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최재동 美 자살예방 전문가기사입력 2014-03-03 03:00:00 기사수정 2014-03-03 03:00:00 |
“교통사고 사망보다 자살이 3배나 많은 한국,
자살예방에 이토록 둔감하다는게 신기할 정도”
누구나 자살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가 대학원(샌프란시스코대)에 진학해 정신건강을 공부하게 된 특이한 이력이 궁금했다. 그의 말이다.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 이민자들 때문이었다. 1960∼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 중에는 고학력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가장(家長)이 집에 돌아가면 부인을 학대한다든지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런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뭘까, 사람 마음이란 게 뭘까 궁금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자격증을 얻기 위해 3000시간 비영리 단체 등에서 임상 경험을 쌓기도 했다. 적은 급여를 받으며 평균 5년을 일해야 하니 중도 포기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여러 계층과 민족을 봤을 것 같다. 자살률이 특히 높은 계층이 있나.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자살충동, 즉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온다. 건강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살짝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붙잡는다는 게 다르다. 우울증 치료자들이 자살을 언제 가장 많이 하는 줄 아나.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호전되는 직후이다. 사실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죽을 힘조차 없다. 그런데 치료받고 난 직후에는 몸에 에너지가 생긴다. 그때 저질러 버리는 거다.”
―그럴 때 주변 사람이 도와줄 방법은 없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는 게 아니다. 항상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던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욱하는 마음으로 임계치를 넘는 순간에 실행한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자살 징후를 읽을 수 있는 몇가지 팁을 이렇게 들었다.
“갑자기 아끼던 물건을 나눠주기 시작할 때 잘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우울증 환자들을 상담할 때 묻는 질문이 있다. ‘지금 죽고 싶어?’ 했을 때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어떻게 죽으려고?’라고 묻는다. 이때 ‘글쎄, 뭐 어떻게든 죽으려고’라고 말하면 안심해도 된다. 생각은 있어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살 의지가 덜한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약 준비해놨어’ 혹은 ‘끈으로 목을 매려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요주의 인물이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바로 전문가를 연결시켜 주는 게 좋다. ‘나한테 일단 말해 봐’가 아니라 아예 상담 날짜를 예약해서 ‘넌 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나랑 같이 가보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는 이 대목을 설명하다가 “한국은 왜 이리 자살을 부추기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층빌딩 옥상까지 감시해야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아파트 옥상이나 고층빌딩 옥상에 너무 쉽게 올라갈 수 있지 않느냐. 폐쇄회로TV(CCTV)로, 하다못해 근무자들이라도 옥상에 출입하는 사람을 감시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인터폰으로 ‘어떤 용무로 가냐’고 물어보는 최소한의 시스템도 없는 것 같다. 고층건물 창문이 활짝 열리지 않도록 하는 건축 규제도 필요하다. 세계 1위 자살국이라는 오명 뒤에는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있지만 자살을 너무 쉽게 하게 만드는 둔감한 환경도 분명 존재한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미 자살 방지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美 ‘고위험군’ 응급정신과서 관리
“미국 내 ‘72시간 응급정신과병동’은 함의점이 크다. 한국에서 다리 위에서 어떤 남자가 죽겠다고 소동을 벌였다고 하자. 경찰이 출동해서 그 남자를 구해낸 뒤 어떻게 하나. 본인만 ‘괜찮다’고 하면 집에 데려다 주거나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학생이 있다 해도 교사는 이런 학생을 어디로 보내야 학생을 구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방치하는 사이 자살이 일어난다. 미국은 이런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72시간 응급정신과로 보낸다. 경찰관이나 훈련받은 간호사, 교사들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일종의 ‘명령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응급정신과로 간 고위험군은 의료진이 계속 지켜보다 상태가 나아지면 24시간 안에라도 퇴원할 수 있다.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법원 결정을 통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자살 고위험군’이라는 판단에서부터 이들을 강제로 정신과 보내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소지가 있지 않을까.
“전혀. 인권보다 생명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지면 사람들이 119를 부르고 응급실로 보내지 않는가. 다리 위에 올라가 자살하겠다고 호소하는 사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부러진 환자다. 이 사람들이 겉으로는 ‘괜찮다’ 말해도 주변과 사회는 보호해줘야 한다. 자살 순간을 모면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재시도 없이 잘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병원과 의사, 간호사가 충분한 한국에서 자살위험군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자살 시도자들의 경우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도 많지만 경제적인 원인이 많다. 노인자살의 주요 원인이 빈곤 문제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72시간 병동’에 사회복지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원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사회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은 것 같나.
“분노 관리, 감정 관리, 스트레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생각이 다르면 적절한 수단을 통해 서로 소통을 하고,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 좋다. 위아래를 너무 따지다가 ‘때’를 놓치고 욱해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문득 자살을 막는 것만이 과연 능사일까란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아닐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 아닌가.
그는 고개를 크게 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에 따른 사회적인 손해는 너무 크다. 한국에는 자식과 동반자살을 하는 부모가 있는데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식이 소유물인가, 자식의 생명권은 뭐가 되나. 옥상에서 투신을 하는 사람을 본다든지,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본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충격은 대단히 크다. 집안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유가족들은 거의 평생을 폐인처럼 산다.”
그러면서 그는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들조차 사실은 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 교도소에서 만난 한 재소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싶다’는 말
“2010년이었다. 캄보디아 출신 이민자인 20대 중반 청년이었다. 청소년 때부터 갱 생활을 했는데 급기야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교도소에 왔다. 어찌나 포악한지 머리를 벽에 쾅쾅 박으며 ‘죽어버릴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다른 심리분석관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며 그와 상담하기를 포기했다. 나와 만나 비로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아마 외모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만난 지 꼭 1년째 되던 날 법정선고를 받았는데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을 받았다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맨날 ‘죽어버리겠다’ ‘죽고 싶다’고 말하던 그도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최 분석관은 “죽고 싶다는 사람들은 사실 살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한국 사회에서 지난 10년간 자살한 유명인들의 리스트를 죽 나열하더니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지금 너무 타인의 자살에 둔감하다. 연예인 자살로 뉴스에서 확 떠들면 관심이 반짝했다가 곧 끝나버린다. 이런 식이면 자살률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1년에 교통사고로 5000여 명이 죽는데 자살로 1만5000여 명이 세상을 뜨는 나라가 어디 있나.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
인터뷰=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자살예방에 이토록 둔감하다는게 신기할 정도”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내 한국인 이민자들이 겪는 심리적 중압감을 지켜보고 정신분석상담가로 변신했다는 최재동 씨. 현재 미국 교도소 심리분석관으로 재직 중인 그는 “자살은 피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억울한 죽음”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살 1위’ 국가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33.5명으로 세계 1위다. 노인 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79.9명으로 세계 1위다.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만난 최재동 샌타클래라 카운티 심리분석관(57·미국명 제이 최)을 만났을 때 묻고 싶은 질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육군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5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 주 공인 가족상담치료사와 심리치료사 자격을 땄다. 2005년부터는 샌타클래라 카운티 교도소 내 재소자들의 자살 예방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번에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대구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의 강연 요청 때문이었다. 》누구나 자살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가 대학원(샌프란시스코대)에 진학해 정신건강을 공부하게 된 특이한 이력이 궁금했다. 그의 말이다.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 이민자들 때문이었다. 1960∼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 중에는 고학력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가장(家長)이 집에 돌아가면 부인을 학대한다든지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런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뭘까, 사람 마음이란 게 뭘까 궁금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자격증을 얻기 위해 3000시간 비영리 단체 등에서 임상 경험을 쌓기도 했다. 적은 급여를 받으며 평균 5년을 일해야 하니 중도 포기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여러 계층과 민족을 봤을 것 같다. 자살률이 특히 높은 계층이 있나.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자살충동, 즉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온다. 건강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살짝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붙잡는다는 게 다르다. 우울증 치료자들이 자살을 언제 가장 많이 하는 줄 아나.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호전되는 직후이다. 사실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죽을 힘조차 없다. 그런데 치료받고 난 직후에는 몸에 에너지가 생긴다. 그때 저질러 버리는 거다.”
―그럴 때 주변 사람이 도와줄 방법은 없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는 게 아니다. 항상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던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욱하는 마음으로 임계치를 넘는 순간에 실행한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자살 징후를 읽을 수 있는 몇가지 팁을 이렇게 들었다.
“갑자기 아끼던 물건을 나눠주기 시작할 때 잘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우울증 환자들을 상담할 때 묻는 질문이 있다. ‘지금 죽고 싶어?’ 했을 때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어떻게 죽으려고?’라고 묻는다. 이때 ‘글쎄, 뭐 어떻게든 죽으려고’라고 말하면 안심해도 된다. 생각은 있어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살 의지가 덜한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약 준비해놨어’ 혹은 ‘끈으로 목을 매려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요주의 인물이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바로 전문가를 연결시켜 주는 게 좋다. ‘나한테 일단 말해 봐’가 아니라 아예 상담 날짜를 예약해서 ‘넌 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나랑 같이 가보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는 이 대목을 설명하다가 “한국은 왜 이리 자살을 부추기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층빌딩 옥상까지 감시해야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아파트 옥상이나 고층빌딩 옥상에 너무 쉽게 올라갈 수 있지 않느냐. 폐쇄회로TV(CCTV)로, 하다못해 근무자들이라도 옥상에 출입하는 사람을 감시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인터폰으로 ‘어떤 용무로 가냐’고 물어보는 최소한의 시스템도 없는 것 같다. 고층건물 창문이 활짝 열리지 않도록 하는 건축 규제도 필요하다. 세계 1위 자살국이라는 오명 뒤에는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있지만 자살을 너무 쉽게 하게 만드는 둔감한 환경도 분명 존재한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미 자살 방지를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美 ‘고위험군’ 응급정신과서 관리
“미국 내 ‘72시간 응급정신과병동’은 함의점이 크다. 한국에서 다리 위에서 어떤 남자가 죽겠다고 소동을 벌였다고 하자. 경찰이 출동해서 그 남자를 구해낸 뒤 어떻게 하나. 본인만 ‘괜찮다’고 하면 집에 데려다 주거나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학생이 있다 해도 교사는 이런 학생을 어디로 보내야 학생을 구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방치하는 사이 자살이 일어난다. 미국은 이런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72시간 응급정신과로 보낸다. 경찰관이나 훈련받은 간호사, 교사들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일종의 ‘명령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응급정신과로 간 고위험군은 의료진이 계속 지켜보다 상태가 나아지면 24시간 안에라도 퇴원할 수 있다.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법원 결정을 통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자살 고위험군’이라는 판단에서부터 이들을 강제로 정신과 보내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소지가 있지 않을까.
“전혀. 인권보다 생명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지면 사람들이 119를 부르고 응급실로 보내지 않는가. 다리 위에 올라가 자살하겠다고 호소하는 사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부러진 환자다. 이 사람들이 겉으로는 ‘괜찮다’ 말해도 주변과 사회는 보호해줘야 한다. 자살 순간을 모면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재시도 없이 잘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병원과 의사, 간호사가 충분한 한국에서 자살위험군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자살 시도자들의 경우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도 많지만 경제적인 원인이 많다. 노인자살의 주요 원인이 빈곤 문제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72시간 병동’에 사회복지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원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사회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은 것 같나.
“분노 관리, 감정 관리, 스트레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생각이 다르면 적절한 수단을 통해 서로 소통을 하고,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 좋다. 위아래를 너무 따지다가 ‘때’를 놓치고 욱해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문득 자살을 막는 것만이 과연 능사일까란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아닐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 아닌가.
그는 고개를 크게 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에 따른 사회적인 손해는 너무 크다. 한국에는 자식과 동반자살을 하는 부모가 있는데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식이 소유물인가, 자식의 생명권은 뭐가 되나. 옥상에서 투신을 하는 사람을 본다든지,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본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충격은 대단히 크다. 집안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유가족들은 거의 평생을 폐인처럼 산다.”
그러면서 그는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들조차 사실은 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 교도소에서 만난 한 재소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싶다’는 말
“2010년이었다. 캄보디아 출신 이민자인 20대 중반 청년이었다. 청소년 때부터 갱 생활을 했는데 급기야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교도소에 왔다. 어찌나 포악한지 머리를 벽에 쾅쾅 박으며 ‘죽어버릴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다른 심리분석관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며 그와 상담하기를 포기했다. 나와 만나 비로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아마 외모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만난 지 꼭 1년째 되던 날 법정선고를 받았는데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을 받았다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맨날 ‘죽어버리겠다’ ‘죽고 싶다’고 말하던 그도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최 분석관은 “죽고 싶다는 사람들은 사실 살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한국 사회에서 지난 10년간 자살한 유명인들의 리스트를 죽 나열하더니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지금 너무 타인의 자살에 둔감하다. 연예인 자살로 뉴스에서 확 떠들면 관심이 반짝했다가 곧 끝나버린다. 이런 식이면 자살률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1년에 교통사고로 5000여 명이 죽는데 자살로 1만5000여 명이 세상을 뜨는 나라가 어디 있나.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
인터뷰=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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