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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사는 삶/ 일터의 질서:일하시는 하나님

Joyfule 2005. 12. 21. 01:25

일터의 질서:일하시는 하나님

             신대현 목사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처음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일하시는 하나님이다(창 1:1).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의 결과들에 대해서는 "좋았더라"는 말을 듣는다(창 1:4, 10, 12, 18, 21, 25, 31). '좋다'(Good)의 기준은 "하나님의 보시기에"이다. 왜 "하나님의 보시기에"일까?

일반적으로 '좋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경우는 어떤 대상의 적합성 내지는 품질(quality)의 결과로 인함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좋다"는 창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의견이 기준이 되어 평가된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내키는 대로 무턱대고 좋다고 하셨을까? 아니다. 창조물들은 선하신 하나님(시 100:5)의 일의 결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함을 내재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좋다"는 말을 통해서 창조물 안에 내재된 당신의 선함을 인정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창조물 안에 담아 놓으셨다. 일의 결과는 곧 그 일꾼의 인격의 연장이며 일꾼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일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고 일하는 자로 인해 그 일에 의미가 부여된다.

반면에 '죄'는 일꾼과 일의 결과를 분리한다. 곧 일꾼의 인격을 일의 결과에서 분리하고자 한다. 아담과 하와의 변명을 들어 보라.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13). 이것은 일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 태도가 오늘날 발전해서, 일의 결과와 성취만 괜찮으면 그 일을 행한 과정과 심지어 그 일을 행한 자가 누구였는지를 상관하지 않는 사회 풍조가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의 사회는 인격이 담기지 않은 일들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일의 결과를 보실 때 결코 그 일만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일과 함께 그 일을 행한 자의 인격과 의도를 반드시 보신다. 왜냐하면 일의 결과는 곧 그 일을 행한 자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의 한 예를 살펴보면, 세상이 홍수로 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일의 동기가 된 사람들의 인격을 보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결과를 선하게 추구하려 하기 이전에, 우리 안에 선한 성품과 의지와 행동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함'을 자신 안에서 실천하려 하지 않고 일의 결과에 먼저 적용하려 했다. 사람의 방법으로 일의 결과를 선하게 추구하려 해서 생겨난 결과는 직업의 계급 구도였다. 인격을 선하게 만들려 하지 않고 직업을 선하게 만들어서 선한 일의 결과를 얻고자 한 것이다.

우리 문화 속의 직업 계급을 보자.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거룩한 직업에는 목사, 선교사, 간사 등이 있고, 돕는 직업에는 의사와 간호사, 교사, 변호사, 사회 사업가 등이 있으며, 소위 세속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업에는 사업가, 세일즈맨 등이 있다.

과연 하나님도 이런 관점으로 사람과 일의 관계를 바라보실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일을 한다. 사람은 일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5, 15).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세계를 사람의 손에 맡기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셨으며, 계속해서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에게 양식을 주시고(시 145:15-16; 마 6:11), 창조물을 보존하시고(시 36:6; 골 1:17),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을(요 5:17) 해오셨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창의력을 발휘하고, 양식을 생산하고,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모습을 보이는 실례(實例)였다. 그는 동물의 이름을 지어 주는 창의력을 발휘했고, 에덴 동산을 경작함으로 양식을 생산했고, 그곳을 다스리고, 지키고, 하와와 가정을 이루면서 창조 세계를 보존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

이처럼 사람은 일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동역자의 신분을 가졌으며, 그 안에서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 따라서 사람의 일은 창조 세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한 책임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행하는 자의 삶의 필연적인 모습이고,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일의 다양성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다양한 만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모두 수평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모든 직업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며 결코 높고 낮은 계급으로 분리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의 귀천이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인가 하는 것과 그 일에 임하는 자의 인격과 태도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회복해 주시는 인격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하며, 일에 대한 참 태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과 이 일에 임하는 자의 인격과 태도가 영적인 것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하실 때에 물질적인 것, 감정적인 것, 지적인 것을 모두 동원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의 영역과 그 일에 임하는 우리의 인격과 태도는 전인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