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새롭게 변해야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중에 변신로봇이라는 게 있다. 처음에는 자동차처럼 생겼는데, 바퀴를 벌리고 쭉 펴면 멋진 로봇이 된다. 자동차에서 아이들이 환호하는 로봇으로 변신시켜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성경의 위인들도 바로 이런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격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은 평범한 목동에서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요셉은 어떠한가? 죽을 날만 기다리던 히브리노예인 죄수의 신분에서 어느 날 아침에 당시 최강대국의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이 보다 더 판타스틱한 변신도 없을 것이다. 엘리야나 엘리사, 이사야나 에스겔 등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사람은 구약성경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12제자가 되었던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 마태 등도 하찮은 어부나 백성들의 눈총을 받는 세금징수원에서, 놀라운 기적과 이적으로 초대교회를 세운 지도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의 위인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처지일까? 아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은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에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약속이 거짓일까? 아니라면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지 않은 채로 교회마당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곱씹어보고 싶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1. 사고방식을 바꾸라.
사고방식이란 생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생각하는 틀을 바꾸라는 말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냐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변질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좋아하고 죄를 추구하는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틀을 확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엡2: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위의 성경에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육체가 원하는 생각을 하는 본성을 지니고 살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지옥으로 던져질 수밖에 없는 마귀의 자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추구하는 자들은 죄다 지옥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신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온 이유이다.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죄의 용서를 받아, 지옥에 던져지는 육체의 사람에서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영접기도행위를 하면 성령이 들어오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이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며,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육체가 원하는 즐거움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은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 불안과 낙심, 미움과 시기, 짜증,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육체의 사람에서 변화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 이런 사람들은 자기 고집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자기연민, 서러움, 슬픔, 억울함 등에 빠지기 쉽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지내며 불면증이나 우울증, 강박증, 자폐증 등의 정신질환에 걸리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시시때때로 들어오는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육체의 생각인지 분별하고, 피터지게 싸워서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1~27)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옛사람의 구습을 던져버리고 마음이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으려면, 날마다 옛사람의 생각의 생각을 예수 피를 의지하며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마당을 밟고 있는 죄인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는가?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어도 부족한 성품이 바꾸지 않거나, 부족한 성품을 알면서도 싸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귀신의 포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당신을 지배해왔던 사고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생활방식을 바꾸라.
새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한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새 사람이 된 삶의 방식을 삶의 현장에서 즉각 실천해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입만 열면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허다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의 백성임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고백하였으니까,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는 자의 표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증명하며,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기적과 이적이 나타난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런 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믿음을 인정해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하나님은 입으로 주절주절 말하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하나님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고백하는 지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관심을 갖으시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삶의 현장에서 올곧게 적용하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와서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과 직장과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 사람인지 크리스천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세속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개독이라 불리며 목사가 먹사로 부르는지 아는가? 그들의 행동에 전혀 경건한 모양도 없으며, 그들의 삶이 세속적인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목록을 들어보라. 죄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며 자녀가 명문대학에 합격하고 남편이 승진되고, 삶의 지난한 문제가 해결되고 고질병이 낫고 소원이 성취되는 것만을 주구장창 외치고 있다. 목사들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을 이루고자 무당들이 퍼트린 기복신앙과 황금만능을 추구하는 번영신학의 포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설교단상에서 입만 열면 축복과 구원, 위로와 격려를 쏟아부어주며, 세속적인 성공에 목마른 교인들의 속내를 간파하고 예배의 성공이니 비전센터니 하는 이름을 붙여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있다. 성경은 말세가 되는 징조로서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우상숭배에 빠지며 극도로 세속화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의 목표를 생각해보라. 직장에서 승진하며 부자가 되고 자영업으로 성공하기 위하여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세속적인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삶에 적용하는 데 금전적인 손실을 입거나 세상에서 왕따가 되고, 직장에서 한직을 전전하며 자영업에 적자가 되며,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게 두려워서 하나님의 뜻을 삶에 적용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확률이 결코 없다.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나가면 세속적인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적용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돈을 쫓고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생활방식을 바꾸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는가?
3. 신앙방식을 바꾸라.
그동안 교회에서 가르친 신앙의 방식들에게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었는가 생각해보라.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교회의 위상이 초라해지고, 교인들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쳐온 신앙방식은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교회조직을 지탱하기 위한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주요한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교회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 머지않아 한 때 뜨거웠던 우리나라 교회도 600여 년 전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유럽의 교회처럼 황폐화될 것이다. 그 이유는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의 만나고 교제하며 동행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혹의 영들이 교단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머리를 타고 앉아서 자신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와 말씀을 외면하게 하고 비본질적인 종교행위에 관심을 돌리게 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11:17,1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예수님은 다시 유대교 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독설과 저주를 퍼부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의 조항들을 꼼꼼하게 지키는 일에 열심이었다. 당시 구약성경인 모세오경을 암송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안식일과 십일조를 비롯해서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새끼라는 저주를 듣고 지옥의 불에 던져졌으니 기이한 일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들의 신앙방식은 하나님을 만나서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에 있지 않고, 종교적인 행위를 자기만족과 자기 의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에서 하고 있는 신앙방식도 다르지 않다. 목회자들은 입만 열면 예배에 성공이라는 비성경적인 말을 지어내어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헌금을 유도하고, 십일조와 각종 교회봉사, 교육 프로그램,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교회의자에 앉혀서 교세를 불리는 일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에는 관심조차 없다. 형식적인 기도회에서조차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목록만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성전정화사건을 통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잦아들고 있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훈련시키지도 않고 기도하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까지 반복했던 신앙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기적과 이적을 드러내며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을 몸에 배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울 영성학교에서는 최소한의 예배의식과 비본질적인 신앙행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훈련과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영성학교의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그래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와 피터지게 싸워서 승리하는 정예용사를 양육하고 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하나님은 지금도 온 땅을 두루 다니시면서, 자신을 전심으로 찾아오는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그리고 신앙방식을 바꾸고, 오직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삶에 적용하는 일에 힘쓴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켜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옛사람의 생각과 생활과 신앙방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면, 마귀의 포로가 되어 불행에 빠져 고통스럽게 살다가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이다.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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