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암흑으로 만드는 판을 뒤집을 수는 없는가?
당신이 북한에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빨치산의 후예나 부모가 평양에 사는 고급관료가 아니라면, 평생 공포에 휩싸여서 먹고 살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거나 장마당에서 목숨을 구걸해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등 뒤에 보위부의 감시의 눈이 번득이며 사소한 불평불만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늘 먹고 살기 위한 걱정과 염려가 떠나지 않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탈북자출신인 필자의 지인은, 사람들이 죽으면 잘 죽었다고 부러워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죄다 사나운 승냥이가 되었다는 자조 섞인 대화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당신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면 아무리 발버둥 치며 혼신의 노력을 하더라도, 어떤 운명으로 살아갈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오직 체제유지에 혈안인 일인독재의 공산주의 나라에 태어난 것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개연성을 떠올리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신은 남한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로 하는 말 중에 헬조선,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이다. 헬조선이란 지옥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며, 흙수저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속담을 빈정거리며 갖다 붙인 말이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좋은 일자리를 다 뺏어갔다고 여기며 불만을 터뜨리며, 자신들은 평생 최저임금의 알바나 하면서 인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젊은이들만 그런가? 아니다.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간 이들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 살던 아파트를 담보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중노동과 출혈경쟁이 낳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아시다시피,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주인이 되는 사회구조이다. 그래서 재산이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며, 고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에 접근할 수 있는 탁월한 학교성적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허드렛일이나 강도 높은 노동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일인독재의 공산주의 사회나, 인권이나 직업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거대한 사회제도 하에서 개인은 톱니바퀴에 달려 있는 부품이며, 부품이 고장 나거나 닳는다면 지체 없이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면 된다. 그래서 노동력을 잃거나 나이가 많아 사회에서 퇴출된다면, 잉여인간이 되어서 죽음이 데려갈 때까지 TV리모컨을 돌리며 긴긴 하루해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사회구조나 엄청난 금융환경 속에서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마치 조선시대에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종노릇을 하다가 병들거나 늙어서 죽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래서 당신은 잔인한 노예제도나 별반 다르지 않은 거대한 사회제도나 금융환경 하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인생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이는 누구인가? 세상을 만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에 무지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이런 저주와 불행이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인생의 판을 뒤집어엎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28:15~19)
위의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모르는 크리스천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어느 편에 있는가? 축복의 수혜자인가, 아니면 저주의 대상인가? 축복받은 인생이라고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저주의 대상이라고는 더욱 할 수 없는 당신의 곤혹스런 표정이 필자의 눈에 읽히고 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필시 축복받은 인생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주일성수에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투의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는데 저주받은 인생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신28장으로 돌아가서 축복과 저주를 말하는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축복의 조건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고, 저주의 조건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을 한마디로, 죄를 짓는다고 말하고 있다. 즉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지 않는 자들은 죄인인 셈이다. 죄인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지옥을 경험하다다, 이 땅을 떠나면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는 운명이다. 그래서 당신이 죄에 대해 날카롭게 숙지하고, 죄와 피터지게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 망라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은 죄악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생각만 품으면 지옥에 던져지는 죄로 선포하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위의 구절은 죄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이다. 형제에게 미움과 증오를 품었거나 음란한 생각을 해도 죄다 지옥 불에 던져지는 운명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축복을 받아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사람이 교회를 열심히 다녔거나 아니든가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된 교인들이나 교회직분이 드높은 목회자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진배없이 무능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이들은 날마다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죄를 회개할 생각도 없으며, 죄와 피터지게 싸우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이 곧 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숙명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1~6)
위의 구절은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는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사탄은 아담과 화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금지한 명령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교만과 탐욕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1~7)
위의 사건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고 그들이 장성하여 각장 생업을 하며 살고 있던 때이다. 이 때 두 아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업의 열매들로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벨을 제사는 기뻐 받으시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성경에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피를 흘린 제물을 드리라고 이미 언급하셨으리라 추측할 수는 있다. 어쨌든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아주지 않은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다. 하나님께 화를 낸다는 것은 엄청난 죄이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그가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벨을 죽여서 악인의 길로 걸어가고 만다. 여기서 아담과 하와의 죄와 가인의 죄를 살펴보자.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화와에게도 죄의 유혹이 있었으며, 그들이 이미 인지하고 잘 알고 있었던 죄였다. 그러나 아담과 화와가 죄를 짓고 난 후에는, 이미 죄가 인류 안에 들어와서 가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다르다. 이미 인간의 마음은 죄성으로 인해 변질되어서 죄를 좋아하고 죄를 추구하고자 하는 본성이 생겼으며, 또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가 무엇인지 무지한 상태에 있다는 게 다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위의 구절에서는 인간과 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이미 사람의 마음은 부패한 상태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마음과 생각은 악이 가득하여 평생 악을 행하다가 죽는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마음이 원하고 육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추구하여, 하나님과 원수라고 콕 집어서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 어떤 상태로 살다가 어디로 가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즉 지옥을 경험하다가, 이 땅을 떠나면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당신이 예수를 영접하고 주일성수를 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백성이 되었다고? 오홋, 그런가? 그래서 당신은 교회에 와서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끊어버리셨는가?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쓰면서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무진 노력을 하고 있는가? 거꾸로 교회예배에 참석하고 신앙행위를 하는 목적도,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즉 교회에 와서도 여전히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원수의 신분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목사가 시키는 대로 충성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없으며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이는 여전히 죄에 무지하며, 죄와 피터지게 싸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
결국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에 대해 무지하며, 죄를 회개하지도 않으며 죄와 싸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인 지옥을 경험하며 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두 가지 죄를 살펴보자. 하나는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의 말씀은 이방인에게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두 번째 악에서 밝히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할 웅덩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생수로 상징되는 성령이시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할 웅덩이를 팠다고 말한다. 우리네 교회에서 파고 있는 웅덩이는 무엇인가? 세속적인 축복이다.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며, 병이 낫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며 삶이 형통한 축복을 파고 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인간이 만든 종교의식과 예배의식으로 대체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서, 이런 행위가 하나님을 만나는 생수 웅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혹의 영이 목회자의 머리를 타고앉아 교회에 던져놓은 덫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 하나님을 교제하는 기도소리가 사라졌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성령이 비쳐주심을 바라고 성경말씀을 찾는 이들도 없다. 성경공부도 지식을 쌓아두어 자기만족으로 삼거나 자기 의를 내세우고, 남을 정죄하는 지식으로만 활용할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네 교인들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며 육체의 만족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교인뿐이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자기 의와 자기만족을 삼는 가증스러운 죄악을 쌓아두고 있지만, 그게 죄인지도 모르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을 뿐이니 기가 막히지 아니한가? 이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좋아하고 죄를 추구하고 싶은 변질된 죄성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종교행위를 열정적으로 하고, 성경을 암송하여 머리에 쌓아두고, 금식기도를 수도 없이 하여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게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짊어져야 할 숙명이자 잔인한 운명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죄에서 해방되어 빛의 자녀로 살아갈 길은 없는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천국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라고 명백하게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 안에 있는 자녀라고 말이다.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이기도 하다. 즉 사람이 만든 종교적인 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종교적인 사람으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없다. 미혹의 영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인 제도와 금융환경 등의 노예제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자신들의 포로로 만들어서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가 지옥 불에 던져지게 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불러주신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며,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자의 주장을 성경말씀이라고 비틀어버리고,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와 말씀으로 대체해버렸다. 그래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더라도, 성령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천국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3)
당신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고 생명과 성령의 법이 지배하고 통치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령이 당신 안에 찾아오셔서 내주하시도록 해야 한다. 그 길만이 불행과 고통의 운명에서 해방되어,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천국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미혹의 영은 사람의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세상의 지도자들과 장군들과 대통령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을 주어, 세상 사람들을 거대한 사회제도와 엄청난 금융환경의 노예제도를 만들어서 포로로 지배하게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평생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면서, 불행의 덫에 걸려서 고통과 눈물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노예제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녀가 되는 길 뿐이다. 하나님은 죽기 살기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고 계시다. 당신이 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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