마킹 할 모델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당포(唐浦)해전(5월29일)에서 거북선이 처음 등장하여 해전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그는 정보의 가치를 엄청 중요시 했습니다.
남해안 일대 도서와 조류에 관한 정보를 수집 연구하여,
여기에 맞춰 전기(戰技)를 정밀화한 것입니다.
거기에 적장의 성격 행태에 관한 특징까지 조사했죠.
이것이 바로 왜군이 당해낼 수 없었던 충무공의 틀을 깬 테크놀로지이며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애국심이라든가 무작정 ‘하면 된다!’ 식의 정신주의.
또한 순국이니 옥쇄(玉碎) 따위의 비장감 서린 감상주의는 패배만을 가져옵니다.
원균 장군이 그 본보기입니다.
50세 가까운 나이에 천재성 발휘
여기서 충무공은 얼마나 물에 익숙한 장수이며 수군 전문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노산 선생님의 글로 더듬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충무공은 원래 수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1545년 서울 건천동(지금은 인현동) 태생입니다.
그의 천재성이 꽃을 피운것은 류성룡이 그를 전라 좌수사로 발탁한 데서 입니다.
기적을 만든 인사 발령이었습니다.
32세에 겨우 무과에 급제한 사람. 당시의 평균수명은 30이 안되던 시대에
중늙은이가 겨우 턱걸이를 한 것이죠.
재수가 아니라 삼수나 사수쯤 되었을까.
급제 후에도 운이 없어 계속 보임이 바뀌고 여러 곳으로 근무지가 이동되었습니다.
수군에 오랫동안 종사하지도 못했고, 남해안 일대에 익숙지도 않은 그가
그것도 50에 가까운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균 장군의 용맹함이 그 당시 장수들의 모델일 것입니다.
진두지휘하여 적의 목을 많이 베는 것.
그것이 성과로 평가되어 승진도 하고 명성도 얻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조선시대의 공통된 출세 행태일 것입니다.
충무공은 이 틀에서 이탈한 사람. 당시로서는 천지가 놀랄 리더의 파격적인 새 스타일.
상식의 틀에서 볼 때 좋은 리더란, 너털웃음을 터트려가며 술판을 벌리고
부하들을 즐겁게 해주며, 또 용돈을 마구 뿌려 인기를 모으는 리더일 것입니다.
충무공은 전혀 딴판의 행태입니다.
냉철하고 깐깐하고 빈틈이 없는 차가운 사람. 돌다리도 두들겨 걷는 타입.
호탕한 맛도 없고 용약 저돌적 용맹함도 없는, 마치 꽁생원 같은 리더.
그것이 충무공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의 세세한 일들을 붓글씨로 자상하게 기록해 놓은 세밀함.
사내대장부가 할 일은 아니죠. 요즘 사람도 직장에서 피곤해진 몸인데,
언제 집에 돌아와 일기를 꼼꼼하게 쓴단 말입니까. 저는 못합니다.
변화의 시대, 변화된 리더십 요구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는 영웅시대의 리더가 아닙니다.
지금이 바로 충무공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를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IMF 이후의 변화, IT시대의 시대적 특징이란
바로 이런 리더십의 변화를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충무공의 리더십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관점을 정리해 봅니다.
1) 제갈공명을 능가하는 정보력과 인간 행태에 관한 통찰력.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실천한 냉철한 두뇌.
2) 거북선 전문가의 능력을 파악한 다음,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리더십.
맡긴 다음엔 지원을 철저하게 해준 점. 쓸 때 없는 간섭일랑 아예 하지 않은 것.
3) 당시 상식인 자기의 입신출세만 생각하는 사고스타일에서
국가 민족 중심의 사고를 한 점. 충무공은 임금의 눈치도 보지 않았고,
다른 동료 질투꾼들의 시선도 무시했으며,
오직 전쟁의 목적(승리) 중심으로만 행동했다.
4) 불필요한 형식주의에서 탈피. 실용주의 사고를 실천한 점.
5) 결정적인 것은 그의 유연성. 적의 사고행태에 맞춰
나를 변화시키고 대응해 나간 점.
상식을 뛰어 넘는 유연성! 천재의 특성입니다. 테크놀로지 시대에 맞는 리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그의 죽음을 혹자는 자살이라고도 합니다.
일부러 총알이 날아오는데 무방비상태로 자기를 노출시켰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풍토에 맞춰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힘든 성격의 소유자.
오직 임진란 전쟁에만 맞는 인물이 었습니다. 전시(戰時)가 아니라면
이런 성격의 리더십은 소외당하기 십상입니다.
그의 유연한 사고력은 전쟁터에서만 진가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썩은 소인배들 사회에서는 타협하지 못하는 꽉 막힌 성격이 되어
도태당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타입의 리더십을 좋아하십니까?
자신의 타입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나의 가족들은, 과연 내가 어떤 스타일의 아버지이기를 원할는지요.
공선표 인적자원연구소 (200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