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란 - 송복련
풍란을 대하면 요즈음 내 생활을 보는 듯하다. 해풍과 안개 속에서 향기를 풍기는 선초(仙草)라서가 아니고, 더구나 부자들만의 기호품인 부귀란(富貴蘭)이어서가 아니다.
가슴에 바람이 일렁이느라 허옇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연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며 얼굴보다 마음에 주름이 잡혀가는 탓이리라.
지난해 어쭙잖은 솜씨로 만든 풍란 숯부작의 뿌리가 거미줄처럼 뻗어 제 키보다 더 자랐다. 발붙일 데를 찾아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발가벗겨진 채로 맨살을 드러내어 추워 보인다. 제가 살 곳을 떠나 남의집살이하려니 쉽지는 않았겠다. 거기다 숯이라는 삭막하고 낯선 터에 이끼를 얹어 걸뜨게 했으니 어찌 살음을 했을까. 감질나게 뿌려주는 수돗물이나마 감지덕지 받아먹게 했으니, 내 눈을 즐겁게 하자고 못할 짓 한 건 아닌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너의 성질도 모르고 물은 생각나면 주었다.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는 동향집에서 귀양살이나 다름없이 살았으니 그 어려움이 오죽했으랴.
여느 뿌리들처럼 땅속으로 뻗어 가기라도 했다면 흙을 껴안아 목마르지 않았을 테고 단단하게 터를 잡았을 텐데. 흙은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자라도록 어머니의 손처럼 감싸주었으리라. 신발도 미처 꿰지 못한 채 쫓겨난 듯 흙이 없는 곳에서 뿌리만 초라하게 내몰린 것 같다.
사람들은 하필이면 바위나 나무의 표면에다 뿌리를 붙여서 곡예하듯 비탈진 길을 내려가게 심을까. 난이 스스로 선택한 곳이 아니다 보니 본드나 실로 고정을 해야 하는데. 설 곳이 아닌 자리에 겨우 발붙이고 서서 공중에다 서늘하게 아랫도리를 드러낸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인가 한다. 시간을 좇아가며 ‘스파이더맨’이 빌딩을 겅둥겅둥 넘나들듯이 바쁘게 살아가느라 단단하게 착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늘 불안함을 느낀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방으로 촉수를 뻗어 가는 뿌리의 자람이 어쩌면 자유분방하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인가 여기다가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하기보다 만능 탤런트가 되려고 바람을 타면서 사람들이 몰려간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당나귀의 꼬리를 고삐 삼아 거꾸로 쥐고 가듯이 방향감각을 잃고 혼란에 빠져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뿌리가 거미발처럼 스멀스멀 기어가는 모습이 징그럽고 알몸을 드러낸 것이 망측하다. 붙들고 매달리며 각다분하게 사는 삶은 어딘가 소속이 되려고 애쓰거나, 최고가 되겠다고 아등바등 살거나,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권력에 인연 닿으려고 끈을 이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유난히 두드러지게 드러난 뿌리를 바라본다.
살아야 할 생명이니 어쩌겠는가? 누군가에 의해 내몰린 척박한 곳,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두 손으로 힘껏 부둥켜안은 숯에서 채우지 못하는 갈증으로 목마르다. 뿌리는 그물망을 치고 공기 중에 떠도는 습기에 닿아 보려 하나 사람과 함께 난방이 너무 잘 된 곳에서 메말라 퍼석거리며 오히려 점점 목이 탄다.
자연을 벗 삼던 풍란은 바위나 나무 곁에서 비와 안개를 너울 삼아 꽃을 피웠으니 향내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나 보다. 낭떠러지를 암벽 등반하듯 타고 내리며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을 것이다. 비록 집에서 기르는 풍란이기는 하지만, 제 본성을 잃지 않고 뿌리를 뻗어 가는 모습이 가상하다고 해야겠다. 서툰 주인을 만나 고생이야 되겠지만, 방치된 가운데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그래서 불사초(不死草)라고 하는지 모른다.
가슴에 이는 바람으로 미세한 부분까지도 드러내어 흔들리는 나는 무엇을 목마르게 붙들고 사는 것일까?
목마름, 아마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힘이리라. 풍란 뿌리의 생장점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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