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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와 사위 : 호스피스 이야기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Joyfule 2013. 4. 16. 09:02

 

 

 장모와 사위 : 호스피스 이야기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세상을 등지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 마흔넷,

민성은(가명)님은 흑색종으로 가슴과 엉덩이 등 열 개 이상의 검보라빛 혹이 튀어 나와 있었다.

통증이 심해 도무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 옆에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친정어머니, 딸을 지켜 보는 아픔이 그 작은 체구 전체에서 배어 나오는 듯했다.

병원에서는 진통제만 처방한 모양이다.
약의 부작용을 고려해 구토를 멈추게 하는 처방도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아 환자가 몹시 괴로워했다.

진통제조차 적정 수준에 못 미쳤는지 통증 역시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어 우리는 구토를 멈추게 하고 통증을 완화시킬 간단한 처방만 해준 뒤돌아왔다.

첫날 방문은 그렇게 마친 셈이다.

 

이틀 후 친정어머니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딸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군데나 가봤는데 허사였다는 음성에 근심이 가득했다.
전화를 받은 수녀님이 모현의 의사 선생님께 전하니 대번에 "일을 많이 하신 모양이네" 하신다.
몸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고 집안일을 무리해서 하신 모양이라는 말씀이셨다.
우리가 쫓아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선생님 말씀대로였다.
우리가 드린 약을 잡숫고 통증과 구토가 좀 가라앉자 다음 날 밀려 있던 집안일을 눈에 띄는 대로 하셨단다.

결국 과로로 어지름증을 느끼며 쓰러진 것이다.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두 군데나 병원을 돌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민성은님은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고 하셨다.
이 일로 우리를 믿는 마음이 생겼는지 집안 사정을 털어놓으셨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더러 느끼는 것인데, 가정방문이 환자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때가 상당히 많다.
방문했을 때 가족 문제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인데 민성은 님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자신의 죽음보다 남겨질 친정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무엇보다 남편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살고 있던 집도 원래는 친정어머니의 것인데 당신이 먼저 세상 떠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던 어머니가

집을 하나뿐인 딸의 명의로 바꿔 놓으셔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민성은 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그 집의 소유권은 제대로 집안을 돌보지 않는 남편에게 넘어갈 것이 뻔했다.

 

우리는 민성은 님 댁을 봄부터 가을까지 방문했다.
그동안 몇 번 민성은 님의 남편을 만났는데, 그가 집 안을 맴돌 때면 친정어머니는 좌불안석, 안절부절이었다.

사위가 젊어서부터 밖으로 나돌기 일쑤였고 집에 들어오면 때로 난폭해지기도 해서 늘 사위 눈치를 보며 사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내가 아프면서부터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민성은 님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궁리 끝에 집을 담보로 5천만 원을 융자 내어 친정어머니 앞으로 해놓았다.

그 돈으로라도 노후를 보내시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분이 넋을 놓고 계셨다.
융자 받은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돈은 결국 얼마 후 친정어머니가 사위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감정이입을 자제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날은 정말 그러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차선책으로 딸의 사후에 할머니가 가서 사실 수 있는 양로원을 물색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일이고 가엾은 할머니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친정어머니가 노후를 보내실 수 있는 마땅한 곳을 찾아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전해 드렸을 때 두 분의 기쁨은 매우 컸다.
특히 할머니는 딸이 죽고 나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시다가

'이제 갈 데가 있다'는 생각에 크게 위안을 얻어시는 것 같았다.


우리 역시 호스피스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양로원을 알아본 사실이 알려지자, 할머니가 많은 정을 쏟아 거둔 두 외손녀가

 "할머니와 떨어져 살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

큰손녀는 더욱 간절하게 할머니와 살기를 원했다.
그러자 정작 믿음을 주지 못한 장본인이었던 사위마저 나서서 "이제 장모님께 잘하겠다"고 하는 게아닌가.

할머니는 양로원이라는 '대안'을 통해 손녀들이라는 막강한 '지지세력'을 얻으신 것이다.
우리도 그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하면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가 보니 복수가 차서 불러 있던 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대소변도 다 보았다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흔히 있는 일이라

우리는 침대를 깨끗이 정리해 드리고 가족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이른 후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수녀원에 도착하자 민성은님이 임종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딸의 임종 후 친정어머니는 아직 학생인 두 외손녀를 거두면서 지금도 그 집에서 함께 사신다.
다행히 사위와도 큰 문제는 없으신 듯하다.

하지만 그분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도 두 손녀딸을 향한 할머니의 크나큰 사랑이 아닐까.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지음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