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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貞純王后)의 은거 /정조(正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

Joyfule 2021. 5. 5. 15:52

    歷史 Essay 749 ☞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은거 왕위에 오르자 정조(正祖1752/76/1800)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단죄를 시작한다.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친누이면서도 그를 모함하여 죽게 만든 화완옹주(和緩翁主1738-1808)는 궁에서 내쫓고 그 양자 정후겸(鄭厚謙)은 유배 후 사약을 받았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작은아버지로 정조의 외가였지만 벽파(僻派)의 선봉 인물로 사도세자를 모함해 죽게 만들었던 홍인한(洪麟漢)도 고금도(古今島)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다.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도 무사할 수 없었다. 그녀의 오빠인 김귀주(金龜柱)는 흑산도(黑山島)로 유배되었다가 병사하였다. 이를 본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는 극도로 분노했지만 정조의 위세를 두려워해 창덕궁(昌德宮)에 틀어박혀 살 수밖에 없었다.

    歷史 Essay 750 ☞ 정조(正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 정조(正祖)는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와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1735-1815)의 추종 세력을 제압하는 과정에서도 정작 그녀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정순왕후는 할아버지의 정비(正妃)였고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친어머니였으니 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는 조선 사회에서 친족에게 벌을 내렸다가는 폭군으로 몰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틈만 나면 그들을 잔치에 초대해 돈독한 존경심이 있는 것처럼 대외에 홍보했다. 그러면서도 정조와 정순왕후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순왕후의 벽파(僻派)와 정조는 철천지원수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중에 정조의 죽음 뒤에 정순왕후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