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도와 그의 영성
5) 이용도의 신비주의와 교회적 배경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좀 더 객관화시키기 위하여 그가 활동하던 1920~1930년대의 그와 연관된 교회에 관한 사적과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정확한 상황판단을 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각 교단의 회의록이나 기타 문서를 근거로 해서 추리해 본다면 이 당시의 한구교회는 어느 정도 처음 교회의 열의와 박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용도의 영성이 더욱 많은 사람들로부터 요청되었다고 본다.
이용도가 1931년 개인 메모지에 서양 기독교와 동양 기독교를 비교한 것이 특이하다. 서양 기독교는 동적이요 외형적이며 형식적인 것으로 음양설에 비교하면 양적인 것이다. 동양 기독교는 정적, 내적, 신비적이라서 음적이라 하였다. 서양 기독교는 동적인 면을 잘 발달시켜 왔다. 그러나 위기에 부딪친 인류문명과 아시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동양적인 것이 요청된다. 서양 기독교는 공관복음이라면, 동양 기독교는 요한복음이다.
6) 이용도의 영성 이해
(1) 기독교 영성의 의미
일반적으로 영성이라는 말은 어떠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든지, 또는 누구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자기의 정신으로 내면화시켜서 소크라테스의 정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스토아 학자들은 스토아주의 영성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영성이란 무엇인가? 조지 오먼에 의하면 진정한 기독교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성삼위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즉, 기독교의 영성생활은 믿음, 사랑 등 여러 덕행을 통해서 작용하는 은총의 내적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영성의 신비적인 요소가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신비체험의 요소로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활동, 성령의 은사, 인간의 수동성, 인간 의지의 자유를 볼 수 있으며, 신비체험의 결과로 믿음, 소망이 증진되는 변화의 역사, 사랑의 실천을 통한 윤리성의 고양 들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 신비주의가 기독교 영성과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실 우리가 영성에 관해서 언급할 때 중세의 신비주의자나 타울러 등의 독일 신비주의와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로 대표되어지는 근대적 경건주의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들을 신비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기독교 영성의 거장들로 영성신학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이용도의 영성 이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용도를 기독교 신비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러한 평가는 이제까지의 그에 대한 연구가 주로 신비주의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졌고, 신비주의의 부정적인 시각과 신비주의 자체의 한계성 등으로 이용도의 전인적 신앙을 파악하는데 적절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그의 영성적 측면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새롭고도 올바른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민경배 교수의 지적대로 그가 한국적인 경건의 한 본보기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의 많은 영성가들을 말하면서 한국인의 영성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한국적인 영성의 한 본보기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가. 그의 영성의 일반적인 배경
이용도의 영성의 일반적인 배경은 불우했던 그의 가정, 절망적인 시대상황, 건강의 악화, 남다른 종교적 심성과 체험, 교회의 침체현상 들을 들 수 있으며, 기독교 역사, 특히 중세기 영성의 거장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가정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자라난 그는 자신의 죽음과 와 민족의 암울한 현실 속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예수에 미쳐 예수 사랑에 삼키운 바 되어 예수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으로 얻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에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의 예수 중심의 영성의 기초가 있다.
그의 영성의 또 다른 배경은 어거스틴의 전통을 이어받은 버나드, 토마스 아 켐피스, 성 프란체스코 등의 경건에 있었다. 이는 무미건조한 신학 이론에서가 아니라 그의 절박한 상황 소에서 옛 영성의 거장들의 따스한 사랑과 지고한 경건을 향한 그의 흠모였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변선환 교수는 이용도가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은 독일 신비주의의 거장 마에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 멀지 않다고 보고 있으며, 민경배 교수도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전형적인 신비주의의 양상인 ‘고난의 그리스도 신비주의’로 성 버나드나 중세 후의 독일 신비주의와 관련시키고 있다.
나. 기독교 영성의 역사적 개관
이용도에게 영향을 미쳤던 영성의 큰 흐름은 앞서 언급한 대로 어거스틴주의로 이를 완성한 버나드, 프란체스코, 에크하르트 등의 중세 신비주의 및 독일 신비주의를 거치고 루터를 이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중세적 신비주의의 영성에서 어거스틴은 빛의 조명설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이 매개적인 중개자 없이 직접적으로 진리의 빛을 비춤으로서 우리 영혼은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은 부정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식하려고 했던 에리우게나, 신의 실제성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한 버나드의 신비적 영성신학에서 되살아나며, 프란체스코의 청빈으로서의 영성에, 에크하르트의 존재 신비주의에 이어서 종교개혁자들의 성령의 내적 조명 속에 이 사상의 흐름을 읽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성의 한 흐름으로 15, 16세기에 번성했던 근대적 경건운동을 들 수 있다. 이 근대적 경건은 중세 신비주의의 영성의 주요 주제들이 합류되어 이루어졌으며, 프란체스코의 영성이 16세기에 영향을 준 통로 역할을 하였다. 근대적 경건은 그리스도의 내면의 회개를 촉구하는 운동이었다. 경건주의자들은 내적 헌신을 실천했는데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깊은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모든 활동, 기도와 영적 훈련을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하나님 사랑, 겸손, 순결, 이웃 사랑과 금욕 등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 전제되었다. 이러한 길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의 끝없는 명상이 요구되었다.
근대적 경건주의자들로는 공동생활형제단의 게하르트 그로테, 토마스 아 켐피스를 들 수 있는데 그로테는 영적 생활의 최고의 선인 영적 자유를 추구했고, 그에게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겸손한 자기 부인에서 출발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고전인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력에 들어가려면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한다. 그의 영성은 금욕적이고 헌신의 개인화가 본질이며 끊임없이 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다. 이러한 근대적 경건은 세상으로부터의 철저한 단절과 세상에서의 적극적인 사도의 직무수행이라는 두 가지 긴장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같은 기반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이용도에게 영향을 주었던 기독교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들의 영성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들의 영성은 이용도의 영성에서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고, 그의 영성이 기독교 역사적 전통에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 이용도 영성의 특징과 평가
① 자기 부정
이용도의 영성에 나타났던 자기 부정은 기독교와 영성에서 중요한 주제를 이루어 왔으며, 자기 부정은 경건의 시작이락 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운동에서 자기 부정은 자기완성을 향한 수단이나 혹은 개인의 공로를 쌓으려는 다소 개인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용도에게 있어서는 이런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에게 있어서 자기 부정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자기 부정은 자기를 얽어매는 것에서부터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향한 봉사와 사랑을 위해 자신을 개방한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자기 부정은 영성의 새로운 능동성을 지향하게 되며, 이것이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무차별 사랑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기독교 영성에서 자주 나타나는 세상 경멸적인 경향의 금욕주의, 영, 육의 이원론적인 구분 등의 요소들 또한 이용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세상 경명이라고 하는 부분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의 삶이 세상 속에서 악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불쌍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지 못하고 기도와 묵상만을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그의 이웃에 대한 무차별의 사랑이 몸으로 실천될 수 있었다. 이 점에 있어 그의 영성이 완전주의나 자기만족을 위한 수도원적 금욕주의 내지 이상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자기 부정과 금욕은 이웃을 향한 사랑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된다.
② 교회관
일반적으로 중세 수도원이나 근대적 경건에서는 직접적인 하나님과의 영혼의 일치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교회의 성례전적 삶에서 멀어지며, 구원의 중재자로서 교회의 권위와 성직의 권위를 부정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서는 교리와 제도적 신학에 거의 관심이 없으며, 교회는 더 이상 구원의 통로가 아닌 구원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게하르트 그로테 같은 경우에는 당시의 교회의 관행에 반발하는 자로 간주되어 목회자격을 박탈당할 정도로 무형교회적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해 이용도에게 있어서 교회는 비판대상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기는 했으나, 침체된 교회에 활력을 넣으려는 교회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영성운동은 교회가 지나친 사색과 명상으로 생명력을 잃어 가고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반작용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극단의 주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경향과 교리와 제도적 교회의 멀리함 내지는 공격, 맹목적인 사랑 등에는 지식 없는 감정적 주관주의라는 비판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그의 일기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은 곧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이다. 생명은 진리다. 이 지는 연구탐색의 지가 아니다. 감하여 지하는 것이다. 감하여 지하는 일이 가장 만물을 잘 아는 법이다.”
그의 신(神) 인식은 이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체험적 지식, 직관적 인식에 두고 있음이 보인다. 예수를 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일기나 서간문에 거의 성경을 인용하고 있으며, 감리교 교육부 총무로서 장년과 유년주일학교 공과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의 신학은 단순히 신학적 뿌리가 없는, 지식을 무시한 감상주의가 아닌 지식이 뒷받침된 건전한 영성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③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의 영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그의 사랑을 들 수 있다. 이용도는 신앙을 4단계로 구분하는데 그 첫째가 교회의 시대, 둘째가 수도의 시대, 셋째가 신앙의 시대, 넷째가 사랑의 시대이다. 특히 이 네 번째 시대의 대표자는 사도 요한이라고 보았고 신앙의 완성을 사랑이라고 했다.
이용도의 일기를 인용하면 “미친 듯이 부르짖는 광야의 소리 곧 회개의 소리가 되게 하시고, 새 술에 취한 듯이 겸비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으로 살다간 그의 생애를 추적하면 두 가지 큰 사랑의 원리가 나타나는데, 그 첫째 원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신비주의적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거나 인본주의적으로 사람만을 사랑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 이용도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두 번째 원리는 일인을 사랑하는 것이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용도는 분명 대중성을 띤 부흥사라고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는 집단을 중시하여 개인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사람을 참으로 사랑해야 진정한 이웃 사랑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용도는 무조건적인 하나님 사랑과 역설의 예수 사랑을 부르짖고 또 실천하였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 사람을 가려서 사랑하지 않는 ‘무차별의 사랑’은 손해를 보면서도 오로지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또 그가 외친 예수 사랑의 내용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메어지게 한다. “버림받은 자들, 외면당한 자들, 찢기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우리마저 외면한다면 누가 그들을 용납하겠습니까?”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생의 의미가 너무 강렬하고, 예수 사랑의 흔적이 너무도 뚜렷하여 인간이 살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④ 한국적 영성의 본보기
이용도의 영성은 겨레의 아픔을 간직한 한국적인 정신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조국과 조선교회와 조선의 영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지구 건너편 저 멀리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조선의 마음으로 초청했으며, “아! 이 조선교회의 영들을 살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던져서 투쟁하면서 민족의 마음에 예수의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기도했고, 회개를 외치며 사랑을 실천했다. 그리고 십자가 고난의 주님을 붙들었다.
그리하여 민족의 시련기에 그 암흑의 터널을 신앙을 붙들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신앙과 삶으로 표현되는 그의 영성의 내면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일제치하에서 겨레의 아픔을 아파하며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려는 눈물과 땀과 피를 다 쏟아 부었던 한국의 예언자요, 자신을 전적으로 성령께 의탁했던 성령의 사람이었다. 이런 면에서 이용도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고난과 사랑을 통해서 한국인의 심령에 예수생명의 불을 붙여 놓았던 한국적 영성의 한 모델이었으며, 그의 “그리스도 신비주의와 사랑의 열광주의는 당시의 기갈 했던 많은 민중들의 가슴에 신앙을 통하여서 성취될 수 있는 해방과 치유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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