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0.
7월 6일
로테는 여전히 그 위독한 부인을 간호해 주고 있네.
언제나 변함없이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인정 많은 로테라네.
그녀의 눈길이 닿으면 고통이 덜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이 솟아오른다네.
어제 저녁에 로테는 마리아네 와 어린 말헨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네.
나는 그것을 알고 도중에서 만나 함께 걸었네.
1시간 반 정도 산책한 다음 동네 쪽으로 돌아와, 그 샘터에 다다랐네.
그 샘터는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소중한 곳이 되었다네.
로테는 나직한 돌담에 걸터앉고, 우리는 그 앞에 서 있었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네.
그러자 아아, 내 마음이 그토록 외로웠던 그 무렵의 일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걸세
<그리운 샘터여>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네.
<그 뒤로 나는 한 번도 시원한 네 곁에서 쉬지를 못했구나.
급히 지나쳐 버릴 뿐, 너를 걸들 떠보지도 않았던 적조차 더러 있었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말헨이 집에다 물을 떠 가지고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었네.
나는 로테를 보았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새삼 절실히 느꼈다네.
그 사이에 말헨은 다 올라왔네.
마리아네가 그 물 컵을 받으려 하자"안 돼!"하고
말헨은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네.
".....로테 언니, 언니가 먼저 마셔요!"
나는 말헨의 그 천진한 애정에 감동되어 얼른 그 애를 안아 올리고 키스를 퍼부었네.
나는 내 감동을 그렇게 밖에는 나타낼 수가 없었던 걸세.
그런데 말헨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네.
"선생님이 잘못하신 거예요"로테가 말했네.
나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지.
"저리 가자, 말헨"하고 로테는 그 애의 손을 잡고 돌계단 아래로 내려갔네
"자, 솟아나는 이 깨끗한 물로 씻어라. 얼른얼른 씻는 거야. 그러면 아무 일도 없어"
나는 거기에선 채로 그 어린아이가 물에 적신 작은 손으로
제 뺨을 열심히 닦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적의 샘물에 모든 부정한 것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서,
보기 흉한 수염이 뺨에 나게 되는 일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고 있는 모양이었네.
"이제 그만 됐다!"하고 로테가 말해도 그대로 계속 닦고 있었네.
많이 하는 편이 효과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빌헬름이여, 나는 일찍이 세례의식에도 이토록 경건한 마음으로 참여하진 않았네.
로테가 다시 올라왔을 때,
나는 만민의 죄를 깨끗이 씻어 준 예언자라도 대하듯 그녀 앞에 넓죽 엎드리고 싶었네.
저녁때, 나는 내 마음속의 기쁨을 숨길 수가 없어서 이 사건을 어떤 남자에게 이야기했네.
분별이 있는 인물이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그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네.
그는, 그건 로테가 잘못한 거라면서,
아이들에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불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걸세.
그것이 온갖 망상과 미신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라나,
그런 데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어린이들을 일찍부터 지켜 주어야만 한다는 거야.
나는 그 사람이 바로 1주일 전에 자기 아이들에게 세례를 받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네.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대하듯 어린이를 대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즐거운 망상속에 사로잡아서 몽롱한 기분에 잠기게 할 때에
우리가 가장 행복해지는 것처럼>이라는 진리를 되새기고 있었네.
7월 8일
어쩌면 이다지도 어린애 같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나에게 눈길을 돌려주기를 바라다니!
어쩌면 이다지도 어린애 같단 말인가!
우리는 발하임에 갔었네. 여자들은 마차를 타고 우리는 걸어서 갔는데,
나는 걸어가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네. 로테의 검은 눈동자 속에 분명히......
나는 바보일세, 용서해 주게나, 자네에게도 보여 주고 싶네,
그 눈을. 간단히 말해서(지금 졸음이 와서 자꾸만 눈이 감기는 형편이거든) 이런 이야기일세.
여자들은 마차에 올라타고, 젊은 W군과 젤시타트, 아우드란,
그리고 나는 마차 주위에 둘러서 있었네.
마차 안의 여자들과 바깥에 둘러선 남자들 사이에 대화가 오고갔지.
모두들 수다스럽고 쾌활한 친구들이거든. 나는 로테의 눈길을 잡으려하고 있었지.
아아, 그 눈길은 다른 사내들에게로만 이리저리 보내졌네.
그런데 나에게는! 나에게는! 나는 따돌려진 채 체념을 하고 서 있었네.
그 눈길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돌려지지 않았다네!
나는 마음속으로<잘 가요>하는 인사를 천 번도 더 하고 있었는데 말일세!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보지 않는 거야!
이윽고 마차가 떠나갔네!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네.
멀어져 가는 마차를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머리 장식이 마차의 문 밖으로 내비치더니,
그녀가 뒤를 돌아다보는 게 아닌가. 아아! 나를 보기 위해서 그랬을까?
친구여!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네.
아마 나를 돌아다본 것이겠지,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위안일세----
잘 있게나! 아아, 어쩌면 나는 이다지도 어린애 같을까!
7월 10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로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바보스러운 거동을 자네에게 보여 주고 싶네!
누군가가 내게 로테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더구나, 마음에 든다! 나는 그런 말이 딱 질색일세.
로테가 마음에 드는 사람 치고
모든 감정이나 생각이 그녀로 인하여 충만 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에 들다니! 며칠 전에 나에게 오시안(아일랜드의 전설적 시인)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은 사람이 있었지.
7월 11일
M부인의 용태는 매우 위독하다네.
나는 부인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네.
로테와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있는 터이니까 말일세.
내가 그 부인 집에서 로테를 만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지만,
오늘 로테는 나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네
M이라는 노인은 아주 탐욕스러운 수전노로서,
태껏 그 부인을 몹시 고생시키고 야박하게 굴어 왔다는 걸세.
그러나 부인은 어려운 대로 겨우겨우 살림을 꾸려 왔다는 걸세.
며칠 전, 의사가 그 부인에게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녀는 남편을 병상에 불러 놓고(로테는 그 자리에 있었다네)다음과 같이 말했다네.
"당신에게 고백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어요.
제가 죽은 뒤에 분란이 일거나 불쾌한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되겠기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저는 여태까지 최대한으로 절약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려 왔어요.
그러나 당신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할 일이 있는데,
그건 제가 30년 동안 줄곧 당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이에요.
당신은 우리가 결혼했을 때, 부엌살림에 소용되는 경비와
집안살림의 비용 조로 얼마 안 되는 금액을 결정하셨지요.
그 뒤로 우리의 살림 규모도 늘고 장사가 확장되었는데도,
매주 당신이 주시는 돈은 변함이 없었어요.
좀더 올려 달라고 제가 아무리 간청을 해도 당신은 들어주시지 않았어요.
길게 말하지 않더라도, 살림 규모가 가장 커졌을 때에도
1주일에 7굴덴의 돈으로 꾸려 나가라고 말씀하셨던것은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요.
저는 당신 말대로 고분고분 그 7굴덴을 받았고,
모자라는 돈은 매주 가게의 매상금 중에서 따로 떼어 충당해 왔지요.
주부가 매상금의 일부를 훔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조금도 낭비를 하지 않았어요.
이런 고백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편히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제 뒤를 이어 살림을 꾸려 나갈 사람이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당신은 또 보나마나
그전 마누라는 그 돈으로 거뜬히 꾸려 나갔노라고 우기실 테니,
그 생각을 해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로테와 이야기를 했네.
대충 2배 정도의 경비가 소요된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7굴덴으로 꾸려 나가고 있다면 그 이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텐데,
그것을 그대로 지나쳤다니......
그러나 나는 자기 집에<예언자의 무진장한 기름단지>가 있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