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 자르는 데 도끼질하지 마라.
혼자 길을 걷다가 가끔 이 말을 생각합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작은 일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별일도 아닌데 지레 놀라 허둥지둥하지는 않았는지,
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헛된 일에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붓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얻음과 잃음 사이에서,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그때는 그렇게 크게 생각하고 모든 힘을 다해 대항해왔는지 모릅니다.
특히 남의 작은 잘못에 크게 화를 낸 일들은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본질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의 과잉이 제 삶을 지배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외면한 과잉반응의 삶은 자칫 진실이 결여된 마음과 행동을 낳습니다.
과잉된 행동이나 과장된 제스처는 그동안 제 삶을 불안하게 하고
신뢰를 떨어뜨린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물건을 하나 쓰더라도 본질과 용도에 맞게
제때 제 것을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늘 간장종지에 설렁탕을 담아 먹은 듯하고,
설렁탕 뚝배기에 간장을 가득 담아 먹은 듯합니다.
작은 종이 한 장 자르는 데는 가위나 '커터' 라는 문구용 칼이 좋습니다.
면도하는 데는 날카롭게 날이 선 면도칼이 좋습니다.
나무를 자르거나 베기 위해서는 톱이나 도끼가 좋습니다.
만일 누가 가위나 면도칼로 나무를 자르려고 한다면,
도끼로 종이 한 장을 자르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는 본연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헛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자기 본연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존재의 품위를 나타내고, 존재가 이루는 삶의 품격을 나타냅니다.
-정 호승 著,산문집"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