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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의 사랑 - 권영부

Joyfule 2005. 9. 19. 01:18


 
      자작나무의 사랑 - 권영부 얼룩말이 몸을 비비고 지나간 다음, 자작나무 줄기에는 희고 까만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무는 휘날리며 내달리던 얼룩말의 습생을 닮아 바람이 군락 사이로 우루루 떼지어 몰려가면 잎들이 갈기처럼 날린다 내 어릴적, 아버지가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까칠까칠한 수염을 내 뺨에 비빌 때마다 턱수염과 구레 나룻이 움트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수염이 나에게 옮아 온다고 믿었다 사나흘만 지나도 무성해지는 수염을 보면서 싱싱하게 흔들리는 자작나무 잎들을 생각 하다가 하얗게 빛이 바랜 자작나무 등줄기 속에서 팔십 묵은 기다랗고 허연 수염을 본다 취기가 오르는 날이면, 잠자는 내 새끼의 발그레한 볼에 뺨을 비빈다 그때마다 새록새록 얼룩이 돋아 나고 미간을 찡그리며 잠자는 내 새끼의 가슴위로 수백 마리의 얼룩말이 허연 먼지를 날리며 내달리다가 등짝을 열심히 자작나무에 문지르는 장면을 보면서 자꾸만 내 수염을 만져본다 아버지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