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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Joyfule 2015. 8. 17. 10:38

 

 

 

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9. 고통스런 항해를 떠나는 융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융은 위험한 항해를 위해 출항했다. 바로 중년의 위기를 관통하는 여행이었다. 신화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융은 위험한 네카이아Nekyia, 즉 ‘밤바다 여행night-sea journey’을 감내해야만 하는 영웅에 대한 오랜 신화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영웅의 항해는 태양 고유의 일상적인 뜨고 짐, 즉 태양의 ‘삶’과 ‘죽음’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태양의 연간주기는 황도대zodiac로 상징된다. 때때로 영웅은 바다괴물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성서에 나오는 고래와 요나 이야기를 상기해 보라. 가끔 괴물이 못된 여성의 형상으로 묘사될 때도 있다.

 

네카이아Nekyia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의 주인공 오딧세우스가 하데스의 지하세계로 떠난 여행을 일컫는 말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러한 바다괴물은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즉, 현재 우리가 애착하고 있으나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벗어나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어머니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은 어머니의 안(고래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러한 재진입을 통해서만이 그는 그녀로부터 다시 한번, 이번에는 영적으로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재진입은 성적인 근친상간 욕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다.

융은 밀러를 오진함으로써 그 자신의 무의식 여행에 대해 예언한 바 있었다. 그 여행은 무척 위험한 여행이었다. 융 자신도 뷔르골츨리의 미친 이들에게서 통제되지 않은 무의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목도했었다. 그들의 정신이 광기의 바다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융이 그러한 정신적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융은 서른 아홉살이었고 막다른 길에 직면해 있었다.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를 저버렸다. 그는 과학적인 텍스트에 대한 관심을 상실했고, 대학에서의 직위도 내팽개쳤다. 1914년부터 1919년 사이에 그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그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탐험해야만 했다. 융은 이 때의 기분을 묘사하면서 타로카드의 ‘매달린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10. 다시 홀로 바위 위에


융은 자신의 삶이 마치 외계에서 오는 뉴스처럼 자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 방황을 거듭했다. 그러던 1913년 가을의 어느 날, 그는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영상을 보았다.

 

“ 나는 괴물 같은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북쪽 지방과 저지대를 뒤덮고 내 쪽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았다 . 해일이 막 스위스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 알프스산이 점점 더 높이 솟아오르더니 우리나라(스위스)를 보호해주었다. 그 때 나는 우리의 현실 세계에 어떤 무서운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몰아치는 누런 물결 위로 찬란했던 문명의 파편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을 보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익사한 시체들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 바다 전체가 피로 변했다.”

융은 같은 꿈을 수 주 후에 또 꾸었는데 , 그 때에는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 이것은 현실이며 곧 그렇게 될 것이다 .”

 

그리고는 1914년 6월까지 이와 비슷한 불길한 꿈들을 되풀이해서 꾸게 되었다. 마지막 꿈에서 융은 한 그루의 나무를 향하여 얼어붙은 땅 위를 쉼없이 걸어갔다. 그 나무에는 치유력을 가진 즙이 가득찬 달콤한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융은 열매를 따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14년 8월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융은 그 꿈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꿈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는 ‘ 자신의 경험이 인류 전체의 경험과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융은 자신의 무의식세계를 탐험하는 힘든 여정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혼자 호숫가에서 조약돌로 집짓기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에 그러했듯이, 환상과 이미지의 폭포에 몸을 던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 어두운 깊은 곳을 향해 풍덩 뛰어들었고 ’ , 자신이 ‘ 우주의 심연 끝에 ’ 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달이나 텅 빈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 나는 마치 죽은 자들의 땅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 ”
그 곳에서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 엘리야와 살로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러나 그가 대면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은 필레몬Phillemon이었다.

 

“ 그는 꿈 속에서 나에게 훨훨 날아왔습니다 . 황소의 뿔이 머리에 나 있었고 손에는 세 개의 열쇠가 달린 열쇠고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하나의 열쇠는 잠긴 것을 열기 위해 따로 빼서 다른 손에 쥐고 있었죠. 그리고 노인의 등에는 물총새 같은 날개가 나 있었습니다. ”

 

융은 그 꿈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본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 그림을 그리던 중 그는 호숫가에서 죽은 물총새를 발견했다.

“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놀랐습니다 ! 물총새는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매우 드물었죠. 나는 그 죽은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물총새를 단 한 마리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이 사건은 그가 일생동안 경험한 많은 우연의 일치 중 하나였다 . 이 영향으로 융은 필레몬의 등장을 현실로 생각하게 되었다. 융과 필레몬은 정원을 산책하면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 필레몬 , 당신의 말씀은 제 생각이 저 자신 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

“ 물론 아니지 . 자네는 자네 자신이 그 생각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이란 숲 속에 있는 짐승과도 같은 것이라네. 혹은 방 안에 있는 사람과 같다고도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자네는 자네가 그 짐승이나 사람도 만들어냈다고 생각할 건가? ”
“… ? ”

 

11. 필레몬, 신화적 상상


필레몬은 누구인가 . 혹은 무엇인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융은 그 자신과 자문자답한 것일 뿐이며, 필레몬은 환상의 산물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사로잡았던 망상이나 알 수 없는 음성들과 유사한, 정신병적 증상인 것이다. 그러나 융은 필레몬이 자신에게 영적인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보내진 영혼의 구루guru라고 생각했다.


융의 후기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 필레몬은 ‘ 영혼의 원형적 이미지 ’ 라고 칭할 수 있으며 , 정신질환자를 치명적인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무의식적 이미지의 소산이다. 그러나 합리성을 중시하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거의 사라지게 된, ‘ 신화적 상상 mythopoeic imagination ’ 의 소산이기도 하다 . 그러한 상상은 도처에 자리잡고 있지만, 터부시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1916년 여름, 융에게 큰 전환점이 다가왔다. 융의 집에 유령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딸들이 유령을 목격했고, 아들은 악마가 낚시를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오후,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고 초인종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한 유령이 집으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지금 막 돌아왔다 .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찾던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융은 유령의 말을 받아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는 동안 그 영혼 같은 존재는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 그 후 사흘 동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줄줄 글을 써내려 가서 Septem Sermones(일곱 개의 설교)를 완성했다.

말하자면 융은 큰 원을 빙 돌아 , 그가 학생시절 참가했던 사촌의 강령회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촌 헬렌이 영매가 아니라 융 자신이 영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