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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北學派)의 거장 박지원(朴趾源)/ 열하일기(熱河日記)

Joyfule 2021. 5. 10. 15:15

    歷史 Essay 762 ☞ 북학파(北學派)의 거장 박지원(朴趾源) 1737년 한성서 태어난 반남 박씨 지원(潘南朴氏 趾源1737-1805)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 1768년 황해도 연암(燕巖)에서 은거해 호가 연암(燕巖)이다. 1780년 청(淸)의 고종(高宗) 70세 진하 사절(進賀使節)로 중국에 가 2개월간 북경(北京)과 열하(熱河)를 오가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다. 1786년 50세에 정조(正祖)에 의해 특별히 성균관(成均館) 관리가 되고 그 후 한성판관(漢城判官) 안의현감(安義縣監) 양양부사(襄陽府使) 등의 벼슬을 지내다가 1805년 69세로 죽는다. 그가 주창한 북학사상(北學思想)은 청나라가 밉더라도 청의 선진문명이 우리의 현실을 풍요롭게 한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이자는 것으로 그 후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된다. 그의 손자가 박규수(朴珪壽)다.

    歷史 Essay 763 ☞ 열하일기(熱河日記)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1737-1805)은 1780년 7월 채제공(蔡濟恭)을 따라 청(淸)나라 6대 황제인 건륭제(乾隆帝)의 70세 생일 축하 사절단으로 중국에 갔다. 의주(義州)를 출발해 북경(北京)을 거쳐 건륭제의 여름 별장이 있는 열하 지방(熱河地方)에 가서 156일간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며 청의 문물이 이토록 발전했는데 조선 선비들은 아직도 명(明)나라만 좇음을 안타까워하면서 1783년에 완성한 책이 열하일기(熱河日記)다. 독자가 마치 청나라를 직접 여행 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재미있게 쓴 책인데 당시로서는 유교 윤리(儒敎 倫理)에 위배된다 해서 그렇게도 책을 좋아하던 정조(正祖)까지도 배격하여 금서(禁書)로 삼았을 만큼 파격적인 문체(文體)로 쓰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