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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서 개론(7) :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들 B |
유다의 실용주의적 생활 방식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주전 696-642년)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 그의 현실정책의 실행은 유다를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만들었다. 그의 비루한 정부가 55년 동안 다스리고 지나간 후에 유다에는 시내산이나 시온 전통의 독특한 특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 스바냐와 예레미야는 느낫세의 손자 요시야에 의해 이루어진 개혁들을 기쁨으로 증언하였다. 그러나 요시야(주전 640-609년)의 개혁은(주전 622년) 외적이었고 단명하였다. 스바냐는 요시야의 다스리던 때에 사역을 했다(습 1:1). 요시야는 31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아마도 스바냐의 활동 시기는 적어도 주전 621년 이전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이방의 제단들이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주전 621년에 요시야 왕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다. 아마도 스바냐는 나훔과 예레미야와 더불어 요시야로 하여금 개혁을 감행하도록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요시야 사후(주전 609년) 유다의 정세는 보다 분명히 현실정책을 추구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앗시리아의 멸망은 고대 근동의 형세를 바꾸었다. 나훔이 예언한대로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파괴되고, 앗시리아 제국은 주전 605년에 멸망하였다. 나훔은 그의 사역 시기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사역 시기는 대체로 (나훔 3:8)에서 나타난 것처럼 애굽의 테베가 멸망하던 해(주전 663년)와, 니느웨가 멸망한 때(주전 612년) 사이였다. 그의 예언서의 주제는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의 예언은 미느웨가 멸망하기 수년 전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사역을 시작한 것은 주전 630년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70년간은 바벨론이 세력 구조를 지배하였다(렘 29:10). 바벨론의 성공은 처음에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되었다(사 10:5-19).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바벨론 역시 유다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인 것을 선포하였다.
하박국은 그의 예언 시기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합 1:5-6)에서 바벨론의 침공을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그가 적어도 느브갓네살이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한 주전 605년 이전에 예언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마도 그가 사역한 시기는 요시야의 통치가 끝나던 주전 609년부터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때까지 일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있어서의 예언자들의 집단을 살펴보았는데, 이들 중에서 7세기 전반에 활동한 예언자는 한 명도 없으며, 모두 7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을 내다보며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이 유다를 징벌하기 위해 사악한 나라를 사용할 수 있는 지를 물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이 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며, 의인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왕국의 영광스러운 건립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을 확신시켰다.
예레미야 역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였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던 때에 하나님의 대언자로 일했다. 예레미야는 그의 사역을 시작한 때가 요시야 왕 13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시야는 주전 640년에 다스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요시야 왕 13년은 주전 627년이 된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포로로 잡혀간 이후까지 사역했기 때문에, 그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시드기야 시대와, 에루살렘 성이 멸망한 후에 그 곳에 남아 있던 백성들이 그를 강제로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간 시기까지 예언 활동을 했다(렘 43:1-7). 그는 애굽으로 내려간 백성들에 대해서도 예언했는데(렘 43:8-44:30), 그가 죽을 때까지의 기간에 한 사역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된 것은 주전 580년이기 때문에, 그가 주전 627년부터 580년까지 약 47년 동안 예언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 도시와 성전과 다윗 계열의 왕이 바벨론에 굴복당할 것을 선언했다. 그는 70년 간의 바벨론의 통치가 끝난 후(렘 29:10), 하나님이 회복과 언약과 용서와 성전과 메시야가 의로 다스리는 새 시대를 열 것을 선포하였다(30:5-33:26).
4. 포로기 중의 예언자들: 다니엘과 에스겔
포로기는 황폐한 시대였던 동시에 회복의 시대였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성전의 황폐,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 약속의 땅으로부터 백성들의 분리, 다윗 왕조의 제거를 의미하였다. 포로기는 또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건한 남은 자들에게 일체감을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회복의 영에 의해 영적인 변형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열었다. 그 변형은 여호와와 정경적인 계시와 그의 심판의 지혜에 새롭게 충성할 것을 다지고, 완전한 회복을 새로이 갈망하는 데서 입증되었다.
이 과도기에 하나님은 그의 특별한 종을 세웠다. 다니엘은 예언자로 부름을 받지 않고 바벨론 궁전에서 행정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언적 환상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는 예언자에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니엘이 활동한 기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그는 그의 세 친구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함께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3년(단 1:1), 즉 주전 605년 여름(여호야김 통치는 주전 605년 10월에 끝났다)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는 고레스가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함락한 후까지, 그리고 적어도 고레스 3년까지(단 10;1) 활동했다. 따라서 그는 바벨론에서 66년동안 활동했다. 그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약 20년 전에 망명하며 바벨론이 몰락할 때까지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으로 바벨론의 고관으로 있었다. 그는 외국의 왕들에게 영감 어린 조언을 주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증언했으며,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의 왕국이 승리를 거부며 전진할 것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왕국 환상으로 그는 구속사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현실 정책이나 백성의 소리가 주는 덫에 빠지지 않았고, 바벨론의 도덕 체계에 만족하지도 않았다. 다니엘은 그의 동시대인들보다 단연 뛰어났으며,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사랑으로 그 명성을 떨쳤다. 이 충성스러운 종은 하나님의 왕국을 열망하였던 성실한 사람이었다.
에스겔은 주전 597년에 포로로 잡혀갔는데(겔 33:21, 40:1, 왕하 24:11-16), 이 때는 여호야김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때였다. 그는 적어도 포로로 잡혀간 지 27년이 되는 주전 571년까지 활동을 계속했는데(겔 29:17), 이 기간 중에는 느부갓네살이 계속해서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살았지만 다니엘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다. 다니엘이 왕궁에서 사역을 했다면,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 중에서 예언자로 활동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작은 규모의 포로인 집단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것을 설명하였다. 그는 또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성별되고 성령에 의해 새 민족으로 변화되고, 그의 백성 가운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회복의 시대에 대해 예고했다. 이 선지자들은 심판과 회복에 있어 여호와의 위대한 행위를 말하면서, 여호와와 그의 약속들을 모세 해석에만 국한시켰던 전통적인 신학의 경계를 넓혀나갔다. 그들은 그 약속들의 전통적인 개념을 타파하고, 그것들을 더욱 웅장하고 경이로운 것으로 제시하였다. 그들은 여호와가 언약과 약속에 신실하시며, 성령이 새 시대, 즉 영적인 변형이 이루어지는 새 언약의 시대를 열 것을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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