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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 (조직) 10.- 2

Joyfule 2007. 3. 18. 02:00

프리메이슨 (조직)

 

D. 프리메이슨 관련 단체, 기업, 은행, 기관, 방송·언론, 학교

 

9. J.P.모건: 1백64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금융의 터줏대감이자, 막후실세로 유대인 은행. 


   현재 포츈이 선정한 1천대기업의 99%와 금융거래를 하고 있으며, 전세계 거래 고객숫자만 3천만명에 달함.
   2000년말에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흡수합병하기도 했다.

   
금융 이외의 철도. 철강. 통신. 영화 등 미국 의 핵심 기간산업 부문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행사해온 실물경제계의
   막후실세였기 때문이다.

   J.P. 모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막후에서 역대 백악관의 주인을 위시해 BIS 등 국제경제기구를 쥐락펴락해온
   '울트라 정치 파워'이기도 했다.
   모건은 또 벨이 발명하고 에디슨이 실용화시킨 전화사업에도 재빨리 손을 대 '제너럴 일렉트릭'을 설립하여
   전화시장마저 삼켜버리는 등 평생 동안 1천여개의 발명품을 쏟아낸 에디슨을 철저하게 활용하여 부를 부풀려나갔다.
   
   그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소유이던 '카네기 제강'을 그때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던 5억 달러에 군말 없이
   사들인 다음 이를 다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페더럴제강.내셔널제강.아메리카제강 등과 합병시켜 'U.S 스틸'이라는
   미국 최대의 '철강공룡'을 만들어 순식간에 미국 철강업계를 장악했다.
   미국 철강시장을 완전 독식하다시피한 U.S 스틸의 주가는 모건이 카네기제강을 매입했을 시점보다 몇 배나 폭등해
   모건은 며칠 만에 매입가격의 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모건은 기업 인수합병의 귀재이기도 했다.

   잭 모건은 남북전쟁 때부터 무기공급 사업을 같이했던 미국 최대의 화학독점기업 뒤퐁과 손잡고 미국 전역에
   다이너마이트 공장을 세우고 화약류를 대량생산해 유럽에 공급했다.
   1차 대전 당시 유럽연합군이 대부분의 탄약을 미국에서 공급받은 까닭에 뒤퐁의 화약 생산량은 자그마치 전쟁 전의
   26배로 뛰어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5년 동안 모건이 자유채권으로 조성해 연합군에 빌려준 돈을 10억 달러의 거금이었다.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쏟아부은 전비는 모두 2천4백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전쟁 전 미국 정부의 50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였다.
   전비는 대부분 전시공채 판매를 통해 조달되었는데, 미국이 발행한 전시공채의 절반 이상을 J.P. 모건이 판매하면서
   그 대가로 엄청나 액수의 수수료를 챙겼다.

   1930년 대 공황 이 후 미국.영국. 프랑스. 이탈이아. 독일. 벨기에 등 6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스위스 바젤에서 BIS
   (국제결제은행)가 설립되었다.
   이 기구의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에게서 전쟁배상금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맨 처음 BIS 설립 구상을 내놓고 이를 조직한 막후세력이 다름아닌 잭 모건이었다.

   BIS의 설립 목적인 배상협상이 끝난 뒤에도 BIS는 그대로 존속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독일의 나치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는데도 유독 스위스만은 손대지 않았다.
   스위스는 그뒤 전세계의 블랙 머니가 모여드는 국제금융의 파워센터가 되었으며, BIS가 소재한 스위스 바젤은
   '국제금융계의 크레믈린'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지금도 매달 첫째주 일요일 저녁에는 앨런 그린스펀 미연준의장을 비롯한 G-10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바젤에 모여
   계속 비밀회합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국제금융계에서는 BIS의 막후에서 J.P. 모건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1930년 BIS 설립 당시 J.P. 모건은 미국에서 큰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대공황에 분노한 군중은 금융-산업공룡인 J.P. 모건을 적대시했다.
   잭 모건은 수차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으며 J.P 모건사에는 폭탄이 투척되었다.

   최근
J.P. 모건 체이스가 엔론, K마트 등 대기업의 잇따른 파산과 아르헨티나 사태 등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
   투자은행 체이스 맨허튼과 합병하면서 투자업을 대폭 강화했으나 J.P. 모건의 성골(聖骨)들이 아닌, 체이스
   맨허튼 출신들이 실권을 쥐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전통적으로 이 은행의 전문영역이었던 파생금융상품 분야에서도 낭패를 보고 있다.
   위장계열사인 영국의 마호니아라는 회사를 통해 엔론에 위장 대출을 해주었다는 혐의로 11개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한 것이다.

   J.P. 모건이라는 이름의 실체가 우리 뇌리에 뚜렷이 각인된 것은 98년 4월 국내사상 최대규모의 '파생금융상품
   사고'가 터지면서부터였다.
  
  사건의 요지는 J.P. 모건이 97년 봄에 주택은행·보람은행·SK증권·한국투신·한남투신·제일투신·신세기투신 등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에게 친절하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동남아 환율연계 파생금융상품을 사도록
  해 십수억 달러대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증권사·종합금융사·생명보험사 등 여타 제2금융권 기관들이 J.P. 모건이 판매한 파생금융상품을 샀다가
   예외없이 손해를 보아 국내금융기관들이 입은 전체적인 피해액은 자그마치 16억 달러, 우리돈으로 2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해를 입은 해당기관들은 "J.P. 모건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소송을 내는 등 부산을 떨었으나 이미 차는 떠나 버린
   뒤였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한남투신과 신세기투신등은 결국 문을 닫아야 했고, 문제상품의 판매간사를 맡았던 SK증권
   또한 자본이 완전 잠식 되면서 모그룹인 SK그룹의 자금난마저 야기할 정도로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보람은행도 1998년 9월8일 라이벌이던 하나은행에 사실상 피합병을 당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