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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

Joyfule 2019. 12. 29. 02:19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



당신은 나의 남편 나의 아내입니다.

나의 발은 당신 때문에 걷고 달릴 것입니다.

나의 발은 당신 때문에 춤출 것입니다.

나의 눈은 당신 때문에 볼 것입니다.

나의 마음은 당신 때문에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때문에 사랑할 것입니다.

 

위의 내용은 미국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이누이트족의 결혼서약문이다. 참 고결하고 아름다운 내용이다. 우리네 조상들의 혼인서약문에 빠지지 않는 것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어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처럼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한 몸으로 한 가정을 이루어서 평생 동고동락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도 삼십년 전에 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제 귀밑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는 나이가 되도록 한 집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부부가 결혼을 해서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일컬어서, 인생을 동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내 인생에 동행하는 사람은 배우자만이 아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인생길에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영혼에 동참하시고 함께 해주신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5:21~24)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9:2,3)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5:10)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예수님을 비롯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과 보호하심이 그들의 인생에 함께 하셨다. 그래서 당신도 예수를 믿고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거주하시며, 이 땅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하실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당신의 믿음은 그냥 당신의 생각일 뿐에 불과하다. 위의 성경의 위인들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의 삶에서 증명해보이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당신에게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지식의 이해나 자기 확신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과 함께 해주시는 것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는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15:7,8)

 

성령과 동행하는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의 위인들은 죄다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삶을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이 되었으며, 교인들에게 물론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죄다 자신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다. 그렇다면 성령이 함께 하는 증거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1. 내면의 평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평안과 기쁨과 자유는 누구나 누리고 싶어 하는 영혼의 상태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영혼의 상태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평안하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살고 계시는가? 필자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없다면 없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없는 데도 있는 것처럼 속이고 위장한다해도,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먼저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품질이 다르다고 한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육체적인 만족을 채워주는 조건들이 채워졌을 때 느껴지지만 유한하며 조건적인 상태이다. 그래서 환경이 바뀌거나 만족도가 떨어지면 평안도 금방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시적으로 영혼의 평안을 느낀 사람은 있지만, 그러한 평안을 삶에서 지속적으로 누리면서 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안은 어디에서 공급되는가? 그것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예수님이 공급해주신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면 샘솟듯이 공급받게 될 것이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주안에 있다는 말이고, 주안에 있다는 말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 거주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혼은 기쁨과 자유를 공급받는 조건이기도하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영이시고, 주의 영이 곧 성령이시다. 그렇다면 당신이 성령과 동행하고 있다면 이런 영혼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 고질병의 회복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성령과 동행하기 시작하면 고질병이 낫기 시작한다. 악한 영들은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하지만, 거꾸로 성령은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정신질환을 회복시키고 고질병을 낫게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은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므로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켰던 각종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귀신들린 사람은 교회로 데려오면 손사래를 치면서 교회 문을 닫아걸고, 정신질환자들에게 정신병원으로 가라고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거품을 물고 소리 지르고 있다. 희한하고 기이한 일이다.

 

3. 사람들과 관계의 회복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19~23)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가족들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과 소원하고 비틀어졌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악한 영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움과 시기, 질투와 분노, 싸움과 분열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들어오면 불쌍히 여김과 용서, 사랑과 화평, 오래 참음과 절제의 마음을 주신다. 그러므로 갈등과 싸움, 분노와 분열로 얼룩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된다. 그래서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족끼리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주장하는 많은 교회에서 목회자와 중직자, 혹은 교인들끼리 파가 갈려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 분열하는 일이 허다하다. 노회선거판에 가면 목회자들이 얼마나 미워하고 싸우는 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4. 하는 일마다 형통함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6:24)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9:2,3)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의 특징은 형통한 축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하는 일마다 열매가 풍성한 것은 물론 자녀들도 잘되고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성령이 내주하신다고 믿는 당신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물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고난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꺼이 선택한 고난이지,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곳이다. 악한 영들은 사람들을 죄에 덫에 걸리게 하여,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을 주어 지옥에 던져지게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귀신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안 되고, 각종 불행한 사건사고로 인해 삶이 고통스럽다.

 

5. 영혼 구원사역에 도구로 쓰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성령이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로 이끄시며, 놀라운 영적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살고 계신가? 성경을 읽으면 깨달음으로 가슴에 들어와 박히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위력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증인의 삶을 살고 계신가? 그렇다면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제자를 양육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1. 전심으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3,14)

 

위의 구절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명령하신대로,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을 때 기도하던 태도이다. 그들이 기도하였던 내용은 당연히 성령의 내주를 구하였을 것이고, 그 태도는 오로지 전심으로 기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전심이라는 말은, 기도의 형태나 형식적인 기도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가 아닌가? 말하자면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여기시자, 비로소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오셨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마음은 늘 하나님께 가 있는가? 그게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며, 오로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전심으로 기도하는 게 어떻게 기도하는 구체적인 자세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 무시로 기도 하는 것은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 홀로 있을 때 늘 기도하라.

 

즉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시(無間時라는 말을 줄임말),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으로, 홀로 있을 때 늘 기도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말하자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게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찾아오시는 기도의 방식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을 올려드린다.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윗글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려면, 아침과 밤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낮에도 틈만 나면 수시로 기도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런 기도의 습관이 든 사람은 성령이 내주하시고 동행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을 받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침과 밤에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노력하면 할 수 있지만, 낮에 틈만 나면 하나님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일은 실로 어렵다. 그런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울 영성학교의 식구들도 아침과 밤에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은 들였지만, 낮에 틈만 나면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실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하루 종일 틈만 나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비결을 말씀해주셨다.

 

*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한 것을 알고 있느냐? 그것이 기도의 강을 건너는 본보기 이다.

* 야곱의 기도를 배우라.

* 얍복강가에서 죽기를 각오하는 기도한 야곱을 묵상하라.

* 야곱의 기도는 주인을 기쁘게 한다.

* 이천년 전에 나는 기도의 사람으로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은 훈련을 했다.

* 나도 기도의 종이었음을 알린다.

* 겟세마네적인 기도를 하라.

 

그게 바로 야곱에 얍복강가에서 기도하였던 태도이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절박하게 기도하였던 태도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렇게 기도하여야 한다고 수도 없이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한두 시간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몸을 학대하고 탈진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느냐고 질겁을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도만을 열심히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가 기도의 습관을 들일 때도 야곱의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을 넘게 기도하였고 11년째 되어서야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필자처럼 당신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아도 10년간 하루 종일 틈만 나면 기도하는 게 쉽겠는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능력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기도의 힘과 기쁨을 주셔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하여야 기도의 힘을 받을 수 있는가? 바로 야곱의 기도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따라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1~23)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의 여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사는 지 날카롭게 살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위의 예수님의 말씀에 별 관심이 없이, 1분짜리 영접기도와 주일성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잣대는 성경에 없다. 신학자들이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비틀어서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베껴서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사람이 세운 교단교리를 예수님의 말씀 위에 놓고 있는 셈이다. 기이하고 섬뜩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콕 집어서 말한 대목을 올려드리겠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위의 구절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신 대목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위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 계신가?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신가? 아마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살 수 있냐면서, 필자에게 반문할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 말의 수준을 내리고 타협하여, 기뻐하도록 애쓰고 감사하도록 노력하며 살라는 의미라고 안심시키면서 등을 토닥거려 주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씀하셨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준을 올려놓고 말씀하셨을까? 이 말은 타협하거나 물 타기를 해서 적당히 얼버무리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는 것과 범사에 감사하는 기준을 말하는 성경구절을 올려드리겠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지난한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삶에서 어떤 불행과 고통이 닥쳐오더라도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기뻐하기는커녕, 불평과 원망과 짜증, 분노가 수시로 마음에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으며, 감사하기는커녕 걱정과 염려, 불안과 절망, 좌절과 두려움이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다면, 당신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피터지게 싸워서 끊어내야 한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망라하는 단어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 무지하다. 예를 들어,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게 죄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불안, 낙담과 절망, 의심과 회의 등은 불신앙의 죄이다. 또한 미움과 짜증, 분노와 싸움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죄이다. 게다가 서러움, 억울함, 자기연민, 교만 등도 사악한 죄이지만 이를 아는 이들도 거의 없다. 이렇게 잘 인지하고 있는 죄들도 싸워서 끊어내는 능력도 없지만, 대부분의 죄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밥 먹듯이 지으며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관심조차 없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며 죄인을 가까이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죄를 생각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자신에게 들어오는 생각을 모니터링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생각들을 끊임없이 쳐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쉬지 않는 기도로서 하루 종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깨달아 삶에서 시행하려고 무진 애써야 한다. 더불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피터지게 싸우고, 죄를 부추기는 귀신의 계략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찾아오셔서 동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동행하는 삶은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넘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결연한 각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