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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2과)3

Joyfule 2010. 3. 27. 05:5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12과)3

선지서 개론(7) :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들 C


 
*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 *

 
5. 포로 후의 예언자들: 학개, 스가랴, 말라기

 

  포로후기(주전 538년)의 복된 소식은 언약을 갱신하고 약속을 성취하는 여호와의 위대한 사랑에 있었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들과 함께 거하고, 그들을 축복하고 보호하였던 것이다. 제사와 희생과 성전 예배와 제사장직과 명목상의 다윗 왕조(스룹바벨)가 포로 후기에 회복되었다. 학개와 스가랴가 사역하였던 포로 후기의 상황은 포로 전기 선지자들의 상황과 판이하게 달랐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은 후에 나온 그들은 하나님이 다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복된 소식으로 하나님과의 백성으로 격려하였다. 그들은 만약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직 그의 왕국을 열심히 구하기만 한다면, 약속들이 성취되는 훨씬 더 위대한 시대가 올 것을 약속하며 그들을 독려하였다.

 

 5-1. 성취의 시대

  분명히 새 언약의 시대는 이미 포로후기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였고, 성령이 권능으로 임재했으며, 성전이 복구되었다. 다윗의 자손은 스룹바벨은 메시아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상징이었다. 비록 포로 후기 선지자들이 왕(스룹바벨)과 제사장(여호수아)의 신정 상 지위의 연속성을 확인하였으나, 그들은 역시 성령의 권능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도록 개개인을 초청하기도 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과 더불어 포로 후기 선지자들은 신정의 쇄신을 위해 견고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 신정은 확연하게 성전, 하나님의 법, 성령의 역사, 그리고 세상적 관습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정화하는 데 관련된 것들이었다. 포로 후기의 백성들은 성도는 아니었으나, 그들은 선지자들과 신정 지도자들이 주는 도전에 반응하였다. 선지자들의 저서와(학개, 스가랴, 말라기, 요엘) 역대기와 에스라-느헤미야서가 포로후기 하나님 백성의 급격한 변화를 잘 증언해 준다.

 

  스가랴는 모두 그들의 예언이 시작된 때가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0년-학, 1:1, 슥 1:1)이었다. 그러나 학개는 그 해에만 계시를 받고 예언한 반면, 스기랴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들의 예언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필요성이었다. 백성들은 제 1차 포로 귀환이 있었던 주전 538년,537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성전은 기초만 놓여진 채로 16-17년 동안 방치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주변의 백성들에게 조롱을 당했다. 그러나 마침내 학개와 스가는 주전 520년에 백성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용기를 주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사역은 곧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중단했던 성전 공사를 다시 재개했으며, 마침내 주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말라기의 연대를 추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사역의 시기가 학개와 스가랴 이후인 것은 분명하다. 그가 사역하던 때에는 바사의 총독이 예루살렘을 다스리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말 1:8). 그는 성전에서 종교적 제의들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말하는데(말 1:7-10, 3:8), 이는 당시에 성전이 이미 재건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또한 백성들이 범한 죄를 책망했는데, 그가 열거한 죄의 내용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열거한 내용과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에스라와 느헤미야 당시에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 언급되고 있지 않은 점을 보면, 그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가 기록된 직후에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의 활동 시기는 주전 5세기 말로 추정된다.

 

 5-2. 소망의 시대

  비록 포로후기 공동체가 일부 약속들의 실현을 체험했을지라도 실제 성취는 지연되었다. 백성들은 성취를 향한 진전이 더딘 것에 실망하였다. 포로 후기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웅대한 회복에 대한 그의 약속을 분명히 지키는 것을 믿도록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선지자들은 또 백성들 편에서 그 성취를 서두르도록 권면하기도 했다. 그들은 남은 자들을 자극하여 하나님과 반문화 건설에 보다 큰 사랑과 열심을 쏟도록 하였다. 그들은 또 경건한 자들이 실제적인 소망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포로 후기 선지자들은 예언의 말과 성취 사이의 부조화를 처음으로 취급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에 대한 약속의 성취가 점진적이며, 하나님은 자유하시고, 인간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들은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지키나, 그의 약속을 성취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자유로우신 것을 밝혔다. 포로 후기 선지자들은 내적으로 배교와 외적으로 이 세상 왕국들의 박해와 저항을 받으며, 구원이 임할 것을 지적함으로써, 구속의 진전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확인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성도들에게 그의 왕국의 기쁨과 메시아 시대와 새 창조로 보답할 것을 소망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경건한 자들을 격려하였다.

 

 5-3. 소리의 종교

  그 후에 나타난 계시 종교의 타락을 선지자들과 경건한 남은 자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 포로후기 공동체 역시 포로 전기 공동체가 겪은 동일한 문제로 계속 고통을 당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과 인습으로 고착시켰다. 그들 역시 성취에 대한 그들의 기대가 잇따른 사건들로 좌절되자, 현실에 체념하기 시작했다. 계시에서 백성의 소리의 종교로 점차적인 전환은 우리 주님이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거부당한 이유를 설명해주며, 더 나아가 기독교 역사에 거듭거듭 되풀이하여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근시안적인 환상과 인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영원한 것을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으로 몰아넣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성령과 보조는 맞추는 대신 현실정책과 백성의 소리의 길을 걸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과 다가올 구원을 늘 생생하게 소망하지는 못했다.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을 살펴볼 때에, 성경에 나열된 소선지자들의 순서는 그들이 활동한 시기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사역한 소선지자들은 모두 9세기나 8세기에 활동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그리고 미가이다. 그 다음으로 사역한 소선지자들은 7세기에 활동한 나훔, 하박국, 그리고 스바냐가 있다. 예레미야는 재선지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들은 학개와 스가랴와 말라기가 있다. 포로기에 활동했던 다니엘과 에스겔은 대선지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처럼 성경에서 소선지자들이 등장하는 순서는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