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노을이 아름다우면 - 장돈식
웃음이 난다. 무슨 창(唱)의 중중머리 대목에서다. “70이 어더메뇨 가다보니 오늘이라” 걸찍한 가락에 북잡이가 “얼씨구” 추임새를 넣으며 “좋다”를 연발한다. 아직 살아보지도 않은 70세의 느낌을 저들이 어찌 알랴만은 아닌게 아니라 망팔(望八)이라는 나이가 노상 나쁘지만은 않다
늙으막의 비애를 몰라서가 아니다. 사무치게 알기에 내가 찾아서 누리는 즐거움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끔 나이를 묻는 이가 있으면 대답을 않던가, 몇 해를 줄여서 대답하는 아내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는다. 옛 말에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고 했다. 헌 집 꾸미 듯 무얼 바르고 매달고 걸쳐보는 아내가 어찌 안스럽지 않으랴.
그러나 “노자(老者)는 무용(無用)”이라는 말이 옛부터 사회의 통념이고 보니 늙음을 감추려드는 심정을 이해한다.
근래에 이르러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이 선진국처럼 많이 길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노인층이 현저히 두터워지며 생기는 사회적인 불협화의 조짐은 많다. 도무지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나라 예산을 세우는 명분 중에는 분명 고령자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그러면서 70세 이상의 노인들 중에 7만명만을 가려 한 달에 용돈 1만원씩을 준다고 한다. 일흔 살부터 주던 버스 무료승차권을 65세로 내려 월 열 두 장을 준다며 생색을 내는 데는 불쾌감을 넘어 모욕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마을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노인정을 짓는다. 한 번 가보면 늙은이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집안에서 내몰아 격리시키기 위한 시설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날 수필세미나를 파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다. 뒷좌석의 동인들의 대화가 들린다. 무슨 말끝에 “나는 70만 살면 돼”하다가 동승한 내 나이를 의식했는지 계면쩍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그러나 내가 사과를 받을 일이 아니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조 선생이 잠시 귀국하여 몇 날 전 내 산방을 찾아 주었다. 그는 내 아내의 나이를 묻고는 아직 새색시라며 우리네 나이가 부럽다고 한다. 조선생은 올해 88세, 흔한 말로 미수(米壽)다.
TV의 한 장면, 9순이 넘은 할머니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소원을 물으니 “이제 나이 80대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이란 젊다고만 좋은 게 아니다. 환갑을 맞으며 60대에 들어서자 천명(天命)을 안다는 50살 때보다 좋음을 알았었고, 고희(古稀)를 맞자 제멋에 겨운 때가 많아진다.
젊어서 사회의 일원으로 져야하는 힘겨운 일들에서 놓이게 되고, 가장으로서 부양해야 할 자식들이 자라 품을 떠나갔다. 저들이 핵가족 살림을 원하면서 부모의 곁을 떠나기를 죄송해 하지만 미안할 것 조금도 없다. 요즘 세상에는 고전적인 효를 바랄 어버이가 많지만은 않으리라. 핵가족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노인들이야말로 번거로운 가족 관계에서 놓여나 조촐한 핵이 되어 살고 싶은 것이다.
젊어서는 하고 싶어도 제약이 많아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교양 익히기, 취미 생활, 꿈의 여행, 생동감 넘치는 건강관리 등은 가슴 설레이게 한다.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늘 내게 삶의 의욕과 긴장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60살에 운전 면허를 따고 차 뒷유리에 “초보운전”이라 써붙이고는 아버지 묘소를 찾아 기쁨을 보고했다. 60후반에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렸다. 인간과 기계와의 지능의 대결, 명령어를 주고받을 때 불꽃이 튕긴다. 70에 수필가로 등단하던 날, 쑥스러움과 긍지가 가슴에서 씨름을 했다. 이런 신나는 일들은 나이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수필 말고 또 다른 장르를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조어(造語)에 재주가 많은 일본인들은 좀처럼 사람을 기죽게 하는 노인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실버(silver), 실년(實年), 숙년(熟年) 등의 단어는 한결 듣기에 부드럽다. 열매 실자 實年이 그렇고, 익을 숙자 熟年이 그렇다. 이 나이를 사는 사람은 마땅히 받을 대접은 떳떳이 받고, 젊은이들이 원하는 관용은 넉넉히 베풀어야 한다. 성급함을 누르고 못마땅한 것은 외면한 채 너그러움만 보이면 존경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된다.
젊은이들의 빈축을 받을 일, 짐이 되거나 어른 대접을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버스나 전철에 올라가서는 절대로 차내를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빈 자리가 눈에 뜨이면 앉고, 없으면 선다. 자리를 양보할 것 같지 않은 사람 앞에 서고, 학생등 젊은이 앞에 서지 않는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이나 어린애를 업거나 데리고 타는 여인이 있으면 앉았다가도 젊은이들 보다 내가 먼저 자리를 양보한다. 딱하게도 자리를 양보하고 나서 그 옆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 있다. 생색내고 서 있지 말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 그게 도리이리라.
즐거울 거리가 있으면 그 때 즉시 많이 즐긴다. 행복한 시간이란 원래 뺄발이 빠르니까. 어느 날 바닷가에서 만난 늙은 어부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주름진 얼굴에 넘치는 만족한 표정,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고 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오늘 고기를 이만큼 잡았으니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소. 이 기분이 사그러들기 전에 한 잔 합시다.” 잔에 남은 술을 쭈욱 호기 있게 들이킨다.
참 멋져 보이는 늙은이였다.
나도 생활을 즐겨야 하겠기에 매사에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며 산다. 피할 수 없는 언짢은 것은 정면으로 맞붙여 빨리 해결하고는 다시 편안한 삶을 엮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진리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나이는 피부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열정이 식어버리면 정신에 주름살을 만든다.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정력이 미치는 한 뛰는 거다.
머뭇거리고 주저할 시간이 없다.
공자가 성현임은 확실하다. 그는 일흔 살이 돼서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즉,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사회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서 후세에 70살을 ‘종심(從心)’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어림도 없다. 재물이나 명예 등에 대한 노욕(老慾)과 이성(異姓)에의 끌림 같은 것을 마음에 하고자 하는 데로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만 진리에 따르도록 하는 노력은 늦추지 않고 선인들이 살고 간 길을 죽는 날까지 애쓸 뿐이다. 연전(年前)에 어느 고승은 법어에서 “진리에 나아가는 길을 버리지 아니하고 범부의 일상생활을 영위하여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든다면 이 또한 참 삶이 아니랴”고 했다.
요즈음 환락에 빠져드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며 생각한다. 아침 노을이 곱기는 하지만 그런 날은 이제 날이 궂을 징조임을 저들은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저녁에 노을이 아름다우면 다음 날이 쾌청하리라는 예고임을 경험으로 안다. 젊어서 궂은 날들을 많이 보낸 우리 숙년들의 저녁 노을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열과 긍정적인 사고만 있다면 나이가 80이라도 젊은 채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창작수필』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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