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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사는 삶/ 일터의 질서:일하시는 하나님 2.

Joyfule 2005. 12. 22. 00:45

일터의 질서:일하시는 하나님

 

  신대현 목사

 

 

크리스천 직장에 들어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부름이 있는 일터가 아니며, 직장에서 신우회를 조직하거나 가정이나 다른 자영업을 하는 자들의 경우에 개인 묵상이나 전도에만 열심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직장에서든지 그리고 어떤 직업에서든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회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고, 사람들의 감정적인 필요들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배워 가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 회복해 주신 자기 자신의 전인적인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손상된 인격을 가진 자는 손상된 세상을 온전케 할 필요로 인해서 일하지 않고, 자신의 성취를 위주로 일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야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깨진 부분을 먼저 보게 되며, 그것을 세상이 제시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직업의 다양성은 자신의 손상된 부분을 메우고 자아를 성취하기 위한 선택 사항이 된다. 하지만 일하는 크리스천에게는 성취욕으로 인해서 직업이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필요 때문에 다양해진다. 그 필요에 임하는 모든 크리스천의 일은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로 나뉠 수 없다. 크리스천의 영성은 직업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에 임하는 인격과 태도에서 나타난다.

온전한 인격과 태도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 곧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인정하시는 일을 하고 그분을 높이는 일을 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크리스천의 진정한 영성은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하고, 그분께 반응하면서 그분의 창조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신약 시대만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그랬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일이라고는 말하지만 그래도 영원한 가치를 지닌 일과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않는가? 과연 우리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만을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적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일들을 너무 쉽게 버리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는 영원한 일을 위해 잠시적인 일 혹은 세속적인 일을 버린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영원한 세상만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으신다. 아마 하나님께서 영원성만을 생각하셨다면 이 세상은 창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에 제한된 세상 곧 역사를 가진 세상을 창조하셨다.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된 유한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벧후 3:10-13). 그리고 유한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평가는 "좋았더라"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상은 하나님의 선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비록 유한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간이 죄를 짓는 일을 제외하고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하나님은 이 유한한 세상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행함에 따라 영원한 나라의 상을 약속하셨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24). 결코 이 땅에서 영원한 나라의 일을 해야만 영원한 상을 주신다고 하지 않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성실과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셨다. 이러한 명령을 내리신 배후에는 당신의 백성들의 삶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양식, 옷, 거처 등을 염려하는 분이시다(마 6:32).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필요를 섬기는 모든 일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양식(Lifestyle)을 바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의 양식(work style)도 바꿔야 한다.

디도서 2:9-10에서 바울은 일의 양식에 대해서 다섯 가지 중점 부분을 말해 주고 있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첫째는, 권위에 대한 순응이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순종하여"(Slaves are to submit to their masters). 사회의 약속을 따르고, 자기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들의 약속에 신실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다. 둘째는, 맡은 바 책임 영역에 대한 최선의 노력을 통해 타인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범사에... 기쁘게 하고"(please them in all things).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일을 위해 바른 도구와 바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에 동일한 자세로 일에 임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셋째는, 인간관계의 갈등 해결이다. "거스려 말하지 말며"(They must not answer them back). 갈등이 생길 때에 정직과 예의를 갖추고 반응하면서 건전한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 경쟁으로 인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경쟁은 피해야 하며, 건설적인 일을 위해서는 손해를 입더라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는, 맡은 일에서의 정직과 성실이다. "떼어먹지 말고"(steal from them). 근무 시간을 정직히 지키며, 근무 시간 중에 개인의 시간을 찾아내려고 애쓰거나 개인의 용무를 회사 비용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는, 일에 대한 충성과 타인과의 신뢰관계이다.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they must show that they are always good and faithful).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며, 약속된 시간을 항상 점검하면서 일의 최종 기한을 맞추며,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만 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해 자신의 일터의 존재 목적이 영예롭게 될 수 있기 위해 충성해야 한다.

이 사항들은 단순히 일터의 윤리가 아니라 삶의 윤리이다. 우리의 일의 양식, 곧 우리의 삶의 양식이 바뀔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제 현장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된다.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so as to bring credit to the teaching about God our Saviour in all they do).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나님은 일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도 일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창조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빛나게 할 수 있다.

그 가르침은 거룩한 자들만의 소유가 아니다. 직업의 귀천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가 아니며, 성경은 그 직업을 가진 자의 '인격'과 그 일에 임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게 된 목적 안에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변화된 인격과 태도를 통해 우리를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 하나 하나는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외치시려는 메시지의 글자들이다. 사람이 전달하는 문학의 표현도 그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다양하냐에 따라 전달되는 호소력이 달라질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구원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획일적으로 '종교적인 거룩'만을 나타낸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그 깊고 넓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풍성한 표현이 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일을 통해 나타나는 우리의 전인적인 삶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편지가 될 때(고후 3:2-3), 그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이 세상을 다양하고, 힘있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책임 있게 다스리시면서 일하고 계신지를 세상에 들려 주는 선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