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판 - 박찬민목사
우리 주위의 그리스도인들 중엔 의외로 수와 양의 물질적 개념만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려는 매머니즘(mammonism) 신봉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예로, 처음 만나는 목사님들에겐 꼭 교회의 규모나 교인들의 수를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을 들 수 있겠다.
만약 그 목사님이 20 ~ 30 명도 채 모이지 않는 개척 교회의 목사님이라고 한다면,
그분의 신앙과 인격과 학문의 깊이가 어떻든지 간에 일단 존경(?) 의 대상에서 가차없이 제외되곤 한다.
오직 그들의 의식 속엔 크고 웅장한 예배당에서 수많은 교인들을 군병처럼 거느린(?) 위풍당당한 목사님의 모습만이 가장 확실한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저런 까닭으로 해서 한맺힌(?) 성전 건축의 대역사는 비좁은 국토를 헤치고 오늘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코카콜라의 판매 전략을 방불케 하는 교인 쟁탈전 역시 날마다 골목골목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일단 규모와 숫자 면에서 볼륨을 키워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의외로 목회가 수월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등록 교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와 반비례하여 개척 교회에선 꼭 그만큼 빈 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마치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연구하는 거대한 실험장이 되어 버린 듯하다.
기독교 복음만화만을 그려온 내게도 이런 기준들은 예외없이 작용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리는 만화의 선교적 가치나 그 영향력보다는 몇 권이나 팔리느냐,
돈은 얼마나 벌리느냐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관심을 앞세운 분들 치고 땡전 한푼이라도 자기 돈내고 책을 구입해 간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제나 소리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손길들에 의해 내 만화는 그간 알음알음 판수를 거듭해,
언젠가 무심코 헤아려 본 그 숫자가 물경 수십만권에 이르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도 그 수와 양의 물질적 가치만을 따져 우리 인간사의 우열을 가늠하시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결단코"노!"일수밖에 없다. 비록 일천한 신앙의 연조라 할지라도 이제껏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하나님은 힘 있는 다수보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한 영혼에 당신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계신다.
성경도 분명히 한 영혼의 가치가 온 천하의 그것보다 훨씬 상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 한 영혼을 위해 오늘도 오지에서 땀 흘리는 선교사들이 있는 것이며,
바로 그 한 영혼을 위해 텅 빈 예배당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개척 교회의 목사님들이 있는 것이고,
바로 그 한 영혼을 위해 노방에서 소리 높여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그리는 이 만화도 실상은 다수의 박수 갈채보다 오직 그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던 무렵의 일이다.
전도지로 시작한 만화에 대한 뒤늦은 열정이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성큼 발전하면서 어느덧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그 대표적인 것은 물론 경제적인 쪼들림이었다.
사업에서 거의 손을 떼다시피 하고 불철주야 작품에만 몰두하다 보니 자연히 수입이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엔 거의 빈사상태에 이를 정도까지 되었는데,
나는 그제사야 비로서 까마귀를 통해 물과 떡을 날라다 먹이신 엘리야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 주변엔 사람으로 변장한 하나님의 천사들이 많다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인 듯 싶었다. 도대체 그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평소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도움의 손길이
사방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기적은 첫 작품 ' 당신은 누구십니까? '란 전도용 만화가 무딘 손끝으로 어렵게 어렵게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작품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K출판사를 통해
한 권의 아름다운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글쎄…. 아직까지 별로 만화를 찾는 사람들이 없네요."
평소 자주 들르는 한 서점의 매장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점원 아가씨의 대답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참으로 김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언감생심, 감히 베스트셀러까지야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그간의 노력과 정성을 하나님께서 감안해 주신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판매에 성공하여 그 동안 못 번 수입의 일부라도 충당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하는
음흉한(?)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더구나, ' 혹시나 ' 하던 기대가 ' 역시나 ' 로 바뀌면서 열심히 주판 알을 퉁기며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출판사의 따가운 시선도 내겐 영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래저래 그간 몇 달을 고생고생하며 만들어낸 내 분신과도 같고 어찌보면 새끼(?) 와도 같은 작품이
아무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책방 한쪽 구석에서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꼴도 보기 싫고,
또 뒤늦게 만화를 그린다고 난리치고 있는 이 철딱서니 없는 남편을 그래도 주의 일을 합네 하고 말없이 내조해 온 마누라 보기도 미안한 노릇이고 해서, ' 에라! 모르겠다. 다 늙어서 이 웬 팔자(?) 에도 없는 궁상이냐? 다 때려치우고 다시 돈이나 벌자' 하고, 별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한동안 만나지 못한 거래처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 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따르르릉!"
그러던 어느 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을 연상케 하는 전화 벨이 그야말로 운명처럼 울려 왔던 것이다.
"만화가 박찬민 선생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경북 B군(郡)에서 오셨다는 웬 전도사님이었다. 나를 만나러 일부로 그 먼곳에서부터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홍두깨 같은 일이냐 싶으면서도 내 만화의 독자란 사실 한 가지에 감격한 나는
'으이그, 그럼 그렇지. 그 촌 구석에서도 내 책을 읽어 본 사람이 있긴 있었구나' 하며
부랴부랴 신발을 꺾어 신고 약속된 장소로 달려 나갔다.
"어이쿠, 역시 집사님이셨군요? 내 그럴 줄 알았지요. 다름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그 전도사님은 황송스럽게도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연발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내게 전도사님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님은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우상숭배가 극심하다는 B군의 한 마을에 교회를 개척했다.믿는 구석이 있으면 배짱도 두둑해지는 법이던가?
"아, 목회는 나 혼자 하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거지요. 걱정 없습니다."
이처럼 처음엔 제법 호기당당한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주위의 염려가 쓸데없는 기우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찌나 불사가 세고 각종 미신이 횡행하는지 마치 마을 전체가 거대한 우상의 세력에 결박되어 있는 듯했다.더구나 부정탄다며 교회로의 접근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도저히 복음이 파고들 틈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 답답한 세월이 흘러 반 년… 1년…,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전도사님은 단 한 사람에게도 제대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어느덧 그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무모했던가를 뼈저리게 뉘우쳤다.
그리고 마침내 전도사님은 마을에 서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목양지를 물색하기 위해 대도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도사님은 시내의 한 기독교 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서점 진열대 위에 놓인 책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우연히 낯선 책 한권을 발견한 것이다.
만화책이었다.
무심코 한장 두장 책장을 넘기던 전도사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만화의 내용이 현재 경북 B군(郡)의 모습과 너무나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 만화 속엔 우상을 극진히 섬기는 한 집안의 소년이 등장한다.
가정사의 모든 길흉화복을 전적으로 우상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부모를 바라보던 소년의 마음 속에 어느 날 문득, 의문이 일기 사작한다.
"도대체 저 말도 못하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우상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고 어른들은 날마다 그 앞에서 절하며 복을 비는 것일까?"
이런 회의가 점점 깊어가던 어느 날, 이 당돌한 소년은 마침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한밤중에 아무도 몰래 그 우상을 번쩍 들어다가 뒷산 언덕에 파묻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땅 속에 묻힌 우상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네가 스스로 이 구덩이를 헤치고 걸어 나올 수만 있다면 난 너를 신으로 믿고 이제까지보다 백 배나 더 받들고 공경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면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너를 나는 절대로 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우상을 땅에 묻고 돌아온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 소년의 집은 물론 우상에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소년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해 우상을 파묻었던 장소로 다시 찾아가 보니
그 자리엔 우상대신 전에는 보지 못했던 파아란 새싹 하나가 돋아나 있는 게 아닌가?
구덩이를 헤쳐 본 소년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싹은 우상의 몸에 묻어 있던 씨앗이 움터 자라난 것이었다.
"아아! 우리 온 가족이 머리 조아려 경배하는 우상이 저 혼자 땅을 헤치고 자라나는 이 조그만 씨앗보다도 못하다니…."
비로소 소년은 생명의 신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돌봐 주지 않았는데 저 작은 씨앗은 도대체 어떻게 이 거칠고 딱딱한 땅을 뚫고 저 혼자 자라날 수 있었을까?"
어느새 소년의 눈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리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막 자라난 저 나무들, 무성한 들풀과 이름 모를꽃, 저 높고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해와 달과 별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아아 ㅡ 과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마침내 소년의 생각은 창조주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한다.
"반드시 이 세상을 만든 참 신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참다운 신이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저까짓 무능한 우상 따위가 아니라,
이 작은씨앗에 생명을 주어서 제 스스로 거친 땅 속을뚫고 나올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절대적 능력을 가진 존재일 거야."
"나는 이제 다시는 저 따위 돌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거짓 신들 앞에 절하지 않겠어.
그리고 온 세상을 만들어 낸 그 참다운 신을 반드시 찾아 내고 말거야."
만화는 이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나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만화책을 덮은 전도사님의 눈앞에 만화 속의 주인공을 닮은 한 소년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전도사님은 그 책을 구입한 후 부랴부랴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재용이란 아이를 찾기 시작했는데, 재용이는 교회 가까운 곳에서 할머니와 단둘이서 외롭게 살고 있는 아이였다.
부모가 서로 헤어지면서 할머니에게 맡겨졌다는 이 아이는 유난히도 우상을 섬기는 할머니를 따라
날마다 우울한 얼굴로 마을 어귀에 있는 사당엘 드나들곤했다.
"일부러 만화책을 그 아니 눈에 잘 띄는 곳에 떨어뜨려 놓았죠."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만화책을 전달할 방법을 찾던 전도사님은 궁리 끝에 이런 꾀를 낸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재용이는 낯선 만화책 한 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보잘것없는 만화책 한 권이 역시 보잘것없는 한 소년의 손에 쥐어졌다.
비로소 만화책이 제 임자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도저히 복음이 뚫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이던 이 마을에 처음으로 틈새가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심히 만화책을 읽어내려가던 소년의 마음 속에 어느새 만화 속의 주인공과 똑같은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도시 애들 같았으면 재미없다고 한 번 읽고 내동댕이쳤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시골에서 별다른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없던 재용이는 우연히 발견한 만화책 한 권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으며
점점 더 그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이다.
"결국 그 아이는 우리 교회의 첫번째 신자가 되었어요. 그야말로 장장 2년 만의 첫 결실이었던 셈이죠."
그 만화속의 주인공처럼 우상을 땅에 묻을 용기는 재용이에게 없었지만,
이미 만화를 통해 섭취한 복음의 자양분은 그 아이의 마음 밭을 어느새 옥토처럼 기름진 토양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옥토에서는 은혜의 샘물을 소폰지처럼 빨아들이며 하나 둘 떨구어진 말씀의 씨앗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텅 비어 있던 예배당은 재용이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끌고 온 꼬맹이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 차고,
마침내 주일학교까지 태동하게 되었다.
"그러자 재용이 할머니는 물론이고 그 마을 어른들은 온통 동네 망한다고 난리가 났죠.
나중엔 교회를 철거한다고 떼지어서 곡괭이까지 들고 올 정도였으니까요."
불꽃 튀는 영적 전쟁의 회오리 바람이 마을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어른들의 반대가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아이들은 더욱더 기를 쓰고 교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있습니까? 바로 지난 주에 재용이 할머니가 처음 우리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정말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설교 시간에 말이 다 나오지 않을 정도였었다니까요.
재용이가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주책 없이 눈물이 쏟아지던지…."
그리고 전도사님은 뒷주머니에서 새까맣게 땀에 찌든 손수건을 꺼내더니 역시 새까맣게 볕에 그을린 눈자위를 꾹꾹 눌러대는 것이다. 하마터면 나도 감격의 눈물 한방울을 탁자 위의 콜라 잔 속에 빠뜨릴 뻔했다.
"다음 주에는 두 분의 어른들이 더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지금 제 심정은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님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을 정도랍니다.
정말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서야 눈꼽만치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전도사님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시는 것이 아닌가?
"이 모두가 다 집사님이 그린 그 만화책 한 권으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정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나는 황급히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처, 천만에요. 전도사님, 전 절대 그런 말 들을 자격 없습니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만화책이 영 팔리지 않는다고 이 짓을 그만 때려치울 궁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 후로 그 전도사님의 기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그 짓(?)을 때려치울까봐
바짝 긴장하신 하나님의 비상조치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 만화책은 초반의 부진을 딛고 서서히 판매량이 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거듭 5판까지 내리 찍어내면서 구겨진 내 자존심을 어느 정도는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설령 그 만화책이 초판도 다 팔리지 않은 채 여지껏 서점의 창고 구석에서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며
푹푹 썩고 있다 할지라도, 이미 나는 그 한 권 으로 본전을 뽑고도 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여전히 교회의 규모나 교인 수로 목사님의 등급을 매기려들거나,
이 불초한 위인이 만든 졸작의 가치를 오직 연간 총 수입과 판매량으로만 따지려 드는 그리스도 안의 존경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 그런 계산일랑 나중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주판으로 한번 따져 봄이 어떠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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