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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의 새 도로 1번 국도(國道)/ 지지대(遲遲臺)고개/ 애연가 정조(正祖)

Joyfule 2021. 5. 12. 06:01

    歷史 Essay 764 ☞ 정조(正祖)의 새 도로 1번 국도(國道) 정조(正祖1752/76/1800)는 부친의 능(陵)을 수원 화산(水原華山)으로 옮기고 거의 해마다 능행을 했다. 한양에서 수원으로 가는 원래 길은 동작동(銅雀洞)과 과천(果川)을 잇는 길이었는데 정조는 그 도중에 김상로의 무덤이 있어서 이를 피해 시흥(始興)과 안양(安養)을 거치는 새 길을 닦게 했다. 김상로(金尙魯1702-66)는 영조(英祖) 때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했는데 영조와 세자를 이간질해서 뒤주사건을 일으키게 한 인물로 정조는 즉위하고 나서 그의 관직을 삭탈하고 아들 둘을 귀양보내고 손자를 종으로 만들었다. 정조의 구원(舊怨) 때문에 남으로 가는 주도로 즉 지금의 1번 국도(國道)가 시흥 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歷史 Essay 765 ☞ 지지대(遲遲臺)고개 정조(正祖)는 1795년 음력 2월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1735-1815)의 환갑연을 화성의 원소(園所)에서 열기로 한다. 2월 10일 수원(水原)에 도착 친위부대 장용영(壯勇營)의 시범을 관람하고 11일 과거를 실시한다. 12일 화산능원(花山陵園)에 가서 환갑 의례를 마치고 팔달산(八達山)에 오른다. 휘황찬란한 전야제 축제는 다음 날 3시까지 계속되고 낮에는 문무백관의 참례를 올린다. 14일에는 화성의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열고 15일 서울로 환궁한다. 환궁길마다 고개를 넘는데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고개를 넘어서면 아버지 묘소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래 머물렀다 해서 오늘날까지 `지지대(遲遲臺)고개`라 부른다.

    歷史 Essay 766 ☞ 애연가 정조(正祖) 임란(壬亂) 전후 일본서 들어온 담배는 십년도 안 되어 온 국토를 담배연기로 물들인다. 시중에서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고 서북지방에는 농사를 팽개치고 담배를 재배해 밀수출을 하는 등 부작용이 많아 많은 지식인들이 그 폐해를 성토했지만 정조(正祖)는 담배를 예찬하며 애용했다. 정조는 이미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된 사람들에게 직접 공부를 카르치고 시험을 보아 승진시키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 잘난 사람들을 가르치려면 얼마나 피나는 공부를 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생긴 증세를 치료하려 백방으로 약을 구해보았지만 남령초((南靈草-담배)가 차나 술보다 훨씬 낫더라고 토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