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하나님이 쓰신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깨어짐의 쓰라린 과정을 겪었다.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도 그런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깨어짐이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든 소망을 포기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땅에 심겨진 씨는 일단 죽어야 한다. 껍질이 벗겨지고 죽어야 그 안에 있는 생명이 움터서 땅 위로 솟아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는 자족하는 마음이 죽어서 생명의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 그렇게 해야 자신을 의지하는 삶의 방식과 전략을 멈추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신화에 피닉스라는 새가 나온다. 이 새는 끊임없이 날아다닌다. 잠시라도 날갯짓을 멈추면 육지로 떨어져 불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새는 육지에 발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그런데 불에 타 형체가 사라진 바로 그 순간, 놀랍게도 새로운 새로 탄생하여 날아올랐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주님이 내려오라고 하시는 자리다. 당신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맞이하기 원할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이 당신을 초청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 치며 날개를 퍼덕인다. 우리는 아무리 피곤해도 끊임없이 날고자 한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가 지치고 다쳐서 모든 것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우리의 모든 자아가 불타버릴 때까지.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일하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다. 즉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실망하고 고통을 통과하기까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다. 그는 생애 초반 40년을 애굽의 궁정에서 보냈다. 그곳에서의 40년은 화려한 세월이었다. 이 기간의 삶을 관리하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기술들을 개발하여 유능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나가는 비전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평안하고 풍족한 바로의 궁궐에서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로 내모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광야에서 모세는 과거의 화려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목자의 삶을 살았다. 궁궐의 풍족함을 누리던 삶에서 들판의 궁핍한 삶으로 옮겨졌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자리에서 양들을 돌보는 초라한 목자로 전락했다. 모세에게 광야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훈련의 장이었다. 이 훈련이 끝날 즈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준비를 끝낸 것이다. 하나님이 그 안에서 일하실 수 있는 자리까지 모세를 끌어내리신 것이다.
주님이 계속해서 우리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아 가시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이제 또 무엇입니까?'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구나. 하나님은 내 문제에 관심도 없고 나를 도와주시지도 않는구나.'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주는 거짓말이다. 사실 하나님은 눈동자같이 지키고 계신다. 주무시거나 졸지도 않으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상실의 마음과 그에 따른 고통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족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그렇게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행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를 찾아와 지팡이를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그 지팡이는 모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전부였다. 그것은 목자로서의 능력과 기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또한 목자로서 타고난 능력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육체의 능력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자족하고 신뢰하던 그 지팡이를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던 모세에게 이 사실을 깨닫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모세는 이제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을 때,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은 뱀을 다시 잡으라고 하셨고, 모세가 뱀을 잡았을 때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회나 능력을 빼앗아 가신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족하기를 중단하고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기 위한 그분의 깊은 사랑의 조치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출애굽기 4장 20절에 보면,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니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날 이후로 그 지팡이는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지팡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2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것을 가져가실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이런 깨어짐을 통해서 우리가 더 이상 육체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그러한 과정을 겪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알 수 있다.
하루는 잭이라는 친구가 찾아와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잭은 자신의 모든 삶을 주님께 다 바치면서 열심히 헌신했는데, 왜 점점 상황이 악화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계신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사용해 달라고 기도한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 기도를 진지하게 받아 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쓰시기 위해서 그 사람을 연단시키신다. 삶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의 자족하는 마음에 한계를 보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쓸 수 있도록 이끄신다. 그러나 이런 일이 진행되는 과정은 결코 즐겁지 않다. 갈수록 상황이 더 악화될 때도 있다. 이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견뎌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사용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고통은 반갑지 않지만, 때론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위기에 빠졌을 때 이것을 명심하라. '고통은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다.
어느 날 밤, 세 살짜리 막내아들이 한참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배가 아프다고 뒹굴면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나와 아내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엇다. 곧바로 응급실로 데러가서 검사를 받았다. 진단 결과 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방광과 장에 오랫동안 가스가 가득차 있어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의사는 당장 관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를 하는 동안 아이는 발버둥을 쳤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더욱 세게 붙잡았다. 그러자 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이 사람들 좀 말려줘 아빠! 나 좀 도와줘!" 치료가 끝나고 나서 아이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왜 그 사람들을 막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듯 물었다. 세 살밖에 안 된 이 아이에게 어떻게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일일이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아이를 안고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빠를 믿으라고 말했다. 그헐게 해야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님께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제발, 이 일이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당신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가? 내게 일어난 일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경험. 그러나 그런 상황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런 치료가 왜 필요한지 미리 알지 못했다면, 나는 당장 의사들의 응급 처치를 가로막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지속시켜 자족의 한계에 이르게 하시거나 혹은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아무런 대가 없이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철없는 기대다. 고통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기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분명해지며, 그러한 고통의 원인을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된다. 모세도 광야에서 인내의 시간을 보냈고, 사도 바울도 광야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훈련 학교를 졸업했다.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3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여기에 왜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 이라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고통 중에 있다면, 이러한 깨어짐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렇다 모세에게 깨어짐은 너무 비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깨어짐은 바로 하나님의 충만함을 경험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바로의 궁궐에서 보낸 첫 번째 40년은 화려한 삶이었다. 그후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비참한 삶이었다. 한편, 그의 생애 마지막 40년은 기적의 삶이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우월감을 깨지 않고는 궁궐의 삶에서 기적의 삶으로 올겨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했다. 변화된 모세가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이 몰아치더라도 속지 말라. 그럴 때 사탄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하시는 증거라고 속삭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것을 믿지 말라. 빈틈이 보여서는 안 된다. 사탄의 거짓말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실족시킬 뿐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겪을 때 때때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느지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도 있다. 반면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런 모든 상황을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깨어지는 중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럴 때에는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어떤 힘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성공한 사업가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바로 그 깨어짐의 과정을 겪게 하신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포기하는 것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면 우리는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포기한다. 그런데 그 포기가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님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의 세말한 부분까지 지켜보고 계신다. 정말 힘들 때 우리는 성경말씀을 의심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야 할 순간에 오히려 그렇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라.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만, 그들 개인적인 삶에 인격적으로 개입하시는 내재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믿지 않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내재적인 하나님을 마치 상자 안에 집어넣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원하는 것을 요청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그보다 더 좋은 최선의 것을 주고 싶어 하신다. 우리가 원하는 최상의 것을 주심으로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당신이 스스로 붙들고 있는 삶의 짐을 모두 내려놓아라. 그 모든 수고를 주님께 맡겨라.
"하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통해 더 큰 일을 하시는 분이다. 요셉의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판 것을 기억하는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시키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그분의 계획 아래 두셨다. 그리고는 결국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다. 자신을 포기하라. 완전히 항복하라. 깨어진 삶이라는 것은 인생을 스스로 주관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것은 "주님, 이제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꾀도 부리지도 않겟습니다. 그냥 하나님만 신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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