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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2과)1

Joyfule 2010. 3. 25. 07:35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2과)1

선지서 개론(7) :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들 A


 
*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 *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에 대해서 살펴볼 때가 되었다. 그들의 선포와 예언서들은 그 당시에 한 부류를 형성하였으며, 그들은 위대한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서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기록한 예언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목록을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일정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메시지를 선포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속해 있었던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 예언을 한 사람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많았지만, 그들은 기록을 남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연구 대상이 될 수는 없다.
 

1. B.C 9세기의 예언자들: 오바댜와 요엘

  8세기에 활동했던 아모스는 종종 처음으로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9세기 경에 이미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이 활동했다고 믿을만한 증거가 있다. 오바댜는 처음으로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로 추정된다. 그는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시대에 살았는데,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사악한 아달랴와 결혼을 했다(왕상 22:44, 대하 18:1, 21:6,

22:3,4,10).

여호람이 그의 보좌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의 형제들을 죽인 것은 아마도 아달랴의 영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대하 21:4). 아달랴 자신은 나중에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녀의 모든 손자들을 죽였다(대하 22:10). 오바댜의 사역은 이처럼 매우 혼란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조국이 아닌 남쪽의 에돔에 대해 예언하게 하셨다. 그는 에돔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해 교만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옵 11-14).

  

요엘은 7살에 왕위에 오른 요시아 시대에 활동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여호람의 통치가 끝나게 되자, 그의 아들 아하샤가 1년 동안 다스렸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아달랴가 손자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6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러나 신실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인도 아래 아달랴는 죽임을 당하게 되고, 나이 어린 요아스가 왕이 되었다. 그리고 요아스가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인도했다. 요엘의 사역의 시기는 아마도 이와같이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인도했던 때로 보인다.


2. B.C 8세기의 예언자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요나

 

  8세기의 예언자들 중에서 4명은 그 활동 시기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모스는 스스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와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 예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암 1:1). 이러한 기록은 그가 주전 767년(웃시야가 전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해)과 주전 735년(여로보암이 죽은 해) 사이에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세아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에 사역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주전 767년과 주전 753년 사이에 시작되었으며, 히스기야가 유다의 전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주전 715년까지 계속되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여로보암 2세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나라를 성장시켰으며, 이로 인해 귀족들은 부를 축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땅에 보물을 쌓고 자기의 쾌락과 번영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로 인해 사회는 부정과 불의가 판을 쳤으며, 경제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압제를 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모스와 호세아를 보내셨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모세에 의해 확립되고 엘리야에 의해 제정된 선지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 이 두 선지자에 의해 세상은 격렬하게 불타오르게 된다. 당시에 가난한 자와 경건한 자들은 사회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부자와 권력자들은 사회 정치 구조에 만족하고 있었다. 신흥 대국 앗시리아는 아람을 점령했다. 여로보암 2세는 앗시리아의 정책에 순응해 가면서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러나 그는 장차 그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점령할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앗시리아와 아람, 그리고 이집트와 번갈아 가면서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아모스와 호세아는 이러한 여로보암 2세의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

그들은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패역한 백성이 되었는 지를 지적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율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수없이 연단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배교와 완악함을 꾸짖고, 그들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번영하는 현실로 인해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기 직전에 하나님은 유다에도 이사야와 미가라는 두 선지자를 일으키셨다(주전 730년). 이사야는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왕 등이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가 이스라엘 왕들의 명단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가 아모스나 호세아와는 달리 유다만을 위해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웃시샤 왕이 죽던 해인 주전 740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사 37:38),

이 일은 주전 681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가역 기간은 약 60년 정도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예언자들에 비해 매우 긴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가 역시 유다를 위해서 예언했기 때문에, 그가 예언했던 시기의 유다 왕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때에 활동을 했다.

 

 그는 이사야가 사역을 시작한 얼마 후에 사역을 시작해서, 이사야가 사역을 마치기 전에 사역을 마쳤다. 요담의 통치는 주전 731년에 끝났고, 히스기야는 주전 715년에 전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그는 이 기간 중에 활동한 셈이 된다. 이사야와 미가 역시 북 이스라엘의 권력과 자만, 그리고 그들의 실용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멸망을 하게 되자, 그들은 남 유다에도 경고를 하기 시작했다. 남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사야와 미가는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의 멸망의 전조가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요나는 자신이 예언했던 때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이나 유다를 위해 예언하지 않고, 이방 나라인 앗수르의 니느웨 성을 향해 예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나서가 기록된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첫 번째 연도는 아모스가 사역을 하던 시기인 주전 760년이다. (왕하 14:25)은 요나가 여로보암 2세에게 예언을 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때는 8세기 전반기였다. 이 구절은 또한 그가 니느웨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자였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이 구절이 여로보암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영토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홍해 바다까지 회복될 것을 그가 예언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요나는 주로 8세기 전반에 사역했지만, 나머지 예언자들은 모두 주전 760년 이후에 사역했으며, 특별히 호세아와 이사야와 미가는 주전 740년 이후에 활동했다. 이들 4명의 예언자들 중에서 2명은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고, 2명은 유다를 향해 예언했다. 이들은 또한 주전 8세기 중엽 및 후기에 활동했다.

  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유다 역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사야와 미가는 사마리아의멸망과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의 정치가 부침하는 기간(주전 729-686년)에 사역을 했다. 두 선지자 모두 유다와 그 지도자들에게 현실정책이 주는 만족을 거부하고, 여호와의 왕국을 바라보며 의와 정의와 성실을 행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대중의 기대(백성의 목소리)는 낙관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생활태도를 장려하였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고유다와 함께 행하신다는 약속을 환영하면서 이사야와 미가의 신탁을 선택하여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께 복종을 요구하는 선지자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왕과 성전이 결코 침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과 예루살렘의불가침성과 하나님께서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영원성, 즉 시온신학에 사로잡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