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십자가를 지라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가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하는 테러의 소식이 들린다.
구약 성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해보복법을 인정하지만 사실 그 법은
보복을 장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복하면
보복 당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해서 사적인 보복을 최대한 막으려고 세워진 법이다.
그 율법 정신이 신약 시대에는 더 승화되어 의를 위한 희생인 십자가를 강조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조치였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다.
그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의 행사를 통한 보복으로 얻어지는 평화는 없다.
서로 죄를 덮어 주고 차이를 용납해서 전체의 조화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십자가의 길이 평화와 승리를 이루는 길이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기의 약한 것과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고백했다.
그 투박한 고백에 바울이란 거인의 비밀이 담겨 있다.
십자가의 길은 쉽지 않다.
십자가를 지면 손해처럼 느껴지기에 계산적인 마음으로는 그 길로 갈 수 없다.
그러나 참된 성장과 축복은 계산적인 마음을 버리고 십자가를 기쁘게 질 때 이뤄진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힘써 동참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 일에 동참하도록 어디서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하라.
십자가가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해답임을 깨닫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
공평과 정의가 넘치는 세상의 초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