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입니다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지옥은 보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죄로 스스로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모르면, 현대의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난 그런 하나님 안 믿어!”라며 제기하는 다양한 도전적인 질문들에 대해 이성적이며 논리정연한 답변을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지성적이며 합리적인 성서적 해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현대 지성인들이 제기하는 질문들 중 예를 들면,
1.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줬으면서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심판하고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이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냐?
2.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었다는데 그 인간이 잘못 됐으면 부숴버리든지 다시 만들든지 하면 되지 창조주 하나님이란 분이 대신 죽어서 인류를 구원해?
3.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토록 험악하고 살인 폭력이 난무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 또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굶어죽는 것을 보고만 있느냐?
이런 반론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예수를 잘 믿어 보려던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슬픈 일입니다. 이런 반론들을 변론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영혼구원을 위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제 능력 범위 내에서 간단히 변론해 보겠습니다.
1번: “자유의지를 줬으면서 말을 안듣는다고 지옥에 보내?“에 대하여.
이 주제는 먼저 인간의 존재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 아담이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영적교류가 단절된 인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영적으로 다 죽은 자들입니다.(눅 9:60, 엡 2:1-10)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영적으로 이미 다 죽은 자들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벌을 주거나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그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죽게 하실 필요도 없고, 예수님을 보내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하룻밤 사이에 다 쓸어버리시고 다시 만드시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미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인류를 향해 “그 길로 가면 안돼! 그 길은 죽는 길이야!”라고 그 길에서 돌아서기를 외치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존재, 어떤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 5:6-8)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1-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1 4:9-10)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여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살아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애 3:33-39)
지옥은 하나님 말씀을 안 듣는 자들을 보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죄로 인해 스스로 가는 곳입니다.
여기서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 윤리적 수준으로 판단해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등등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죄(하마르티아)'라는 단어의 본질적 의미는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다'라는 뜻으로, 인류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그 분의 창조목적에서 빗나가(벗어나) 자기 스스로의 삶을 사는 상태를 '죄'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지희에게 돌리지 아니 하시고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9)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지옥으로 보낸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말이 됩니다.
하나님과 결별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옥으로 가는 자들에게 구원의 생명 줄을 던져주었고 그 생명 줄을 잡는 자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남들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감추어둔 죄성을 가진 '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나’입니다. 사람들 앞에 보이는 가면 쓴 얼굴과 위선으로 포장된 거짓 성품은 진짜 '나'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안보거나 기회와 환경과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악을 순식간에 행하려는 내 스스로도 싫어지는 그 악한 사람이 진짜 ‘나'입니다.
그 양의 탈을 쓴 이리나 염소 같은 악한 사람이 '죄성을 가진 본연의 나'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에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나에게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듯 북이스라엘 민족들이 다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지자 요나를 보내어 그들을 살리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니느웨 사람들처럼 죽어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또 아버지를 거역하고 외국에서 제 멋대로 방탕하게 살다가 후회하고 돌아 온 탕자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용서하시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연회를 벌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세상에서 제 멋대로 살던 그 탕자였습니다. 나실인 삼손이 이방 여인(우리들) 데릴라를 끔찍이 사랑해 자신의 비밀을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자기 생명을 지불한 것처럼, 또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자 고멜(우리들)과 결혼하고 사랑한 것처럼, 우리들은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해 주시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와 사랑에 대해 피조물인 우리 머리로 하나님을 쉽게 판단하는 것은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누가 우리를 위해 죽어달래?”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7-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 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겔 33:11)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출처 : 방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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