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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게 좋은건가 - 엄상익 변호사

Joyfule 2023. 2. 10. 02:09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특별한게 좋은건가



북의 핵 위협으로 사회가 뒤숭숭할때였다. 한 부인이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미국 시민권자예요.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서 비행기를 보내 저와 가족을 데려가겠죠?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평택 미군기지에 내릴 텐데 유사시에 서울에서 평택까지는 어떻게 가죠?”

그녀의 의식 속에 자신은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았다. 내가 소송을 맡아 진행 중인 또 다른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법정에 나가 판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동정을 구했다. 그녀의 태도는 마치 기도를 하는 믿음 깊고 겸손한 성녀 같은 모습이었다. 소송이 중간쯤 진행됐을 무렵이었다. 미국을 다녀온 그녀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뭔가 전과는 다른 게 그녀의 주변에서 느껴졌다.

“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어요. 미국에서 재판을 하려고 하니까 한국 재판 다 취소해 줘요. 한국의 판사들은 다 썩었어.”

그녀의 말에 나는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미국 시민권이란 그렇게 특별한 존재를 증명하는 자격증일까. 나는 이따금씩 마주치는 특별한 존재들 때문에 토할 것 같을 때가 있다. 사우나 휴게실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한 남자의 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낸 세금으로 없는 놈들이 다 공짜로 먹고 사는 거잖아? 그런데도 세상에 대해 뭔 말이 저렇게 많아?”

그의 어조에서 선민의식이 느껴졌다. 그 얼마 후 그를 다시 만났다. 친숙하다고 느꼈는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태리에 수제 페라리를 주문했어요. 기본뼈대를 만드는데 칠억이 들었어요. 그걸 배에 실어서 한국으로 오는 운송비가 일억이고. 그런데 이놈들이 빨리 보내지를 않네”

처음에는 수제페라리라고 해서 얼떨떨했다. 명품차를 다시 사람들의 손으로 가공하는 것이라는 걸 잠시 후에 깨달았다. 수제 페라리는 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고 인식하는 것 같기도 했다. 비행기의 일등석도 상대적으로 삼등석이 있기 때문에 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돈 없는 사람앞에서 돈 자랑을 하는 부자들이 있다. 경제는 발전했어도 남에 대한 배려나 사회적 겸손 같은 정신 문화는 도외시됐다. 막스베버는 그런 사회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했다.

오십대 중반 무렵 비가 오던 어느 날 법정에서 나올 때였다. 검찰 고위직에 있는 법무장교 시절의 동기가 나오는 걸 봤다. 대기하던 비서가 얼른 우산을 받쳐 그를 모시고 내려가 관용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나를 본 것 같은데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를 만나는 걸 꺼리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은 비를 맞으면서 그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비서의 대접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 비슷한 경우가 또 있었다. 법원에서 재판을 하고 고위 공무원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비가 한두방울씩 뿌리기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얼른 우산을 펴서 그 에게 받쳐주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내 머리 위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서도 비를 맞으면서 그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따라왔다. 그 고위 공직자는 함께 걷는 나나 비서가 비를 맞는 걸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가는 사람이 비를 맞으면 그도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아야 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학교 자체를 일등부터 순번을 먹여 일류 이류 삼류로 분류하던 시절이었다. 학교마다 옷과 뱃지가 달랐다. 명문의 일등학교 교복과 모자를 쓰고 있으면 일등품이라는 특별한 존재였다. 명문학교 안에서도 다시 특별한 존재를 분류했다. ‘베스트 텐’이라고 해서 우수한 학생들을 구별해 특별 취급했다. 그들은 특품쯤 됐던 것 같다. 어떤 사회에서나 구별과 차별을 두고 특별한 존재를 만들었다. 군시절 육군 사관학교출신이고 하나회 소속이라야 그 내부에서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고시에 합격하면 특별한 존재로 봐주던 시대가 있었다. 그 안에서도 집안이 좋고 성적 좋은 성골이 있고 진골이 있고 육두품이 있었다. 일반 회사 안에서도 출신대학에 따라 차별이 존재했다. 상대적 차이와 거기서 파생되는 특별한 존재는 어느 사회에서나 양파껍질 같이 존재했다.

나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산 적이 있다. 세상의 중심에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고로 남은 죽어도 나는 예외일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불행해도 나는 행복해야 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아니어야 하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내려놓을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인생에서 자신이 몫을 찾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이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 수십년이란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