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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예수님의 기도생활 - 4. 기도의 제요소

Joyfule 2007. 9. 3. 06:05

4. 기도의 제요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 대한 복음서의 묘사가 보여 주는 셋째번 중대한 사실을 살피기로 하자. 주님께서 하신 기도들은 그 속에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 즉 영교,감사,간구,중보 등을 가지고 있었다.

 

영교 : 가끔 예수님께서는 그가 필요로 하고 있는 어떤 은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향하셨다. 누가는 그러한 경우의 하나를 묘사하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셨다](눅 9:29)고 기록하고 있다.이러한 것이 영교의 기도이다. 그 때에는 마음과 마음이 맞으며 변화산에 있던 예수님의 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과 말씀하셨으며, 그 완전한 친교의 시간이 너무 깊고 부요하며 귀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광채와 기이함을 얼굴에 지닌 채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는 얼굴로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단순히 기도를 하나님께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에 대해(우리에게 주는)경고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인간 사이의 우정을 단순히 편리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며, 도움을 바랄 때만 친구에게 접근하고 그 밖에 다른 때에는 전혀 그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이런 물질적 이익만을 바라는 관계에서는 우정이 존재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근거 위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전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하신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요청할 것이 없는 때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은사를 바라서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고 그 앞에 나아가게 하신다.이것이 영교가 맺어지는 기도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이러한 길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만나 주시며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 속에 뚫고 들어오는 복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에서 사람은 그 전생애가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던 그리스도와 같이 하늘의 광채를 지니고 변화하게 된다.

 

감사 : 또 다른 하나의 요소는 감사이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감사로 가득찬 기도였다. 때때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했던 것을 찬양과 감사였다.종종 기도의 특징을 이루는 불평이나,항변이나,투덜대는 어조를 예수님의 기도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넘쳐 흘렸던 것은 언제나 그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심이었다.

 

그리고 햇빛처럼 밝은 생활만이 그의 입술로 하여금 감사의 외침을 말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생활에 어두움이 덮혔던 때에도 그의 감사는 식어지지 않았다. 그의 부서질 몸의 상징인 부서진 떡을 취하신 후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눅 22:19).그는 잔을 취하신 후 그 잔 속에서 자신의 피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눅 22:17).그는 다락방에서 부터 겟세마네 땀과 고통속으로 찬송하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나아갔다(막 14:26).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예수님의 입에서는 찬양과 기도가 그치지 않았으며,십자가 마저도 이를 침묵케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기도의 또 다른 요소는 간구이다. 우리가 이미 상본대로 하나님께 은사들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주님의 기도 생활의 전부가 아니었으며,주요 부분 조차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흘러서 이러한 간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에 와서 특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명확하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초보적이고 유치한 형태의 기도이므로 성숙한 신자의 신앙 속에서는 찾아 볼 수 없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간구를 깎아 내리려는 위험한 경향을 오늘날 소위 진실하다는 기독교인 가운데서 조차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아주 단호히 부정해야 한다. 간구의 유치한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유익하다는 생각은 다음의 분명한 사실에 부딪칠 때 산산조각이 난다.

 

즉 예수님께서는 결코 간구를 유치한 것으로 내어 버리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간구를 장려하셨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간구기도를 활용할 것을 권고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기도문의 첫 두마디[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눅11:2)에서 이 사실을 아주 못박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참으로 그의 자녀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명확하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간구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 수가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간구는 그리스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제일의 조건인 [당신의 듯이 이루어지이다](마6:10)에 항상 지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열망하는 것을 하나님의 지혜는 거절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강조하려는 주안점은 간구기도를 깎아 내리려는 경향은 첫째로 믿음의 결핍을 표시한다는 사실이다. 이 경향의 근원에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자유로우신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속박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 그 자신의 세계 속에 사로 잡혀 포로라는 사상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자유로우시며 따라서 진정한 믿음은 항상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할 것이며 그 요구를 하나님의 보좌에 바로 직고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도에는 중보적인 기도가 많이 들어있다.그는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막10:16).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때에도 그으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다(눅23:34).그는 그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요12:9). 그는 유다를 위해 기도 하셨다.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얼마나 무섭게 기도로 씨름하셨는가는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만이 아신다. 어느날 제자들과 계실 때에 외쳐 말씀하시기를 [시몬아,시몬아, 보라,사탄이 밀까부르듯 너희를 유혹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눅22:31-32)라고 하셨다. 또한 이러한 중보기도의 영원한 팔이 그를 받치고 지탱하고 있음을 안 것이 베드로에게 어떤 강력한 힘이 되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의 추하고 한 없는 범과가 우리와 함께 자라나고 우리의 호흡과 함께 시작하였을 지라도 영원한 중보의 팔을 드소서 예수, 가장 인간이셨을 때 가장 신성하셨던 분이여!

또한 꼭같은 중보의 제사장직의 예수님에 의해 모든 제자들에게 위임되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생활 연구에서 맺어지는 실제적인 결론을 기도는 모든 참 종교의 심장이 되어야 하며 모든 최선의 삶,그리고 고상한 삶의 동력과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번연]의 천로역정에서 순례자들이 [유혹의 나라를 지날 때에 [손과 시선을 높이 들고 높이 계신 분에게 말하고 있는 듯한 무릎 꿇은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가까이 가보았으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그들은 조용히 있었다. 그러자 말을 끝낸 후 그 사람은 일어서서 천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남들이 멈추거나 넘어지는 곳에서 걸어가거나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은 [견인씨](Mr.Standfast)처럼 자주 무릎을 꿇고 위에 계신 분께 열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승리의 비결을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기도하는 방법을 습득한 사람이다. 그들은 강한 데서 더 강한 데로 나아가며 모두 시온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를 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