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고양이를 통해본 반면교사 - 임병식

Joyfule 2013. 3. 11. 09:27

 

고양이를 통해본 반면교사 - 임병식
 

 

동물 중에서는  고양이만큼 간교한 놈 썩 드물 것이다. 놈은 그야말로  '눈치 보기'의 명수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  누가 제 비위를 건드리기라도 할라치면  금방 톨아져  심술을 부린다. 예사  간사하고 다루기 어려운 놈이 아니다. 나는 그러한 녀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혐오스러워 보이는 눈동자도 그렇지만, 도둑처럼 슬금슬금 걸어다니는 짓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밖에 심술 사나운 점은 또 어떤가.  뭐라고 좀 나무라기라도 할양이면 가당찮게도  먹은 걸 게워내고, 어디서 더럽고 몹쓸 것은 죄다 물어와 해코지를 하니 꼴불견 수준을 넘어서 가관인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병아리를 내몰며 귀찮게 굴기에  회초리로 좀 때려 주었더니 놈은  밖으로 나가 뱀 허물을 물어와서는 걸레 속에 감추었다. 그 바람에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모른다. 고양이의 지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높다. 그건 놈이  쥐를 어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솜씨가 마치 하키선수 공 다루듯 한데, 발로 탁탁 치며 놀리면서도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워낙에  쥐가 제풀에 오금이 저려버리는 점도 있지만, 그 날쌘 동작은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쥐 또한  영리하기로 말하면 뒤지지 않는 동물이다.  계란을 안고 뛰어내린다거나, 꼬리로 꿀딴지의 꿀을 훔쳐먹는 등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녀석들이 시내(川)를 건널 때면,  익사하지 않기 위해  앞선 쥐의 꼬리를 물고 건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쥐를  장난감 다루듯 하니 고양이는 한수 위인 것이다.


 놈이 쥐를 잡는 걸 보면 그렇게 진중 할 수가 없다.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를 잡는데도 전력질주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놈이야말로 한 곳에 붙박여서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작  쥐가 나타나면 그때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일거에 급소를 물어 놓고 만다. 또한 이놈은 사랑 탐이  무척이나 많은 놈이기도 하다. 여느 동물과 달리 꼭 사람 곁에 있으려고 하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 주인이 이불 속에 몸을 묻기라도 하면, 놈은 어느새 사타구니 쪽으로 파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때는 얌전하기 그지없어서  손으로 슬슬 쓸어주면 놈은 더욱 품안으로 파고들며 기분 좋은 표시로  '굴굴굴'하고 소리내어 반응한다. 이때는 그 날카로운 발톱도  숨기고 아주 얌전해 진다. 그러다가도   자기를 나무라거나 때리기라도 할라치면 금방 앵돌아져 숨겼던 발톱을 세워 서는 쓱 긁어 놓고 도망을 친다. 예사 교활하고 애증(愛憎)의 변덕이  많은 놈이 아니다

 
. 한데, 나는 이번에 그런 놈이 사람도 하기 어려운 수작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작부터 놈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줄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사람 심리를 교묘히 이용할 줄은 몰랐다.


며칠 전이다. 나는  집 옥상을 오르다가 깜짝 놀랐다. 웬 생선이 바닥에 널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집 고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집 고기를 누가 가져다 놓은 게 분명한데, 그 고기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누구 짓일까. 하나, 의문은 금방 풀렸다. 고양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놈은 내가 그걸 보고 당황한 것과는 달리,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데도 천연덕스럽게 누워서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행동거지가 마치 ‘당신네 고기가 아니니 상관하지 말라’는 것만 같았다. 하여 나는 놈을 냅다 걷어차 주었다. 느물거리는  모습이 가증스럽고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수십 년 간을  범인을 추적하고 수사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아무리 상대방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 할지라도 범죄현장을 그냥 눈감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놈은  영리한 놈이지만 그 점까지는 모르고 있는것 같았다.  


이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살고 있으니 한가족 취급을 받지만, 사실은 우리 집 고양이도 아니다. 어느 집에서 뛰쳐나온 고양이가 갈데 없이 떠돌다가 우리 집 옥상에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나는 훔쳐온 고기와 달아난 그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씁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필시, 이 모든 행위를 사람한테서 배웠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서였다. 이것이 지금의 세태 반영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양이가 ‘당신네 고기를 훔친 게 아니니 적당히 눈감아 주시오’ 하는 것이, 사람들이 즐겨 쓰는 수작이며 수법이 아니던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사재기, 부동산투기가 이런 태도에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특히 불법산림훼손, 농지전용, 공유수면 매축 등은 그런 측면이 많지 않는가. 이런 범법들은 사람들이  자기 일에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지만  남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눈감아 버리는  심리를 십분 활용한 범죄들인  것이다.


나는 그걸 보면서 부끄러운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오죽 그런 일들이 밥먹듯 번번하게 자행되고  있으면 고양이가 다 그런 수법을 배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주제 넘은  고양이에게 분명히 한가지는 깨우쳐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엔 무관심하고 범죄를 보고도 눈감는 일이  흔하지만, 그런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놈을 힘껏 걷어 차버렸는데, 그런데도 고양이는  훔쳐온 고기가 아까웠던지  도망가기는커녕  멀뚱멀뚱 나를 쳐다 볼  뿐이었다.


그걸 보자  사람들이  미물에게까지  양심을 몽땅  빼앗기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오래토록  가시지 않았다.(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